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의 성 라퓨타

그래,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by 진연

지브리의 첫 장편인 천공의 성 라퓨타.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처음과 끝인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던지고 있다. 영화를 처음 본 순간도, 그리고 다시 관람한 지금도 온몸에 떨림이 느껴진다.


이 영화의 고유성은 과거와 미래를, 그리고 자연물과 인공물을 영화에 자연스럽게 하나로 녹아들게 했다는 이다. 산업혁명기를 연상케 하는 파즈의 마을, 그러나 고도로 발달한 비행물체와 그 결정체 라퓨타까지. 이 모든 것이 단 하나의 어색함 없이 서사를 완성한다.


작화, 음악에 대한 경이로움은 이미 이전에 본 지브리 작품에서도 충분히 느꼈으나, 라퓨타는 그 전율이 더 선명하게, 그리고 깊이 밀려왔다.

우선 지브리 작화의 위대함은 그들의 섬세한 작화가 징그러움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나친 자세함은 어떤 때엔 섬뜩함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지브리는 그 정교함을 범접할 수 없을 아름다움, 경외로 바꾸어 담아낸다.

음악 또한 마찬가지이다. 히사이시조의 음악이 주는 차별성은 영화를 단순히 보조하는 역할을 뛰어넘는다는 것이다. 어떤 때에는 음악을 위해 장면이 존재하는 듯한 착각까지 들게 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의 선율은 마치 영화의 광활한 하늘을, 그리고 나의 마음속 파동을 무한히 확장시켜 나가는 듯했다. 특히 라퓨타의 끝, 그리고 끝없는 상승에서 터져 오르는 음악의 절정은 나의 온몸을 저릿하게 만들 만큼 압도적이었다.


기술이란 무엇인가. 기술 또한 결국 인간의 창조 아래에 깨어난 것이다. 오로지 라퓨타만을 지키기 위해 살아가고, 그것을 끝으로 붕괴되는 로봇으로 우린 기술에게 '가엾음'이라는 감정을 느끼게 된다. 비행석을 가공할 수 있던 유일한 사람들인 라퓨타의 사람들. 그들은 인류 사상 최강의 제국을 탄생시키나, 결국 파멸한다. 재관람으로 깨달은 것은 영화의 시작에 나오는 이야기가 라퓨타의 흥망성쇠를 담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신의 바람을 타고 하늘을 지배한 라퓨타, 그러나 그 바람과 함께 파멸 후 지상으로 내려온 사람들. 그리고 남은 하나의 조각.


인간에게 주어진 땅, 그것을 넘어서 바다, 더 나아가 하늘까지.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었고, 결국 그 끝에는 멸망, 폭력, 그리고 '가엾음'이 남았다. 욕심의 끝, 그리고 파멸. 결국 시타는 인정한다. 아무리 뛰어난 것을 소유하더라도 땅을 떠나 사람은 살아갈 수 없음을. 멸망의 주문과 함께 끝없이 부유하는 라퓨타를 바라보는 시타의 눈엔 먹먹함, 그렇지만 희망이 담겨 있다.


멸망의 주문에도 나무의 뿌리는 주문을 외운 파즈와 시타를 지켜냈다. 그리고 라퓨타는 완전히 붕괴하지 않고, 자유를 향해 끝없이 부유하며 저 너머 다른 위치에서 그들과 함께한다. 시타의 가문이 비행석을 지켜낸 이유를 이제는 알 것 같다. 바란 것이다. 욕망의 끝이었던 라퓨타에게 누군가 자유를 건네줄 것을. 그리고 라퓨타 또한 그것을 바란 것이리라. 그 보답이 파즈와 시타에게 닿은 것이리라.


시간은 흐르고, 강했던 것은 약해지며, 새로움 또한 싹튼다. 소유, 과거, 그 어떤 것도 얽매이면 얽매일수록 우리는 길을 잃는다. 놓아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의미를 남기며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팽창해 가는 세상 속 인간이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지, 결국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 그렇게 우리는 물음 앞에 서있다.


앞으로 어떤 영화가 나오더라도, 지브리의 영화를 대신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은 서글프기도 하다. 뛰어난 영화는 많이 나오겠지만 지브리의 전율은 그것의 정도, 밀도, 질감까지 차원을 달리하는 광활함을 선사한다. 그러나 시간은 흐르니까. 남겨진 것에 담담한 소중함을 느끼며 그렇게 이 영화를 내 마음에 담아 가고 싶다.




2026.01.23. ★★★★★

코코젤리 메론소다[비행]를 마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