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10일 목요일 밤 오로라를 관측할 수 있다는 보도가 인터넷을 달구었다. 아이슬란드처럼 북극에 가까운 지역에서만 볼 수 있다고 믿어왔던 오로라를 시애틀에서 볼 수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 일이다. 하지만 지난 4월에도 시애틀에 오로라가나타났었다니 이만저만 기대가 되는 게 아니다.
추운 걸 싫어하는 나는 오로라를 보기 위해 알래스카나 노르웨이 같은 곳으로 여행을 하지는 않을 거라 이야기했었다. 한국보다 조금 기온이 낮은 시애틀에서도 감기를 달고 살았는데 더 추운 곳이라면 어떨지 충분히 상상이 되기 때문이다.
오로라는 정녕 마음 속만에 있는 것인가
그런데 추운 나라에 가지 않아도 오로라를 볼 수 있다니 얼마나 행운인가. 손주들을 일찍 재우고 용감하고도 당당하게 가리라.
오로라 관측이 예상된다는 저녁 10시경. 나는 뉴스에서 알려 준 대로 따뜻하게 옷을 껴입고 휴대폰을 들고 불빛이 없는 개활지인 가까운 아이들우드 공원으로 향했다.
저녁 10시면 대부분의 미국 도로에는 차량이 거의 없다. 공원으로 가는 길은 어둡고 무서웠는데 드문드문 보이는 집 앞에는 유령이나 해골, 거미나 젝오렌턴등 핼러윈 장식이 불을 밝히고 있어서 더욱 기괴했다. 차라리 집으로 돌아갈까 고민도 했지만 어쩌면 오로라를 보는 내 일생에 단 한 번의 귀한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욕심에 졸리는 심장을 부여잡고 공원 주차장에 파킹을 했다.
착시인지 오로라인지
공원의 입구는 닫혀있었지만 사람이 드나드는 작은 문은 늘 열려 있다. 멀리 조그만 불빛이 슬쩍슬쩍 보이는 걸 보니 사람이 있기는 한 듯. 하지만 가로등도 조명불빛도 없는 공원은 그야말로 암흑천지였다. 휴대폰 전등을 켜서 발밑을 비춰보았지만 칠흑 같은 어둠이 휴대폰 전등불빛을 삼켜버리는 듯 평소에는 그리 밝던 불빛도 힘을 쓰지 못한다.
이렇게 사람이 없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인기척이 없는데 멀리서 헤드렌턴을 쓴 사람이 걸어온다. 어찌나 반갑던지 인사를 할 뻔. 어둠 속에서 또 한 사람이 걸어오는데 큰 카메라를 들고 있다. 벌써 오로라 사진을 다 찍은 건가? 공연히 마음이 바쁘다.
그날따라 불타는듯 아름다웠던 석양
사람이 오던 쪽으로 걷다 보니 발에 물이 찰랑. 물웅덩이였던 모양이다. 생각해 보니 길은 좀 더 오른쪽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어둠 속을 더듬어 걷다 보니 호수가 보인다. 아이들우드 공원은 커다란 호수를 끼고 있는 공원이라 오로라를 보기에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물가에 도달하니 반갑게도 서너 명의 사람들이 보인다.
한 사람은 밤낚시를 하는 사람이고 두세 명은 오로라를 보러 나온 듯 휴대폰 카메라로 하늘을 찍고 있다. 나도 하늘을 찍어 보았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오로라도 휴대폰 카메라로는 포착이 가능하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심야에 보는 호수의 검은 물빛이 나를 삼킬 듯 무서웠지만 이대로 돌아설 수는 없는 문제.
밤에 보면 더욱 무서운 핼러윈 장식
하늘을 보니 구름만 잔뜩 끼어있고 슬쩍 빗방울도 지나는 듯하다. 조금 있으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가족이 한참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주차장으로 나간다. 10분, 20분, 30분… 시간은 흐르는데 하늘빛은 여전히 깜깜하기만 하고 몇 명 없었던 사람들마저 공원을 빠져나간다. 갑자기 추위가 파고들며 섬뜩한 공포에 머릿털이 쭈뼛선다.
‘애고 무서라. 오로라고 뭐고 집에 가야겠다’
갈 때보다 올 때가 더 무서운 건 무슨 일일까. 아쉬워 뒤를 돌아보고 싶어도 돌아볼 수 없는 건 또 무슨 일일까.
나무에 걸린 핼러원 장식
오로라 보려다 미국 유령에게 머리채를 잡히는 건 아닐까. 걸음아 날 살려라 쌩하니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보니 오로라를 보려면 인내심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추위를 이길만한 체력과 강한 호기심 그리고 어둠을 무서워하지 않는 담력이 필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