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장과 입학식

by 기묘염

여기저기 곡소리가 들린다. 이쯤 되면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호랑이에 물려 죽은 옛날 사람들이 많을까 주식장에 물려 죽은 요즘 사람들이 많을까? 어떤 게 더 비참한 죽음일까? 호랑이는 그래도 순식간에 끝내준다는 강점이 있다. 어렸을 때 배우지 않았나.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한 거라고. 인생은 과정의 연속이고 죽음 또한 과정이라고. 게다가 호랑이한테 죽으면 일종의 천재지변으로 동정이나 사겠지만, 주식장은 일종의 지팔지꼰으로 손가락질이나 안 받으면 다행이다. 신이, 혹은 자연이 호랑이를 만들 때는 이걸로 어떻게 인간을 조져보자 라는 의도는 없었겠지만, 글쎄 인간이 주식장을 만들 때는 분명히 어떤 의도가 개입했고 그게 오직 선한 의도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하지 않은 의도의 개입으로 개인이 잘못된 선택을 하고 나락에 빠졌다면, 오직 그들의 잘못이라고만은 볼 수 없고 좀 억울한 면도 있고 잘하면 피해자인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주식이란 것이 호랑이와는 달리 실체가 없어 책임을 물을 길이 묘연하다. 현대인의 호랑이 굴은, 제 발로 들어가서 정신 똑바로 차려도 뒈지는 뭐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나도 물렸다. 호랑이도 이렇겐 안 물 거 같지만 워낙에 금액이 소소하고 잠깐 행복했으니 이자를 좀 돌려준다라고 정신승리하고 있다. 역시 무산계급의 동아줄은 근로소득인 것이지. 근면하게 일하고 티끌 모아 돌려받은 티끌로 근근이 살아가면 타고난 계급의 명예는 지킬 수 있지 않나 뭐 그런 교훈이라도.. 근데 교훈은 왜 언제나 소시민이 깨우처야 할 몫일까??
소시민인 게 내 잘못은 아니다. 열심히 살고 열심히 가르쳐서 근면성실한 차세대 소시민을 길러내기 위해 인생을 갈아 넣고 있는 중이다.

아이가 그러니까 차세대 소시민이 드디어 초딩이 되었다. 첫날 입학식은 내가 더 긴장한 거 같다. 아침부터 짝짓기 하러 가는 공작새마냥 공들여 치장을 했다. 내 첫인상이 아이의 첫인상이다 하는 뭐랄까 내가 생각해도 궤변인데 사실 불안해서, 이 불안에 대응하는 법을 몰라서 깨끗이 씻고 치장하며 분주함으로 불안감을 대신한 거 같다. 아이도 속옷부터 겉옷 신발까지 모두 새 걸로 깨끗하고 단정하게 입혔다. 시작이라는 게 이런 거다 하는 상징성을 좀 부여해야 어린이의 마음가짐도 새로워지는 거라 주장했지만 이것도 그냥 불안해서 그랬다. 그런 나를 보고 남편이 “새 거 입는다고 호박이 수박 되냐. 어린이들이 그런 거에 관심이나 있나.. 선생님이 처음 보는 애들이 뭘 입고 뭘 하는지 아시기나 하겠냐”라고 했지만. 전날 미용실 가서 새치 가린다고 염색하고 온 인간이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침에 나보다 오래 씻고 나보다 오래 치장한 후에 제일 비싼 점퍼에 바지 꺼내 입는 거 내가 다 봤다.
이런 부모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애는 마냥 신났고, 마냥 오랫동안 아침밥을 공들여 먹고, 새 옷에 밥풀을 오백알 정도 떨어뜨리고, 입가에는 하.. 말을 말자.
입학식에는,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러니까 짝짓기 하는 공작새마냥 치장한 사회교육의 산물들이 , 한껏 공들여 놓은 새끼 공작새들을 데리고 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계속 뭔가를 당부하고, 자리를 직접 찾아주고, 번호를 찾고 이름을 찾고, 의자를 찾고, 옆자리 친구랑 대신 인사도 시켜주고 유치원친구나 동네 친구 아는 애가 있으면 잠시나마 불안감을 덜어내며 대신 입학식을 치르고 있었다.
이 아이들은 무엇을 배우고 어떻게 자라서 어떤 인간이 될 것인가. 근면 성실한 소시민이 될 것인가, 유혹에 빠져 이런저런 현대판 호랑이들의 아가리에 스스로 걸어 들어갈 것인가. 순종적인 노예가 될 것인가 반항적인 노예가 될 것인가, 계층이동에 성공한 아이가 있을 것인가, 오히려 더 굴러 떨어지는 아이가 되지는 않을까. 뉴스 머리기사에 쉬었음 청년(그들이 맘편하게 재대로 쉬어본 적은 있겠나!?) 같은 모멸적인 단어로 묘사되는 그 시대의 상징이 될 뿐일까. 해맑은 아이들에게 우리가 줄 수 있는 미래가 보잘것없어서 생각하고 상상할 때마다 불안감만 배가 된다. 그 불안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그저 순종적인 소비자의 정체성으로 극복하기에는, 치장한 공작새들이 어찌할 수 없는 심연 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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