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친다

by 페니킴

빨간 파도가 내 앞을 막아선다. 엄밀히는 붉은 점들의 흐름이다. 반대편에는 주황빛의 물결로 눈이 시리다.

고속도로에 들어선다. 하늘은 이미 어둑하다. 태양은 힘을 잃어간다. 어스름 푸른빛 사이에 도로는 점점 어둠으로 잠식된다. 하나둘 붉은 눈들이 깨어난다. 강렬한 수백 개의 눈들이 줄줄이 흘러간다. 굽이치는 빨간빛. 멍하니 그 물결 위를 마주한다. 중앙선 너머 수백 개의 밝은 라이트들이 내 눈을 향해 빛을 쏜다. 주황과 붉음의 대조가 제법 멋진 풍경을 만들어낸다.

힘겨웠을 하루를 버텨낸 자동차들이 녹초가 되어 기암을 한다. 피곤에 찌든 충혈된 눈으로 앞 차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간다.

나와 같은 방향 차는 충혈된 눈으로 중앙선 너머 차들은 광기 넘치는 밝은 눈으로 각자의 길을 재촉한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양쪽 도로의 색은 진해진다.

모두 나처럼 나들이를 다녀온 걸까. 아니면 가족을 만난 걸까. 급한 업무로 고속도로를 타고 가는 중일 수도 있다. 도로 가득 그들만의 하루가 굽이친다.

뱀처럼 느릿느릿하게 흘러가는 사람들의 하루는 지하철에서도 만난다. 서울 여행에서 발이 되어주는 지하철을 탄다. 자리가 없어 한쪽에 손잡이를 잡고 선다. 지하철 칸 사이 문이 모두 활짝 열려 모든 칸의 사람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옆칸 사람들은 가깝고 그 앞칸 사람들은 조금 멀다. 그때 지하철이 굽은 길로 들어선다. 구불한 길을 따라 달려가는 지하철이 구렁이처럼 매끄럽게 기어간다. 사람들의 모습도 그에 따라 넘실거린다. 칸마다 꽉 찬 사람들의 머리가 검은 강을 이룬다. 오늘 하루도 잘 넘겼을 모든 사람들의 뒷모습.

각자의 방향과 생각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모두 또 하루를 살아냈다. 집으로 귀가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아직 내일은 걱정하고 싶지 않다. 그저 오늘도 무사히 살아낸 스스로가 대견하다. 모두의 하루가 굽이친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