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릴 때 별명은 꼴통

#6 결혼과 임신을 동시에 맞닥뜨리다.

by 임모아

나는 지금 올 가을에 결혼을 앞두고 있다.

서른 평생 비혼의 가까운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고,

이런 배경에는 사실 이혼 가정에서 자란 영향이 결혼에 대한 환상을 없애지 않았을까. 전혀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비혼에서 결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자연스레 어느 순간 변화하였다. 나는 사실 엄마가 걱정할 정도로 남 눈치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잘 먹고, 국내던 해외던 여행도 많이 다녔다. 성격도 급하고 할 말은 다해야 하는 성격이었다. 답답한 건 참지 못하고 어찌 보면 정말 감정 표현에 감추거나 내숭 없이 제멋대로 살아왔다. 늘 어느 곳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만 살고 싶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연애 가치관은 틀에 박힌 사고방식, 지극히 개인적인 편견, 고집스럽고 유난일 정도의 취향 등등 어느 한 부분도 해당되지 않고 꼬여있지 않은 사람과의 만남을 선호했다. 외모보다는 인성이 중요했으며 그 사람의 됨됨이를 보며 만났다.


비혼 선호주의였을 때는 연애만 하면서 늙어가도 삶의 만족도가 꽤 높을 것 같았다.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 있었는데 “어차피 인생은 혼자 와서 혼자 간다”라는 말을 참 좋아했다. 고독은 누군가 단순하게 내 옆에 오래 함께 있어준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감당해야 될 인생 숙제쯤으로 생각했다.


갑자기 막 엄청나게 특별한 계기가 있던 건 아니었다. 아마도 나는 새로 만나는 사람에게 매번 자기 PR 하며 또 서로가 어느 정도 익숙해질 때까지 맞춰가며 적응하고 하는 연애에 질렸던 것 같다. 그래서 곁에 아무도 없는 혼자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전에 연애할 때도 종종 곁에 있는 사람을 외롭게 만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대체로 나에게 비슷한 불만을 말했다. 혼자가 익숙한 외동으로 자란 것에 너무도 많은 부분을 만족했고 워낙 독립적으로 자라서 그래서인지 무엇이던 혼자서 하는 게 익숙하고 편했다.


오히려 잘 모르는 낯선 누군가가 곁에 있는 게 어색하고 불편한 정도였으니까 연애조차 기피하고 온전히 혼자 있는 게 좋을 때 지독한 현실주의자인 나에게 거짓말처럼 믿기지 않았던 감정을 느끼며 지금의 배우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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