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남긴 단 하나.

할머니 별세

by 기묘염

이십 년 가까이 쓰고 있는 내 핸드폰 번호의 뒷자리는 어릴 적 우리 외할머니 집의 유선전화번호다. 그 번호는 이후에 나와 할머니의 핸드폰 뒷자리가 되었다가 이제는 내 핸드폰 뒷자리로만 남게 되었다. 커다란 실체로서의 존재는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작아져 추억과 기억이 혼재한 작은 영향력으로 존재하다가 결국엔 모든 게 사라지고 상징적인 네 개의 숫자로 남겨진다. 이 모든 게 생각보다 빠르고 상상보다 더 간단해서 삶과 죽음은 허망함으로밖에 표현할 수 없는 모양이다.

지난주 일요일에 할머니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피곤해서 몇 번 망설이다가 앞으로 할머니를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겠어 싶은 마음에 뵈러 갔는데 뵙고 나서 이틀 후에 더는 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조만간 돌아가시리란 걸 알았지만 막상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으니 예측하지 못했던 감정이 몰아쳤다. 사람의 감정이란 늘 상상을 뛰어넘고야 만다.

우리 할머니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서 청년기에 남북전쟁을 겪었다. 팔 남매를 낳아 길렀고 모두 장성해서 가정을 일구고 살았지만 십여 년 전에 황 갑을 앞둔 둘째 아들을 암으로 잃었다. 자식을 앞세우다니 내가 너무 오래 살았다고 통곡하던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할머니의 입관식에는 남은 일곱 명의 자녀와 여덟 명의 사위 며느리들 그리고 스무 명이 넘는 손자 손녀와 역시 스무 명이 넘는 손주 사위 손자며느리들이 함께했다.

연세로보나 과정으로 보나 대단히 호상이라 했지만 상실에 대한 개개인의 감정이 결코 호일수는 없는지라 입관식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눈물을 한 바가지쯤 흘렸다. 흐느낌의 한가운데에 태연히 누운 할머니는 의외로 편안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단정히 눈을 감고 누운 작은 몸뚱이를 낯선 이들이 닦아내고 옷을 입혔다. 살아생전이라면 질색을 하셨을만한 짙은색의 볼터치와 립스틱이 칠해지는 동안에도 내내 평온해 보였다. 그것은 다행이면서도 이상하게 더 죽음이 실감 나서 가슴이 미어지는 광경이었다.

부고를 들은 순간부터 입관식을 지켰던 그 순간까지 내내 머릿속을 맴돌던 장면은 어릴 때 할머니 손을 잡고 방앗간에 갔던 기억이었다. 설을 앞두고 방앗간에 가서 가래떡을 뽑아오던 날이었다. 기계에서 막 나온 가래떡을 뚝뚝 떼어서 입에 물었는데 그 가래떡이 얼마나 맛있었던지 지금도 말랑한 가래떡이라면 사족을 못쓴다. 가래떡 나오는 속도보다 처먹는 속도가 빠르다고 욕을 하면서도 못 먹게 하지는 않으셨다. 머리카락이 아직 까만 젊은 할머니가 광주리 가득 가래떡을 가지고 집에 가는 내내 어린 나는 옆에서 쉬지 않고 가래떡을 먹어댔다. 할머니 집에서 떡국떡을 말리는 며칠 동안 딱딱한 떡을 어찌나 집어먹었던지 너 때문에 설도 되기 전에 떡국떡 동난다고 등짝을 맞았던 장면도 떠올랐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의 기원 같은 순간이다.

성모상을 깼다가 걸레로 맞았던 일. 할머니 집 마당에 있는 작은 연못에서 금붕어한테 돌을 던지다가 욕을 먹은 일. 할머니 집 앞 평상에 누워서 동네 사람들과 이모들과 수박을 먹던 여름밤. 그때 들었던 미스터리 한 민담 괴담 같은 이야기들. 이학년 땐가 할머니가 나를 미용실에 데려가서 머리를 쇼트커트로 자르는 바람에 밤새 서럽게 울었던 기억. 내 머리를 감겨주면서 짧으니까 이렇게 쉽고 시원하다고 호탕하게 웃던 할머니. 함께 먹었던 수많은 간식들과 명절 음식들과 과일들. 할머니가 차려줬던 셀 수도 없이 많은 밥상들.

결국 존재의 의미는 함께 보낸 시간이다. 내 머릿속에 있는지도 몰랐던 순간들이 무시할 수 없는 증거들처럼 생생하게 되살아나 존재의 의미를 증명한다.

할머니는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나한테는 할머니였기 때문에 나는 할머니를 인간적으로 궁금해한 적이 없다. 그저 할머니들이라면 응당 그럴 거라고 짐작되는 그런 보편적인 편견과 단순함으로 할머니를 대했고 사랑했다. 실은 그보다 많은 것이 존재했었을 것이다. 내가 알기 전의 할머니와 내가 알려고 하지 않았던 할머니 그리고 내가 기억하고 있는 할머니 사이에는 빈칸도 많고 오류도 많을 것이다. 그 모든 것들이 이제는 저편으로 사라졌다. 나는 지금껏 그래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내 맘대로 할머니를 오해하고 기억하고 잊어버리겠지만 그게 의미 없거나 허망한 일은 아닐 것이다. 누군가 존재하고 사랑을 베풀고 의미 있는 기억을 남겼다는 사실 자체가 중요하다. 중요한 건 그것뿐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