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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Nov 20. 2024

20년 만에 다시 잡은 골프채

혼자가 외로웠던 남편의 큰 선물

내 인생에 또 다른 도전

미국 두 달 살기를 마치고 귀국 한 날 남편은 아이처럼 반가워했다. 나보다 한 달 먼저 귀국한 남편은 단기 독거노인(?)의 삶을 체험하고 있었다. 처음 며칠은 출장도 다녀오고 소홀히 했던 회사도 관리하며 나름 바쁘게 살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했다.


 그동안 먹고 싶었던 한국음식도 찾아 먹고 골프도 나가고 그러는가 했는데 어느 날부터 소식이 뜸하더니 이윽고 나에게 개인톡으로 잠이 안 오느니 심심하다느니 외로움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만들어 먹었다며 밥상을 찍어 보여주는데 손주들이 쓰던 작은 좌탁에 단품요리를 단무지와 함께 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단촐한 남편의 식사

“어머니, 아버님이 너무 외로워 보여요. 식탁을 두고 애들 탁자에서 쪼그리고  밥을 드시니 더 안쓰럽네요. 어머니 가실 때가 됐나 봐요. 잡고 싶어도 아버님 생각해면 보내드려야 할 것 같아요.”


평소에 5첩 이상 반찬을 늘어놓고 먹는 걸 좋아하는 남편이 혼밥을 더니 국밥단무지만 추가해서 먹고 있었다. 혼자 먹으려니 요리를 위해 준비하는 것도 밥 먹고 설거지하는 것도 다 귀찮더란다. 남은 밥과 반찬으로 간단하게 점심을 때우는 것에 익숙한 아내들이라면 너무 이해되는 부분이긴 하다.      


“혼자 살아보니 너무 힘드네. 허전하고 의욕도 없고 아무것도 재미가 없고 우울증이 올 뻔했어. 당신이 나보다 먼저 죽으면 안 되겠어. 건강하게 나보다 하루라도 오래 살아.”


만난 지 44년 결혼40년차

뭐야 이 스윗한 멘트는?


혼자 살기 한 달. 남편은 아내의 빈자리를 제대로 경험한 것이다. 이제야 마누라 귀한 것을 제대로 알았나 싶어  슬그머니 미소가 지어질 따름이다.


한 달간의 독거노인체험 효과는 기대이상으로  컸다. 가장 큰 변화는 건식화장실이 대부분인 미국에서 한 달간 앉아서 소변보던 습관이 한국에서도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같이 살면서 평생을 부탁해도 안 되는 습관이었다) 혼자 지내다 보니 화장실 청소가 귀찮았는데 앉아서 소변을 보니 일이 줄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 큰 변화는 식단이다.  내가 차려주면 기본 5가지 이상의 반찬을 펼쳐 놓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이제 한두 가지면 충분하단다. 혼자 살아보니 반찬 여러 가지 늘어놓으니 재료도 음식도 남아서 버리는 게 너무 많고 설거지도 늘어서 불편함이 많았단다. 세상에나~ 나로서는 이보다 땡큐는 없다. 분리수거도 스스로 잘하고 건조기에서 나온 빨래도 알아서 개어준다. 뭐야? 다른 사람이 된 거야?


단기 혼자살기 체험도 나쁘지 않다

그뿐만이 아니다. 돌아온 지 일주일 만에 골프채를 사주겠다며 나가자고 한다. 골프채 놓은 지 20년 만에 다시 골프라니.


“요즘 100세 시대잖아. 당신과 내가 늙어서까지 같이 할 수 있는 취미생활 겸 운동이 골프인 것 같아. 수영도 좋고 자전거도 좋지만 늙어 갈수록 쉽지 않거든. 예전에 해 봤으니 조금만 연습하면 금방 실력이 좋아질 거야. 지금보다 더 늦으면 다시 시작하기도 어려워.”


20년 전 40대에 처음 시작했던 골프는 영 내 스타일의 운동이 아니었다. 그때도 남편의 권유로 시작했지만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어색하고 불편하기만 했다. 연습장에 나가 레슨도 받고 라운딩도 몇 번 나가 보았으나 어쩐지 당시의 골퍼들과 동화되기 어려웠다. 그러다 남편 회사가 어려워지며 자연히 골프부터 멀리하게 되었다.


하지만 환갑이 넘고 생활도 어느 정도 안정되다 보니 골프를 하는 친구들의 건강한 모습이 다시 보였다. 나도 수영을 하며 체력을 키우고 있지만 남편과 함께 라운딩을 즐기는 친구의 모습이 때때로 부러웠다.  남편은 벌써부터 그런 마음이 있었는지 몇 년 전부터 골프를 해보라고 권유했었다. 그러나 손주육아를 담당하는 할미는 골프를 칠 시간적 여유가 쉽지 않다. 수영도 간신히 시간을 내서 다녀오는 정도였으니 말이다. 지만 이제 손주육아도 졸업을 한터. 게으름 빼고는 못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불감청인들 고소원이라. 남편의 외로움 끝에 나에게 골프채가 왔으니 내 남편의 외로움은 참으로 고맙고 귀하기도 하다.       

나는 골린이 할머니다

그러나 막상 연습장에 올라가니 쉽지 않다. 사실 20년 전에도 쉽지 않아서 골프는 나와 인연이 없나 었는데 더 나이가 든 지금 당연히 내 맘대로 되어줄 리 없다. 하지만 음악성이라고는 없어서  절대 안 될 것 같았던 해금도 연습과 연습 끝에 서툴지만 소리를 내고 있지 않은가. 다른 건 몰라도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진리를 믿기에 오늘도 연습 또 연습에 매진한다 


이렇게 겨울을 지내고 봄이 오면 골린이 할머니의 벚꽃라운딩이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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