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린 빗방울

by 페니킴

적요한 집안에 추적추적 비 내리는 소리가 가득하다. 이십 층에서 하늘과 집을 나눠주는 경계선에는 얄팍한 유리창이 놓여있다. 세월에 이기지 못하고 닳아버린 난간 가장자리에는 녹이 슬어있다.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는 난간 아래로 빗물이 맺힌다. 톡 건드리면 터져버릴 빗방울들이 아래로 올망졸망 줄지어 매달려 있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본다. 말랑하고 폭신해 보이는 빗방울들을 바라보니 어머니의 젖가슴이 떠오른다.

초등학교 시절 골목 끝에 위치한 허름한 우리집은 방 두 칸이 전부였다. 방 한 칸은 한복을 하는 어머니의 작업실이었고 나머지 한 칸에 온 식구들이 함께 지냈다. 그때는 방 하나가 우리 가족의 전부였다. 그 방에서 함께 먹고, 놀고 잠들었다. 일하느라 자리를 비울 때 말고는 이불 속 내 옆자리는 항상 어머니였다.

초등학교 마칠 때까지 잠들 때면 나는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졌다. 아니 젖가슴을 만져야 잠이 들 수 있었다는 말이 더 정확한 표현이리라. 어머니는 내 옆에 누워 따뜻한 품과 가슴을 내어주었다. 관성에 따르듯 어머니의 가슴에 손이 닿으면 마음 또한 편안해졌다.

어느날 충청도에 살던 할아버지가 집에 방문했다. 잠을 잘 수 있는 방이 하나였기에 할아버지는 내 옆에서 잠을 청하셨다. 한참을 주무시던 할아버지는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깼다. 손 하나가 더듬더듬 자신의 젖꼭지를 만지고 있었던 것이다. 잠결에 무의식적으로 할아버지 가슴을 더듬었던 모양이었다. 옆자리 상황은 전혀 모른 채 나는 잠 속에서 허우적 거리기만 했다.

더 많은 빗물이 매달려있던 빗방울로 모인다. 살을 찌우며 크기를 불리고 통통해지더니 아래로 툭 떨어졌다. 눈물이 떨어진 것 같았다. 어머니의 가슴이 무너져내렸다.

어머니가 옷을 찢으며 울부짖었다. 맞은편에는 표정 없는 무덤덤한 얼굴의 아버지가 그 모습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짐짓 놀란 눈치였다. 나는 건너방에서 갑작스런 소란에 놀라 문에 기대여 고개만 살짝 내민 채로 방을 흘긋거렸다. 어머니는 짐승처럼 울부짖었다. 그 소리가 얼마나 서글픈지 가슴이 저릿했다. 소마소마하여 덩달아 나도 눈물이 났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앞에서는 보이지 않으려 하던 모습이었다. 겨우 참아내던 아픔이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터져 나왔으리라.

그때는 어려서 자세한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하루에 한번만 저녁식사 시간에 방문하며 함께 살지 않는 아버지가 평범한 아버지와 다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어도 내색하지 않으며 지내던 나날들이었다.

어떤 원인으로 버티지 못하고 빗방울 떨어지듯 마음이 무너져 내린 날, 어머니는 내게도 젖가슴을 내어주지 않은 채 몸을 돌려 잠에 드셨다. 어머니의 돌아선 등에서는 버려진 묵정밭과 같은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단 한 순간 그때는 어머니도 내게 냉담했다.

초등학교 마지막 해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세 개나 방이 생긴 우리는 더 이상 한 방에서 자지 않았다. 잠들 때 찾았던 어머니의 젖가슴은 더 이상 내 옆에 있지 않았다. 할머니와 이층침대에서 방을 같이 쓰며 자연스레 습관은 없어졌다.

나이가 먹어 버린 지금 함께 걸을 때면 어머니의 손을 종종 잡는다. 어렸을 때 잡았던 어머니의 가녀렸던 손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세월이 두께를 더했는지 근심이 손에 달라 붙은건지 모르겠다. 두툼한 어머니의 손을 꽉 잡아본다.

어머니의 입에 입맞춤을 했던 때는 언제였던가. 어렸을 때는 곧잘 했던 것 같은데 지금 와서 한다고 생각하면 왠지 손발이 오그라든다. 입맞춤도 그럴진데 어머니의 젖가슴을 만졌다는 건 지금 생각해도 어색하기 그지없다.

어머니는 귀찮았을 텐데도 내게 언제나 가슴을 내어주셨다. 싫은 내색도 하나 없었다. 간지러움도 참아냈던 그 내면에는 어머니의 어떤 마음이 있었을까. 내 잠동무로 언제나 손 내밀면 지척에서 안아주던 어머니의 젖가슴..

슬픔 속에서도 언제나 따스히 나를 지켜주던 어머니의 자글해진 손과 얼굴을 바라본다. 어른이 되었다고 어머니의 가슴에 안기는 일도 어색해진 지금, 손 끝에 닿았던 어머니의 따스한 젖가슴의 온기가 여전히 ‘괜찮다,’하며 나를 감싸주는 듯 하다.

빗물이 떨어진다. 다시 빗물이 난간 아래로 모여든다. 분명 차가울 빗방울인데도 봉긋한 곡선은 내게는 따스하게 보인다. 빗방울을 손가락으로 훑어본다. 모양은 흩어져 손가락 위에서 희미해져 버렸지만 온기만은 남아있는 듯 하다. 더 이상 떨어져 눈물이 되지 않도록 이제는 내가 지켜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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