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뭘 구한다고?(서평 아니고 독후감)

프로젝트 헤일메리 -엔디 위어

by 기묘염

내가 여태 sf를 좋아하지 않았던 건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이해의 문제라는 건 내심 알고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확실하게 알게 된다. 나는 이해력뿐만 아니라 상상력도 부족했다는 것을. 나의 덜떨어짐을 실감할 수 있게 해주는 천재적인 사람들을 크게 반기는 편은 아니다.

이 책은 가장 큰 매력은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다. 나에겐 없는 바로 그것. 그것만 없으면 다행인데 과학적인 지식도 없어서 이 책은 그야말로 내게 없는 거의 모든 것을 갖춘 경이로운 책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나 같은 사람도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책을 읽어 낼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다는 거다. 아, 물론 이해와는 별개다. 나는 이 책의 쫀쫀하고 기발한 스토리에 감탄을 연발했지만. 이 책에 나오는 전 우주적 과학과 공식과 계산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보탤 수 없다. 뭐 스토리라도 이해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이 작가의 첫 작품인 마션에서부터 프로젝트 헤일 메리까지 부인할 수 없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내가 그 책의 주인공들 같은 상황이라면 아무것도 손도 못써보고 그냥 죽었을 거라는 거다. 마션의 주인공처럼 화성에서 혼자 살아남는다면, 각종 과학과 장비를 이용해 농사를 짓는 대신 나는 축구공에 이름을 붙여주고 소중한 축구공 친구에게 외로움을 호소하다 굶어 죽었을 것이다. 프로젝트 헤일 메리의 주인공이라면 애초에 그 우주선에 탈 기회조차 없었겠지. (그것 참 다행이다)




전에 테드 창의 소설을 보고. 나의 지엽적이고 편견으로 가득 찬 상상력 없는 뇌에 회의를 느꼈던 기억이 있다. 내 우주적인 상상력은 이티와 에어리언의 어디쯤이다. 외계인이란 머리통과 몸통 정도는 구분 가능한 못생겼지만 귀여운 구석이 있는 선한 친구 거나 혹은 머리통이 있긴 있는데 입이 유난히 강조된 비주얼을 가진 역겹게 생긴 포식자 정도의 이미지다. 일단 만나면 어떤 식으로든 ( 손가락을 맞대든 비명을 지르다가 머리통을 부수든) 그에 걸맞게 반응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두 별의 대기 환경이 달라서 그저 와서 공기에 노출되는 것만으로 외계인이 녹아버릴 거라던가, 교감하기 위해 맞출 눈 자체가 없다던가 (생각해 보면 눈이 있다고 해도 두 개라는 법이 없다. 백 개면 몇 번째 눈에 맞춰서 교감해야 하지?) 가청 범위가 달라서 서로 들을 수 없거나, 시각 자체가 없고 아주 발달한 청각으로 본다거나 이런 건 상상조차 해 본 적이 없다. 하기야 같은 인간조차 이렇게 생각과 이해의 폭이 다른데 감히 뭘 이해할 수 있겠나 ( 이 책의 작가가 나를 만난다면 과연 대화라는 것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이 작가의 입장에서는 외계인이 더 적절한 대화 상대일 것 같기도 하다. )


이 책 속의 인간과 외계인은 언어가 다르지만 어쨌든 대화가 가능하다 그래서 외계인이 묻는다

" 왜 우리는 같은 속도로 생각?"

"우린 같은 속도로 생각하지 않아 넌 나보다 계산 속도가 훨씬 빨라 기억력도 완벽하고 인간은 그렇지 못해 에리 디언들 이 머리가 더 좋아"

"계산은 생각이 아님. 계산은 과정임. 기억은 생각이 아님. 기억은 저장임. 생각은 생각임. 너랑 나는 같은 속도로 생각함 왜? "

나도 정말로 좋은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인간과 인간의 대화도 그렇다. 중요한 건 생각의 방향과 속도다.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는 지점은 바로 그 부분이다.

이 책을 사기 전에 본 리뷰에는 유난히 본인이 문과생이라는 고백이 많았었다. 단언컨대 이과생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을 거 같지는 않다. 이건 그냥 인간의 이야기다. 물론 그 인간이 과학 인간이긴 하지만 소통의 주제가 과학이었을 뿐이지 소통의 본질이 과학인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뇌는 문과와 이과로 나누어진 것이 아니라, 그저 공감과 비공감으로 나누어졌을 뿐이다.

결국 지구를 구한것은 사명감 넘치는영웅이 아니라 유머러스하고 공감능력좋은 성실한 찌질이였다.


네 우주선의 이름이 뭐냐고 묻는 인간에게 로키는 이름이 없다고 한다. 왜 없냐고 묻자 로키는 인간에게 니 의자의 이름이 뭐냐고 묻는다. 의자에는 이름이 없는데 왜 우주선에는 이름이 있냐는 거다.

로키는 인간이 비효율적으로 물을 많이 먹는데 심지어 구멍에서 물이 샌다고 역겨워한다.

나는 이 작가의 유머 코드가 정말 좋다. 이 작가의 첫 작품임 마션의 첫 문장에서부터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될 것을 예감했었다. 마션의 첫 문장은 이렇다

"아무래도 좆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