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여행, 서울의 여름을 걷다

by 소금별


광복절 아침, 서울은 이미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새나라 새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을 보기 위해

예약한 것이 서울여행의 시작이었다. 남편이 하룻밤을 잔다며 숙소를 예약했다.


한참을 달려 박물관이 가까워지니 차가 도로에 길게 늘어서 거북이처럼 움직였다.

‘여기부터 주차장까지 1시간 소요가 예상됩니다.’라는 현수막이

뜨거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오늘 무슨 날이야?” 남편이 물었고 나도 예상치 못한 터라 눈만 껌뻑였다.



� 박물관에서 맞이한 광복절

긴 기다림 끝에 도착한 박물관은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온 부모, 연인, 외국인들까지 더해져 여름 해수욕장을 떠오르게 했다.


뜨거운 태양 아래, 밀려드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먼저 전시회를 관람했다.

시대를 그리듯 조용히 펼쳐진 조선 전기 미술 작품을 감상하자,

안평대군의 무릉도원에 들어간 것처럼 마음이 차분해졌다.


새나라 새미술: 조선 전기 미술 대전


다리 아프게 전시를 돌아보고 점심까지 먹으니 걸을 기운이 없었다.

광장에서는 광복절 공연 준비를 하는지 아리아가 울려 퍼지고 있었고,

그 앞에 모인 인파들이 축제 분위기를 느끼게 해주었다.


“숙소에 가서 쉬자.” 남편이 말했고, 아들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네비를 따라 혼잡한 도로를 달려 예약한 호스텔로 향했다.

하얀 시트가 씌워진 침대 4개, TV와 작은 냉장고가 있는 방은,

마치 여행 프로그램에서 본 그 방들과 닮아 있었다.



� 경의선숲길의 쉼표

잠시 쉬고 나가기로 한 우리는 경의선숲길에 가보기로 했다.

철길이 있던 자리에 생긴 숲길은 생각보다 마음에 드는 곳이었다.


양옆으로 오래된 아파트와 카페가 늘어서 있었는데 낡은 공간에

자기 집인 듯 들어선 숲의 조화가 무척 어울렸다.


졸졸 흐르는 물, 하늘거리는 사초, 울창한 나무들을 마주하고,

그 안에서 코를 킁킁거리며 숲 향기를 맡으니 여름의 무더위가 잠시 잊혔다.


경의선숲길



� 홍대의 밤, 소소한 행복

해가 져도 더위는 남아 있었지만, 아쉬운 마음에 홍대를 산책했다.

와우산로에 있는 홍대는 와우산에 건물들을 들어 앉힌 듯 숲으로 채워져 있었다.


“와,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니!”

남편은 우연찮게 마주한 오래된 숲을 걸으면서 탄성을 질렀다.


홍대를 돌아나오는 길, 핫플레이스라고 하는 그 주변은 젊은 인파들이

바닷물처럼 쏴아하고 쉴새없이 밀리고 있었다.


홍익대학교 전경



낯선 골목을 헤매다 마주한 치킨집에서 치킨과 맥주를 나누고,

조금 나른해진 발걸음으로 숙소로 돌아오는 길이 그저 행복했다.


얼굴이 발그레해진 남편은 이 소소함이 흡족한지 신나보였고,

그 뒤를 아들과 내가 가벼운 발걸음으로 따라가고 있었다.


골목을 걸으며 여행은 꼭 무엇을 해서 즐거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낯선 길, 함께 걷는 시간, 소소한 맛과 냄새, 짧은 웃음 속에서 충분히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김소운의 수필 <가난한 날의 행복>에 나오는 것처럼 고구마만 먹는다고 해도

그 속에 사랑과 유머만 있다면 그 인생도 나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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