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정전

by 페니킴

차디찬 얼음이 얼굴을 때리는 것 같았다. 자꾸 맞다가 이 얼음 덩어리들이 쩍쩍 내 얼굴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을까봐 겁이 났다. 시야에는 온통 하얀 색으로 넘쳐났다. 온 세상이 무채색으로 뒤덮여 있었다. 바람이 빙빙 돌며 하나로 뭉쳐질 때는 멀리서 전설의 설인이 걸어오는 듯 했다.

우리는 앞 사람의 등에 바짝 붙었다. 조금만 멀어져도 앞이 보이지 않아 길을 잃을 수 있었다. 서로의 등이 생명의 길잡이였다.

‘여기에서 죽더라도 이 장면은 기록하자.’ 내 무의식은 그렇게 말했다. 나는 무리 중 가장 뒤에 있었다. 살짝 거리를 두고 뒤에서 사람들을 바라보며 카메라를 들었다. 모두 앞만을 바라보며 눈 속에서 절박한 발걸음을 휘젓고 있었다. 맨 끝에 있는 내가 잠시 떨어졌다는 것도 몰랐다.

‘이대로 사라져 버리면 나를 찾을 수 없겠지.’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에 고개를 저으며 카메라 프레임 안에 모두를 넣었다. 찰나의 순간이었지만 꺼내든 손가락은 동상에 걸릴 듯이 감각을 잃고 떨어져 나갈 것 처럼 덜렁거렸다. 사진 속에 담긴 장면은 하얀색과 앞 사람의 초록색 배낭이 전부였다. 정말이지 보이는 것 이라고는 그게 다 였다.

패러글라이딩을 탄 지 삼 년여 만에 추락해 척추에 압박 골절을 입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내 일상에도 제동이 걸렸다. 벌어졌던 척추 뼈가 서로 끈끈하게 연결될 수 있도록 침대에 누워 한 달을 보냈다. 그 후 보조기로 온 몸을 휘감고 몇 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연마했던 내 근육들은 비실하고 물렁하게 몸뚱이에 붙어 있었다.

아직 등에는 약간의 고통이 남아 있었다. 다시 일을 하고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을지 두려웠다. 전환점이 필요했다.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다. ‘히말라야에 오르자.’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싹텄다. 출발일을 고작 며칠 남겨두고 덜컥 네팔로 향하는 비행기를 예약해버렸다. 무모한 도전이라도 벌여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보조기를 푼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에베레스트는 부담스러웠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상대적으로 도전할 수 있을 듯 했다. 안나푸르나로 가려면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 후 포카라라는 도시로 향해야 했다.

혼자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히말라야라는 이름에 긴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는 4000m가 넘는 높이이다. 여자 혼자 가는 산행이니만큼 현지인의 도움이 필요했다. 짐을 들어 주는 ‘포터’를 검색을 거듭하여 예약했고 포카라에서 만나기로 했다.

카트만두에 도착 후 설레는 마음으로 포카라행 버스에 올랐다. 생각보다 화려하고 깔끔한 버스에 놀랐지만 나를 더 놀라게 한 건 구불구불한 산길이었다. 한국처럼 깔끔하게 정리된 평탄한 길은 상상할 수 없었다. 버스가 산길에 매달려 곡예를 하듯이 흔들렸다.

포카라에 도착 후 버스에서 내리자 포터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포카라 시내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 날부터 산행이 시작되었다.

9박10일 정도의 일정으로 간략한 계획은 잡았지만 산의 날씨나 내 몸의 상태에 따라 구체적인 목표가 조정될 터였다. 변덕스러운 산에 맞춰야 했다.

무거운 짐들은 포터가 맡아주고 나는 산행 내내 숙소와 음식에 지불될 돈과 여권 등 중요한 것만 몸에 지녔다. 최대한 몸이 가벼워야 했다. 사실 처음에는 과연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염려가 되었다. 한참 운동을 쉬었고 골절되었던 허리와 무릎이 과연 괜찮을지 걱정이 앞섰다.

안나푸르나 초입부에는 내가 상상한 풍경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이어졌다. 시작부터 눈덮인 고원을 상상했지만 내 앞에 펼쳐진 건 푸릇한 나무들과 초원, 흙밭이었다.

점점 올라가며 고도에 익숙해져야 했다. 그 동안 내 몸도 서서히 적응해 갔다. 히말라야 산맥 중간중간에는 식사나 숙소를 제공하는 롯지가 있다. 롯지에서 처음 먹은 네팔의 전통 카레와 달밧( 접시에 밥, 반찬, 스프가 함께 나오는 네팔식 백반)은 내 입안에 네팔을 가져다 주었다.

깎아지른 비탈면에서 소와 산양들은 유유자적 길을 걷는다. 길을 걷다 올려다 본 나무에서 만난 회색 야생 원숭이 가족은 카메라를 향해 의아한 눈빛을 보낸다. 자유롭게 산을 타며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던 순록은 나와 눈이 마주친다. 무거운 짐을 머리에 고정한 천으로 묶어 목과 머리의 힘으로 높은 산까지 나르던 네팔 여인들의 모습들은 탄성을 자아냈다.

내 걱정과는 다르게 몸은 점차 적응해갔다. 초반에는 산을 오르는게 힘들었지만 점점 걷는 것에 익숙해졌고 속도가 붙었다. 며칠을 붙어 지내며 포터 아저씨와도 친숙해져 사진도 찍어주시곤 했다.

안나푸르나에서 내가 제일 놀랐던 것은 한국인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었다. 많은 분들이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며 지나쳤다. 나는 그들과 일부러 어울리지 않았다. 오롯이 혼자서 히말라야를 탐닉하고 싶었다.

그런데 식사를 할 때마다, 롯지에서 잠을 잘때마다 만나는 한국에서 온 남자친구들이 있었다. 세 명이었는데 두 명은 원래 친구라 같이 왔고 한 명은 여기에서 만났다고 했다. 이야기를 해보니 나와 동갑이었고 그들은 포터도 없이 세 명이서만 산행을 하고 있었다. 마음이 차차 열린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산행을 같이 하고 있었다.

엿새쯤 산행을 했을 때 마차푸차레 베이스 캠프에 도착했다. 마차푸차레는 안나푸르나 바로 아래 뾰족하게 깎은 칼날을 떠올리게 하는 산이다. 마차푸차레는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의 직전 관문이었다. 많은 인원들이 마지막 도전 전 따뜻한 음료와 음식으로 몸을 녹이고 있었다.

시간이 너무 애매했다. 해가 지기 전에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에 도착하려면 서둘러야했다. 방금 전까지 화창했던 날씨였는데 구름이 몰려오고 있었다. 산위의 구름들의 움직임과 심상치 않은 날씨에 포터는 재촉했다. 오늘 안에 무사히 당도하고 싶다면 서둘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눈발이 희미하게 흩날리고 있었다.

포터를 이제는 전적으로 믿을 수 밖에 없었다. 포터가 선두에 서고 그 뒤로 산행 중 만난 남자친구들 세 명이 서고 내가 맨 마지막에 섰다. 눈발은 더욱 거세졌다. 길이 아닌 곳에 발을 잘못 딛기만 하면 허리까지 눈에 푹 빠졌다. 조금만 벗어나도 눈 속에 파묻혀 나오기 힘들 것 같았다. 그야말로 하얀 정전 White out 이었다. (일반적인 정전인 black out 에 비유되는 말) 여기에서 사라지면 아무도 나를 찾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저 멀리 불빛이 보였다. 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의 숙소에서 나오는 불빛이었다. 희미한 그 불빛은 가까워지는 듯 하면 또 다시 멀어졌다. 분명 끝이 보이는 듯한데도 쉽사리 다가오지 않았다. 불빛 하나에 의지하여 살이 애는 추위를 뚫고 걸었다. 얼굴은 어찌나 눈보라에 맞았던지 꽝꽝 언 얼음이 되었다. 쾅 하고 치면 깨질것만 같았다.

서서히 해가 지고 있었다. 우리의 마음은 초조해졌다. 완전히 깜깜해지기 전에, 눈보라가 더 거세지기 전에 반드시 숙소에 닿아야했다. 산의 고도가 높아 숨은 헐떡였고 머리는 아파오는 듯 했다.

마침내 롯지에 도착했을 때 이미 도착해있던 사람들은 우리를 환호해 주었고 우리는 살았다는 안도감에 긴장이 풀렸다.

마차푸차레에서 우리 뒤에 출발해 아직도 도착하지 않은 사람들의 무리가 있었다. 우리는 어느새 동료가 되어 나머지 사람들이 안전하게 도착하길 함께 바랬다. 모두가 도착했을 때 우리는 함께 모여 산행의 성공을 자축했다.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와인을 나눴다.

눈보라는 정전이 일어난 듯 내 눈앞을 하얗게 가렸다. 내 삶의 방향 조차 가려버린 것 같았다. 하얀 정전을 뚫고 안나푸르나에 도착했을 때 일상을 향해 도약할 희망이 움찔움찔 가슴 깊은 곳에서 피어났다. 눈보라의 윙윙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던 그 밤, 내 마음 가득 용기와 설레임이 가득 부풀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