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내가 부럽겠지?!

by 기묘염

휴직한 지 11 일 째다. 초등학교 입학식 후 이틀은 아이 등하교에 정신 없었고, 삼일째부터는 엄청난 독감에 걸렸다. 링거를 맞아도 열이 떨어지지 않아서 한 오일을 고생했고, 열이 떨어진 후부터 발작적인 기침으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어제부터 좀 나아지더니 오늘에야 좀 살 것 같다.

꿈꾸던 휴직자의 로망을 오늘부터 시작했다. 아침에 아이를 등원시키고 바로 운동을 나갔다. 요즘 열풍이라는 러닝을 한시간 하려고 했는데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걸 런..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뭐랄까 조금 런하고 많이걷고 조금 런하고 많이 걷고를 반복해 보았다. 사람들이 어떻게 달리기를 할 수 있는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사람이 이 분 이상 연속해서 뛸 수 있다고? 내 체력으로는 이 분 뛰고 십분 걷고, 그 다음 이분 뛰고 이십분 걷고를 반복하는게 최선이었다. 그래도 아주 만족스럽다. 지난 보름간 총 걸음수보다 많이 걸은 거 같다.
운동을 다녀와서 씻고 머리 말리고 청소를 좀 했더니 열한시가 다 되었다. 직장동료들이 나의 휴직은 만류하며 일 안하면 시간이 안가. 지루해. 돈은 못버는데 돈만 더써. 라고 했었는데 그 중 딱 하나만 맞다. 시간은 열 배로 잘간다. 시간이 잘가니 지루할 틈이 없다. 돈은 못 버는데 돈만 더 쓴다.

이제 티타임이다. 영국 유산계급처럼, 우아하게 앉아서 가장 예쁜 컵에 커피를 내리고, 가장 예쁜 접시에 치즈케이크를 담았다. 그 시절 귀족과 다른 점이 있다면, 커피는 직접 내리고 설거지도 직접한다는 것 정도다. 뭐! 큰 차이도 아니다. 지난 십일간 컵을 두 개나 깨먹었다. 지난 십년간 한 번도 깨뜨리지 않은 그릇을 연달아 두개를 깨뜨리다니 불길하다고 했더니, 남편이 그야 지난 십년간 니가 집안일에 손을 안댔으니까.. 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다. 신체 노동에 있어서 좀 고문관 스타일인데 안해서 몰랐던 거 같다. 나에 대해 새롭게 알아간다. 그렇지. 휴직이 이런거지.

차를 마시면서 일기를 쓴다. 감동에 마음이 벅차 오른다. 독감으로 떨어진 식욕이 체중감량으로 이어지기 전에 식욕을 되찾은 거 같다. 그렇게 빨리 찾을 필욘 없는데. 내가 먹었던 치즈케이크 중에 제일 맛있다. 일을 안하니까 스트레스가 없다. 무려 열한시까지 내 신경을 건드리는 사람이 단 한명도 없다니!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아도 되다니! 실랑이를 하거나 설득을 하거나 설명을 할 필요가 없다니!
일기 다 쓰고, 무슨책을 읽을 지 고민중이다. 내 생에 가장 평화로운 고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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