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남편은 종양 내과로 전원 된 뒤 한 달에 한 번 검사를 받고 있다. 약효를 확인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동안은 한 달씩의 유예를 받아왔었다.
아침 7시. 남편은 혈액 검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아침을 먹고 진료를 받기 위해 나가는 걸 보며 병원이 가깝다는 게 위안이다 싶었다.
검사 결과는 다행이었다. 매달 뼈를 튼튼히 하는 주사를 맞고 3개월 후 다시 검사해 보자고 했단다.
‘한 달마다 검진을 하던 데 비하면 3개월 유예가 어딘가!'
11월에는 다른 종류의 암에도 3개월 유예를 받았었다.
'이번에도 남편은 건강이라는 산 하나를 넘어가는구나!' 이런 마음이 들었다.
누구나 나이가 든다. 아무도 영원히 살 수는 없다. 그렇기에 건강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걸까?
어느 순간부터 나도 건강이라는 문제 앞에만 서면 담대하게 대하는 게 쉽지 않다. '늙음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받아들여야지.' 하면서도 마음을 졸인다.
월요일은 박물관이 휴무다. 남편에게 3개월 유예 소식을 듣자마자 공원으로 고양이들 밥을 먹이러 나갔다. 날이 추워지면서 아롱이 사랑이 귀요미 고등어 다롱이 모두 잘 먹는다. 추위를 견디기 위해 배를 든든히 채우는 건 사람이나 짐승이나 다 같은 모양이다.
생각보다 춥지 않아 아롱이와 사랑이는 소수레로 데려가 여유 있게 밥을 먹였다. 마음의 여유가 생겨서인지 남한산의 우아한 능선이 눈에 들어왔다. 나한테도 이 순간은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다. 밥그릇에 여분의 먹거리를 챙겨 겨울집에 넣어주고 돌아섰다. 시간이 지체되어 토성에 있는 초화와 삼색이가 기다렸을 터. 그래도 오래간만에 발걸음이 가벼웠다.
화요일.
개포동 재건축한 집으로 이사한 친구네로 집들이 겸 모임에 갔다. 4~5년마다 전근을 가야 하는 공립중학교에서 근무하다 보니 학교마다 모임이 하나씩 있다. 그 모임 중 하나를 이번에는 개포동에서 하기로 한 것이다.
나는 한 동짜리 연립주택에 25년째 살고 있다. 그 때문인지 요즘 신축된 새 아파트의 이름이 너무 길어 부담된다. 왜 그렇게 길고 긴 외래어로 이름을 지어야 하는지 의문이지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우수한 한글이 우리 부동산 시장에서 제 대접을 받지 못하는지는 더 의문이다. 이런 생각은 나만 하는지 모르겠지만 친구집을 찾아가며 단톡방에 올려진 주소를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해야 했다.
친구네 새 집은 밝고 전망이 좋았다. 구룡산이 지척으로 보였다. 며칠 전 내린 눈이 너무 예뻤다던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집들이 겸 모임에 참석한 친구들을 위해 먹거리를 부지런히 챙기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친구가 그 집에 잘 정착해 행복하게 살기를 진심으로 기원했다.
갈 때는 다음 날 김장 양념거리를 사러 마트에 들렀었다. 집을 나선 김에 남편이 멀지 않다며 데려다주었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데 직선거리 7킬로 정도를 무려 한 시간 반이나 걸렸다. 피로가 느껴졌다. 모임에 가기 전 토성 고양이 두 마리 먹이를 미리 주고 와 다행이었다.
수요일.
밤새 안녕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나라가 시끄러웠다. 전날 밤 계엄과 계엄 해제 뉴스로 나라 전체가 휘청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일상을 멈출 수는 없다.
전날 절임배추 40킬로를 배송받았었다. 홍갖과 쪽파도 씻어 두었었다. 아침부터 절임배추 물을 빼고 준비된 각종 양념을 조합해 김장을 했다. 남편은 김치가 너무 적지 않냐며 걱정을 한다.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작년 묵은지가 아직도 남아 있어서다.
우리 집은 오랜 시간 화성에서 부모님과 김장을 했었다. 부모님이 화성 구포리에서 배추와 무와 각종 채소들을 기르셨기 때문이다. 많게는 150 포기 이상이었다. 김장을 위한 사전 준비가 만만치 않은 건 해 본 사람은 다 안다. 울산 호계에서 늦둥이 막내로 중학교까지 다녔던 남편은 우리 오 남매에 비하면 제법 농사에 일가견이 있다.
김장 무렵은 입시 시즌과 겹친다. 학교 업무가 폭주하는 시기다.
입시 서류 검토와 작성만이 아니라 면담과 자소서 담임 의견서 등이 몰려 토요일도 늘 출근 당첨이었다. 김장을 하러 화성을 오가는 시간을 내는 게 어려울 정도였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김장용 채소들을 수확하고 다듬고 절이는 일은 주로 남편이 도맡았다. 우리 오 남매는 다 칼출근을 해야 하는 직장인인 데다 지방에도 거주해서다. 남편은 우리 엄마를 보조하다 보니 절임배추 40킬로는 일도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배추 속 넣기까지 2시 전에 해치웠다. 심지어 설거지까지. 김장을 마치고서야 나를 기다렸을 토성 냥이 초화와 삼색이에게 갔다. 내일은 나오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했으나 내 말을 무시하고 둘 다 눈 빠지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삼색이 녀석은 배고픈데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하악질까지???
목요일.
전날 만든 석박지와 갓김치를 챙겨 친구에게 갔다.
근육이 소실되는 병을 앓고 있는 친구는 나보다 두 살 어리다. 간병은 3년째 남편 몫이다. 부부 교사로 은퇴해 손녀딸을 돌보며 즐겁게 살 날이 펼쳐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친구의 발병은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자신의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친구의 곁을 지키는 그 남편의 눈물겨운 사투를 보고 오는 날이면 나 자신도 모르게 나락으로 떨어지는 우울감이 생긴다. 겨우 한 달에 한 번 잠시 들여다보고 오는 데도 이런데 옆에서 지키고 있는 그 남편은 어떨까?
사람으로 지켜야 할 도리가 있다면 어디까지일까? 그 길을 외면하지 않고 뚜벅뚜벅 걸어가는 친구의 남편을 보면 나도 모르게 긴 한숨이 나온다. 보통 사람처럼 평범하게 늙어 가는 일도 이렇게 어려운 일이었다는 사실에 망연해져서일까?
돌아오는 길. 위례를 벗어나며 남편에게 팔당이라도 다녀오자고 했다. 강이라도 보면 마음이 조금 평안해질까 싶어서였다. 다산 정약용 생가가 있는 곳으로 들어서니 친구와 가끔 갔던 식당이 보인다. 도대체 추억이 없는 곳이 없구나 싶어 마음이 더 가라앉았다.
저녁부터는 금식이다. 다음 날 오전 위대장 내시경 검사가 예정되어 있어서다.
대장내시경은 언제 받았는지 가물거린다. 나이가 들면 걱정거리가 줄어들 거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이런저런 다양한 복병들이 수시로 튀어나온다. 그중 가장 심각한 게 건강 문제라는 건 당연지사.
금요일.
전날 저녁부터 금식을 했는 데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물로 배를 든든히 채워서다. 특히 대장을 비우는 작업은 아무리 마음을 단단히 먹어도 힘이 든다. 검사 예약 시간은 11시 30분. 전날 저녁 7시와 다음 날 아침 6시에 받은 약을 물에 타 먹었다. 역겨워서인지 힘들었다. 속을 비우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가스제거를 한다는 약까지 모두 먹고 기운이 다 빠진 상태로 집을 나섰다.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다.
수면내시경을 할 경우 마취가 풀려서도 움직임이 힘들까 봐 미리 토성에 갔다.
두 녀석은 이른 시간인 데도 기다리고 있었다.
내시경도 미루고 미루던 일이었다. 그런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토성에 가는 일이 힘들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검사는 제시간에 시작 마취에서 깨어났을 때는 1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혹 깨어나지 못해 집에 있는 고양이 두 녀석에게 돌아가지 못하는 일이 생기는 건 아닐까 고민했었다. 망상이었다. 건강 검진을 한두번 한 것도 아닌데 이번처럼 망상에 휘둘린 건 처음이다. 이것도 나이가 들어서인가?
의사 선생님은 위염이 심하다며 조직 검사를 해야 하고 대장은 용종이 하나 있어 떼어냈다고 하셨다. 조직 검사 결과는 다음 주 수요일 오후에 오라고 하셨다.
돌아오는 길. 검사를 마친 데다 마취에서도 무사히 깨어나 안도감이 들었다. 물론 조직 검사 결과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다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토요일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너무 힘겨운 일주일을 보내서 일까?
작은 아들이 집에 왔다. 사진을 한 장 준다. 너무 열심히 하는 것도 살짝 걱정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