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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인셋 Aug 04. 2023

무거운 휴가,

가벼운 글쓰기


이젠 가볍지 않은 휴가. 뭐 하나 먹고 둘러보려고만 해도 쉽게 쓰일 돈, 서성대기도 만만찮은 날씨, 아이와 부모님에게 쓰이는 마음, 남겨진 일, 그리고 이런 것들을 받쳐주지는 못할 체력. 떠밀리듯 떠났으나, 그다지 쉼 같지는 않아서 '넌 이미 쉬었잖아' 라며 빚만 진 것 같은 휴가. 거기에 무거운 마음.




글이 가벼워지기까지는 시간이 꽤나 걸렸다. 사실 난 분쟁은 피해 다니면서도 꼬집어내길 좋아하니 유유자적 사회가 어떻고 하는 한 발 떨어진 생각이나 깊이 후벼 파고 싶다. 내 안의 것을 그렇게 혹독하게 헤집어대고 나면 결국은 나만 아프고 말 것을.


마음가짐은 좀 가벼워졌음에도 여전히 글이 잘 써지지 않는 건 상황이 더 나아진 게 없기 때문일까. 조용한 수다쟁이도 생각을 멈추면 더 쓸 것이 없다. 생각을 멈추기로 했었다. 그저 덮어두는 걸로는 안되고 마음속에서 조금은 털어내야 가능하다. 먼지처럼 관계도 털어내 버릴 수 있다면.




가벼운 글을 선호하는 것은 문장의 호흡 때문이다. 꼭꼭 씹어 찔러대는 무거운 글로 할 말을 다 하고자 한다면 결국 명쾌하지는 못한, 더 손대기 어려운 중후한 것이 되고 말았다. 그게 어지러운 내 속을 고스란히 내보이고 있었다. 그렇게 길고 긴 호흡으로 속을 풀어냈는지 감추었는지 모르게 멋대로 긴 문장, 느슨해진 구조 속 도망칠 구멍을 만들어둔 것일까.


그럼에도 나는 무겁게 짓누르는 글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어쩌면 자주 무거워서 가벼운 것을 동경하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버석거리며 씹을 때에는 내가 생각해 낸 그 많은 단어들을 꼭 모두 다 쓰고 싶다. 욕심이다. 글을 쓸 때엔 욕심을 버리라는데, 쓰는 것마다 숨이 차서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는 글.


가볍고 유쾌한 글을 쓰고 싶다. 그러기엔 내 삶의 태도가 썩 그렇질 못하다. 나는 눈과 귀를 자유자재로 닫아두고 우두커니 여러 가지를 생각한다. 겨우 겉으로만 하는 그런 유쾌한 척도 유머보다 실은 자조에 더 가까웠고, 그만큼을 훈련하여 내 것으로 만드는 데에도 꽤 많은 시간이 들었다. 그럴 수밖에. 진짜 유쾌한 사람이 유쾌한 글을 쓸 수 있는 법이다.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삶도, 나도, 서로 유쾌하게 조우한 적 없으니.




쓰는 행위를 두고는 앉아서 글을 시작하는 일, 쓰여진 글들 - 두 가지를 모두 생각해 본다. 둘 다 가벼운 적이 없다. 매일 써도 그 앞에 앉으면 먹먹한 쓸거리들, 생각에서부터 그러하듯 내려앉은 진흙 같아지는 글들. 조금 나아진 건 쓰러 가는 마음일 뿐, 여전히 그 자체로 가벼워지지는 못하는 나.


어떻게 가벼워질 수 있을까. 즐거우려고 기를 써봐도 무거워지기만 하는 여름휴가 같다. 오늘도 가볍게 앉았지만 질질 끌리는 걸음으로 나를 받아들이고 있는 글. 이토록 확실한 색깔, 가벼운 글쓰기는 무슨. 무겁게 생겨먹은 나라도, 가벼워질 수 있을 때까지. 글이 바뀌면, 나도 변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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