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고기가 싸다더니 그 말이 맞더라. 한국 코스트코에서 미국산 소고기를 구입하는 이유는 질보다는 양이다. 아들들이 한창 클 무렵부터 우리 집 밥상에는 한우가 올라오지 못했다. 한우라면 생일날 미역국에 넣어 먹는 정도지 감히 구워 먹는 한우는 생각도 하지 못한다. 채소보다는 고기파인 우리 가족은 한번 먹으면 보통 1인 1근이고 한창 먹을 때는 아들 둘이 1인 1KG 씩을 먹어치우기도 했다. 그것도 매일. 물론 소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종목을 변경해서 먹기는 했다. 짐작하겠지만 앵겔계수가 엄청나게 높은 집이었다.
다들 결혼을 해서 각 각 가정을 이루고 나니 식비가 확 줄었다. 둘이 먹어봐야 얼마를 먹나. 그래서 남편과 나는 60세가 넘어가면서부터 한 달에 한두 번 좋은 고기를 먹기로 했다. 둘이 먹으니 한우 600그램도 한 끼에 다 먹지 못한다. 자주 먹는 것도 아닌데 뭘 그리 아끼나 싶어서 호사를 한다.
그런데 미국에 오니 온통 미국소뿐이다. 한국에서의 경험 때문인지 고기를 사러 가면서 다소 불안했다. 한국에서 구입한 미국 소 맛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들들은 지금도 호주산이나 미국산 수입소고기를 좋다고 하지만 남편과 나는 점 점 한우가 입에 맞는다. 그런데 여기는 미국이 아니던가.
와규 소고기는 비교적 비싼편이다
코스트코에서 소고기를 구입했다. 부위 별로 조금 다르지만 가격은 1lb(온스. 약 450그램) 당 6불에서 12불 정도면 적당한 고기를 구입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삼겹살도 100그램에 3천원에서 5천원 사먹으면 1만원이 넘는데 미국에 오니 소고기를 100그램당 5000원에서 1만 원 정도면 먹을 수 있는 것이다. 부위이름이 생소하지만 주부 40년 차의 눈으로 대충 꽃등심이려니 하고 구입했는데 역시나 맞았다. 냄새가 나거나 질기면 어쩌나 했는데 웬걸 한국에서 먹던 미국산 소고기와는 맛도 향도 다르다. 이건 무슨 일이지? 심지어 돼지고기와 가격차이도 얼마 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매일 소고 기지. 미국에 와서 한 달 동안 가장 많이 먹은 것이 소고기다. 처음엔 몰랐으나 미국 소고기 부위까지 공부해 가며 등심, 꽃등심, 새우살, 갈빗살 등등 한국에서는 먹기 힘든 소고기를 거의 매일 먹다시피 했다. 등심구이, 갈비찜, 갈비탕과 장조림, 육전에 수육까지 소고기로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란 요리는 실컷 하고 나니 이제 더 이상 고기를 먹기가 싫어질 정도다.
삼겹살은 없지만 돼지고기도 싸다
소고기 값이 제일 싸니 매일 소고기를 먹고 그러다 보니 미국 사람들이 그렇게 살이 쪘구나 싶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한 달가량 소고기와 돼지고기로 온통 식탁을 도배하다가 문득 생선이 그리워졌다. 시애틀이 생선도 유명한 곳이라는데 우리는 왜 그동안 생선을 먹지 않았을까. 매일 고기만 먹으면 콜레스테롤도 쌓이고 하니 생선도 먹어야지.
코스트코에 가보니 우리가 아는 생선이 별로 없다. 더구나 대부분의 생선이 껍질을 벗긴 채 냉동된 제품들이라 구입하기가 망설여진다. 한두 토막 적은 양을 파는 것도 아니고 한번 사면 엄청난 양이라 이리저리 살펴보며 침만 삼키다 돌아왔다.
껍질 있고 이름 아는 생선 고등어
다음 날 몇 가지 세일 소식을 듣고 가까운 일본식품점에 가게 되었는데 일본 식품점에서 반가운 고등어를 영접했다. 미국산 고등어겠지. 설마 일본산이겠어. 생물고등어 파운드당 5.99불. 대충 사이즈를 보니 한 마리에 만 오천 원 정도 할 것 같다. 껍질 있고 이름 아는 생선을 만난 것이 반갑기는 하지만 얼른 손이 가지는 않는다. 우리 식구 모두 먹으려면 한 손(두 마리)은 필요한데 그러기에는 조금 비싼 감이 없지 않다. 소고기 값에 비교하면 그렇다는 이야기다.
베트남 산 자반 고등어
돌아서 나가려는데 남편이 보물이라도 찾은 듯 “여기야”를 외친다. 남편 소리를 따라가 보니 냉동 생선 코너다. 솔티드라고 적힌 걸 보니 자반인 모양. 생물의 3분의 2 가격에 자반고등어를 세일하고 있었던 것이다. 포장을 살펴보니 베트남산 고등어다. 한국에서는 노르웨이산 고등어를 먹었는데 미국에 오니 베트남산 고등어를 파네. 그것도 일본 식품점에서?
그날 저녁 식탁에서 손주들의 기쁜 외침을 들었다.
“할머니 이거 한국맛 하고 똑같아. 한국에서 먹던 맛 하고 똑같아. 맛있어요.”
그래~ 이 맛에 요리하지. 결론으로 말하자면 일본식품점 우와지 마야에서 산 베트남산 자반고등어는 성공이었다. 그냥 한국 식당 <고등어밥상>에서 먹는 고등어 맛이었고 아이들도 어른들도 오랜만에 고등어를 먹으며 한국 생각을 했다.
나중에 보니 한국 식품점에도 가격은 다르지만 생고등어와 자반고등어가 천지삐까리였다. 자세히 보니 약간 모양은 달라도 조기도 있고 부세도 있고 병어도 있고 갈치도 있는데 포장상태나 가격이나 그중 제일이 자반 고등 어지 싶다. 미국에 오니 별게다 고향을 떠올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