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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영순 Oct 05. 2024

 엄마의 가르침

- 누구에게도 모질게 하면 안 된다 -

 살다 보면 결정이 어려운 일이나 참기 힘든 순간이 수도 없이 생긴다. 그럴 때 우리들은 과거의 경험치들을 적극 활용한다. 나는 엄마의 조언이나 삶의 모습을 떠올렸다.

 - 내가 아무리 어려워도 엄마가 헤쳐 온 어려움만 할까?-

  70년대 오 남매를 대학에 보낸 엄마의 억척스러움은 불굴의 의지가 아니면 불가능했을 터. 이미 5년 전에 고인이 되셨지만 지금도 존경스럽다.

작은 오빠가 그린 삽화. <권가네 이야기>에서 들밥을 내가던 이야기 속 삽화다

 일제 강점기. 엄마는 용인에 있는 수지 국민학교를 다니셨다. 그 학교에서 엄마는 용인으로 발령받아 오신 일본인 여자 담임 선생님을 만나셨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그 시절. 그 선생님은 하숙집 호롱불 아래서 스타킹을 기우시며 종종 찾아오던 어린 제자에게 자주 이런 말씀을 해 주셨단다.

 본인은 여기서 교사를 하지만 아들 둘을 사범학교에 보내고 있다고. 순상(엄마는 용인 이 씨다)이 너도 자식을 낳으면 나처럼 대학을 꼭 보내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라고.

 내 어머니 이순상 여사는 그때 이미 아이를 낳으면 대학에 보낼 결심을 하셨단다. 그 덕분에 딸인 나도 차별 없이 대학을 다닐 수 있었다.


 그런 분이셨으니 교사가 된  내게도 제자에게 스승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르치고 싶으셨을 것이다. 교사로 임용된 이후 엄마는 너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제자들 가슴에 새겨지니 항상 말과 행동을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하셨다.


  나는 엄마의 가르침처럼 그렇게 훌륭한 교사가 되지는 못했다. 아마 수많은 제자에게 상처를 입혔을 것이다.


 그래도 노력은 했다. 아무리 화나는 일이 생겨도 거칠고 성마른 말과 행동을 자제하려고.

 큰 소리를 자제하려다 보니 설명이 길어져 듣는 사람을 지루하게 만들었다.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 상처받지 않게 하려다 보니 가끔 '내가 너무 쉬운 사람인가?' 싶은 자괴감이 드는 순간이 꽤 있었다.


  소견이 넉넉하고 품성이 온유하지도 않은데 그런 옷을 입은 척 무리해서 생긴 문제점이다.


  글은, 쓰는 사람의 여러 모습이 적나라하게 담긴다. 내가 쓰는 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롱이를 만난 것은 엄마가 돌아가신 그해 가을이었다. 인근 초등학교 울타리 공사장에서 유기된 녀석을 키우다 그해 여름 무지개다리로 떠나보낸 뒤였다. 익숙한 존재들을 다시 만날 수 없는 곳으로 떠나보내고 심적으로 힘든 날들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처음 아롱이를 만났을 때 함께 있던 남매들. 정면에  보이는 녀석이 귀요미다.

  공원은 마음의 안정을 주는 치유의 장소로 최적이었다.  거기다 아롱이 삼 남매가 있었다.

20년 새끼를 가진 채 홀로 남아 쉬고 있던 아롱이

  나는 이듬해 아롱이가 엄마가 되어 새끼 넷을 키우는 모습에 완전히 감동했다. 겨우 두 살에 야생에서 새끼를 키우는 그 모습은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고 은퇴한 나를 매료시켰다.

 사춘기의 정점인 중학생들을 수십 년 가르친 내게 경험이 적다는 소리는 못할 것이다. 나는 아롱이에게 반했다. 일하는 엄마였던 나도 만만치 않은 시간을 보냈지만 아롱이만큼 온 힘을 다해 자식을 돌 본 적이 있을까?

아롱이와 첫 번째 새끼들이 지내던 은신처.
은신처에 홀로 남겨진 까미. 눈에 이상이 있어 눈곱이 잔뜩 끼어 있다.

  <공원 냥이 아롱이>는 새끼들이 은토끼님과 우리 집으로 입양되기까지의 기록이다. 이후 이야기는 아롱이와 두 번째 새끼 중 사랑이와 고등어 그리고 아롱이와 같이 태어난 남매 귀요미 이야기다. 녀석들을 입양하지 못한 건 이미 여러 번 이유를 밝혔다.

두 번째 새끼들과 함께 있는 아롱이. 앞에 보이는 나리만 작은 아들이 입양해 키우고 있다.

 아직도 아롱이 밥을 주러 갈 때마다 내 시선은 애잔해진다. 하지만 입양과 공원에 두고 돌보는 것 중 무엇이 옳은지 지금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

더위에 스크래처에서 늘어진 까미

 까미는 에어컨이 있는 실내보다 후끈거려도 베란다에 나가 있는 걸 선호한다. 밤이면 30도가 넘는 폭염에도 까미를 위해 에어컨을 끄고 베란다를 열어둬야 했다.

공원에서 이쁜이 가족을 모두 입양해 키우신다. 아주 드문 경우다.

 지극정성 고양이 밥을 챙기러 오시는 분들은 반려였던 아이들을 보내고 트라우마 비슷한 걸 가지고 있다.


 고등어와 사랑이를 입양시키려고 고양이를 키워 본 친구들에게 부탁을 한 적이 있다. 그때마다 자주 듣던 이야기 중 하나가 고양이나 자신 중 먼저 떠날 때 남겨지는 문제였다. 난 그걸 이해한다.

 

 댓글로 여러 분들이 길냥이가 끼치는 해악에 대해 조언을 하셨다. 밥 주러 다니는 대신 입양하라는 말도 제법 들었다.

 은토끼님과 내가 여섯 마리를 집으로 들이고 남겨진 공원 냥이는 모두 다섯이다. 물론 객식구 다롱이를 포함해서다. 눈을 맞추고 밥을 청하는 다른 냥이들도 모른 척하지는 않는다. 있는 걸 모두 털어 주고 돌아선다.

사정이 있어 나 대신 밥을 챙기러 가신 이쁜이 엄마

 내 엄마의 가르침 중 지금도 유념하는 게 있다. 사람에게나 동물에게나 모질면 못 쓴다는 말이다. 공원 냥이들 밥을 주다 보니 돈도 만만치 않게 들지만 이게 내 운명이라면 건강이 허락될 때까지는 할 생각이다.


 녀석들의 눈을 쳐다보면 모질게 밥을 끊는 게 불가능하다. 다 살려고 태어났는데. 인간들이 너무 많은 걸 가지려 욕심내다 보니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인간이 욕심껏 너무 많은 동물의 서식지를 차지하고 있는 건 아닌가? 나는 지구상에서 가장 심하게 민폐를 끼치는 종이 인간이라는 사실에 대해 할 말이 없는 사람이다.

 

  고양이들이 끼치는 해악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기 전에 일주일만이라도 주변 냥이들의 밥을 챙겨보시라고 권하고 싶다. 해악을 논하기 전 생존을 위한 고양이들의 몸부림이 얼마나 처절한지. 얼마나 혹독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는지. 꼭 관심을 갖고 살펴보시라고 말이다.


 아롱이와 새끼들이 제 수명을 살고 무지개다리를 건너갈 때까지 전후 사정을 알지 못하고 해악만을 자꾸 강조하시는 일만은 거두어 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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