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영순 Nov 14. 2024

 누군가에게 광화문 길은 추억이다

  <미망> 시사회를 다녀와서

 평생진행형인 기억이 있다. 살다 보면 잊을 수 없는 아쉬운 순간들.

 엇갈린 운명이라고 하던가? 그래서 더 아쉬운?


 영화 시사회를 보러 용산으로 갔다.


 9호선 노량진역에 내려 1호선을 갈아탔다. 

 1과 9의 차이는 한강 철교를 지나며 훅 다가왔다. 동행한 전직 교장님과 수석교사님은 시드니에 온 기분이 든다며 지하철로 가는 용산 나들이를 즐거운 목소리로 지저귀신다(?). 덕분에 나까지 살짝 들떴다.


  <미망> 시사회를 가는 길. 작은 아들은 촬영 감독으로 영화 속 4계절을 찍기 위해 4년이 넘는 시간 작업했다고 했다. 저 예산 영화라 돈이 마련될 때마다 찍었을 것이라 짐작(?)되었다. 영화를 하겠다는 자녀를 둔 사람들은 경제적으로 넉넉했으면 좋겠다. 젊은 감독들이 자신의 꿈을 마음껏 펼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도록~


 5시 조금 넘어 용산 CGV에 도착. 저녁을 먹고 차도 마시고 간만의 시내 나들이를 즐겼다.

7시 조금 넘어 용산아이파크 몰 15관 앞에서 표를 가진 작은 아들을 만났다. 시사회 시간은 7시 30분! 

<미망> 시사회장 근처에서

 시사회에 참석하시겠다고 한 이 모임의 인연은 제법 오래되었다. 교육청 독토론지원단 활동을 함께 하던 분들이기 때문이다. 

- 김유정, 한용훈, 이효석, 황순원 ~.  

그 흔한 수당도 없이 교육청 관내 희망 학생들(심지어 학보모도 참여)과 문학기행 겸 독서활동을 하던 시절~. 

사춘기 시절 독서야말로 평생 삶을 이끈다는 걸 아는 교사들의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한 행사들이었다. 



 <미망>은 과거에 사귀던 연인들의 우연한 만남과 엇갈림에 대한 이야기였다. 영화 속에는 모두 세 개의 미망이 펼쳐진다. 

 첫째 미망(迷妄: 사리에 어두워 실제로는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헤맴) 이후 우연한 만남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고 시간이 흐른다. 

 그 사이 남주인공은 화가로 여주인공은 영화 해설가로 성장해 살아간다. 두 번째 미망(彌望: 멀리 넓게 바라봄)이다. 개발로 인해 폐관되는 서울극장에서 마지막 해설을 하고 나오다 여주인공은 새로운 인연을 만난다. 

 세 번째 미망(未忘: 아직도 잊을 수가 없는 것)은 친구의 장례식이다. 그쯤 되면 두 사람의 만남은 영화 속 대사처럼 누군가의 죽음 같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만날 수 없는 사이가 된다. 


 영화 속 장면에는 을지로 3가, 종로, 광화문 일대의 오래된 골목들과 이순신 장군 동상에 얽힌 이야기를 나누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천만 시민이 산다는 서울의 가장 오래된 공간 광화문. 광화문 대로 높은 빌딩 뒤에는 보통 사람들의 애환이 그대로 숨 쉬는 골목과 오래된 가게들이 아직도 남아 있다. 그래서인지 영화 속 장면들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주인공 남자와 여자의 성장과 함께 펼쳐지는 화면을 보며 추억에 잠겨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를 볼만한 가치는 충분하다고 느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도 장기하의 노래 때문인지 쉽게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제작 기간이 길었던 만큼 남자 역의 하성국 배우의 연기력도 폭풍 성장하셨구나 싶었다. 무엇보다 잔잔하게 흘러가는 내용이 부담되지 않고 마음에 오래 남을 영화였다.

시사회를 마치고 나오며 전직 교장님은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성격처럼 여자역 이명하 배우와 사진을 찍는 기염을 보여주셨다

 돌아오는 길. 작은 아들은 뒤풀이를 가야 한다면서도 나와 유쾌한 친구들을 송파까지 데려다주었다. 그리고, <미망>을 찍으며 겪었던 혹독한 추위와 고생담을 슬쩍 흘렸다. 만들고 싶은 영화를 위해 돈을 벌어 사무실을 얻고 촬영기자재를 산다고 했다. 무엇보다 영화에 진심인 친구들이 많으니 돈도 열심히 벌어야겠단다. 


 작은 아들은 운전을 하면서도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출연진과 수없이 회의를 하던 이야기를 조곤조곤 풀어놓았다. 아무래도 나를 염두에 둔 이야기 같았다. 

 몇 번이나 영화를 하며 살겠다고 단호하게 말하던 작은 아들에게 평범한 직장생활은 어떠냐는 말을 꿀꺽 삼킨 기억이 영화 속 장면처럼 스쳐 지나갔다.

 

 

작가의 이전글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