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동생이 최근 아이를 낳았다.
제왕으로 수술해서 아이를 낳은 바로 그날부터 날마다 빠짐없이 블로그에 육아일기가 올라오고 있다. 매일매일 아이를 보고 느끼는 감격, 낳자마자부터 날마다 새롭게 추가되는 고민과 출산 이후의 어려움. 수술 후의 고통과 수유와 단유 젖몸살 같은 문제들을 사건조서처럼 세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그걸 보면서 그때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올라오기도 하고, 우리 애는 그때 어떤 모습이었는지 궁금하기도 해서 내 블로그를 한 번 돌아봤다.
보고 떠올리게 된 가장 중요한 사실은 , 나는 끈기 없고 게으른 인간이라는 거다.
물론 몰랐던 건 아니지만, 매일 기록을 남기는 자의 성실함 앞에서 더욱 너덜너덜해 보이는 인간적 결함이다.
일단 처음으로 육아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 아이가 태어나고 육 개월 이후부터였다. 아이 낳고 7일간 가장 쉽지 않은 기간임에도 감사와 행복으로 넘치는 것 같은 사촌동생의 글을 보면 또 내 육아일기는 음침하기 짝이 없다. 6개월 만에 겨우 시작했는데 그마저 다 이유식 싫다. 이유식 하기 귀찮다. 애가 이유식을 안 먹는다. 이유식 맛없다. 이유식 방금 만들었는데 내일 거 또 만든다.
뭐 이런 내용밖에 없었다.
뒤늦게나마 육아기록을 시작하고 나서도, 쓰는 횟수는 점점 띄엄띄엄 줄어들더니 최근엔 한 달에 한 번이나 쓰면 다행인 정도의 빈도로 글이 올라와 있었다.
아이가 먹는 것, 방귀 뀌는 것, 트림하는 것에 감동을 받고 격하게 사랑을 느끼는 사촌동생의 글을 읽다 보니, 내가 너무 감정이 무딘 편인가 싶기도 하고, 좀 감동을 덜 받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병원에서 처음 찍어준 발도장 같은 건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고(비밀인데 버린 것 같다) , 탯줄은 고민 없이 그냥 버렸다. 뭐 사람마다 다른 거니까 개인적 성격차이정도로 쉽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지만, 평생을 나로 살아온 입장에서는 좀 걸리는 문제다. 이런 경험이 한 번이겠나. 살면서 여러 번 다른 타입의 사람들을 볼 때마다 느꼈던 것들, 내가 내 스스로 결함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들이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그동안 그저 끈기 부족 성실함부족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실은 어떤 종류의 회피와 맞닿아 있고, 그저 좀 무심하고 무디다고 여겼던 것이 실은 어떤 감정적 무능과 닿아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이 둘은 같은 말 같기도 하다.
비단 육아의 영역, 뭐 사소한 기록의 문제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와 사회생활, 내가 느끼는 감정과 경험마다 촘촘히 엮여있는 내 본질이 아닐까 싶다.
오늘 잠깐 이런 생각을 했다가 내일이면 다시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것이다. 내가 이런 인간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이런 인간이 저런 인간이 되는 것은 쉽지 않다. 저런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도 모를뿐더러 뭘 어떻게 해서 어떤 식으로 변화를 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고, 또 어떤 식으로 변한다 한들 그것이 더 좋으리라는 확신도 보장도 없다. 다만 알고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변명이 하고 싶은 순간이 왔을 때,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비겁해질 때, 어떤 선택의 기로에서 더 최악인 선택을 하기 직전에 한번쯤 내가 어떤 인간인지 객관적으로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쩌면 좀 덜 부끄러운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언젠가 한번쯤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