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전에 독감 확진을 받았다. 타미플루를 링거로 맞고 오일정도 지나면 낫는 평범한 수순을 밟는 듯 했으나 독감이 진화했는지 내 몸뚱이가 퇴보했는지 모르겠다. 새벽에 고열이 내려가지 않아서 일주일동안 응급실을 세번이나 갔다. 어찌나 몸이 시달렸던지 피검사에서는 백혈구수치가 너무나 낮게 나왔다. 의사선생님이 이대로는 안되겠다. 이번주까지 안 멈추면 입원해서 독감이 아닐수도 있는 모든 가능성을 검사해보자라고 하셨다. 독감새끼가 귀가 달렸는 지 의사선생님 말씀을 듣고 응급실을 나와서부터 발작적인 기침이 멎었다. 바이러스에 귀가 달린 줄 진즉에 알았더라면 내 소중한 육아휴직의 시작을 이렇게 날려먹진 않았을텐데.
다시금 생각하지만 인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아주 사소한 변수, 의도없이 닥치는 불행, 예측 불가능한 사실상 모든 일들 앞에서 무력하기 짝이 없는 존재다. 개 돼지와 마찬가지로. 닭 개미 호랑이랑 다를 바 없이. 길가에 노출된 꽃이나 무방비하게 자라난 잡초처럼.
열이 계속되면 백혈구 현미경 검사를 받아보자고 했다. 젊은사람이 독감따위로 이렇게 오랫동안 열이나고 백혈구 수치가 이렇게 낮아질 수 있나 라고도 하셨다. 집에 가는 길에 열이 오르자, 백혈구와 관련된 모든 질환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다행히 아는 질환이 얼마 되지 않았다.) 상상했던 모든 가능성들이 사실은 실제여도 이상하지 않고 실제로 누군가에겐 현실이다. 생은 언제나 예측불가능하고 우연과 불운은 특별한 목적이 없다.
삼일 전에 다시 고열이 났다. 열만 오르면 다행인데 양쪽 다리가 저리면서 벌겋게 변하더니 퉁퉁 붓기 시작했다. 의료계 종사자가 아니라도 본능적으로 좋지 않다는 확신이 들었다. 다시 밤에 응급실을 찾았다. 역시나 다리가 부은 건 열이 나는 것과 관심도가 달랐다. 딱히 그런식의 관심을 갈구했던 것은 아니지만, 내 다리 입장에서는 그런 시선 집중은 처음이였을 것이다. 의사 간호사가 번갈아가면서 와서 못생겨진 다리에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평소같았으면 다리가 수치사 했을 일이겠으나 열에 혼미해진 뇌가 거기까지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간수치가 치솟았고 혈소판 수치가 많이 떨어져있다고 했다. 아마도 항생제를 많이 복용해서 항생제 거부반응이 일어난 것 같다고 했다. 독감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이었다. 작긴 작았는데 20층에서 처 쏘아 올렸나보다.
퉁퉁부은 손으로 간만에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항상 끼고 있던 반지에 살해 위협을 느꼈다. 오전 내내 비누칠을 해서 손에 갖힌 반지를 빼낸게 내 오늘하루 가장 큰 업적이다. 손금이 아주 선명해졌다. 손이 부으면 손금도 희미해져야할 것 같은데 운명은 그런식으로 작동하는 게 아닌가 보다. 손금이 피눈물을 흘리는 것처럼 시뻘겋게 깊어졌다. 줄어든 혈소판들이 거기에서 터졌나? 무력한 인간이여 나 여기있다. 라는 운명의 메시지같았다.
열도 내렸고, 다리 부기도 많이 가라앉았다. 수북해진 발등과 통통해진 손만 바이러스의 마지막 발악처럼 남아있다. 삼주간을 거의 누워서 생활했더니, 안그래도 근육이 부족한 몸뚱이가 마쉬멜로우가 된 느낌이다. 다시태어난 마쉬멜로우가 되고 싶다. 운동하는 마쉬멜로우. 체력을 비축한 마쉬멜로우, 20층에서 떨어지는 돌들을 가뿐히 피하는 날렵한 마쉬멜로우.
아직 간수치가 높은 마쉬멜로우는 일기 한 장을 쓰는 것만으로 체력을 다 소진한 것 같다. 내일은 이보다는 좀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