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익은 것의 다정함

내 재산목록 1호

by 그레이스웬디

나는 정말 아날로그를 좋아하고, 아날로그가 손에 익은 옛날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좀 대견한 구석이라고 한다면, 무엇이든 빨리 익힌다는 것이다.

아날로그 사람이지만 디지털 기기를 사용하는 데 불편함을 전혀 못 느낀다. 처음부터 금방 배웠고, 일머리가 있는 사람들이 대개 그러하듯 센스인지 눈치인지가 빨라 하나를 알면 다음 것도 쉽게 알 수 있다.

어쩌면 스마트폰 새로운 모델이 나올 때마다 바꿔 썼던 경력?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ㅎㅎ


전자기기나 전기 이런 것도 심지어 남편보다 더 잘 만지고, 오류가 나면 해결하는 데에도 소질이 있다.

그런 나에게, 진심으로 벌벌 떨게 하던 괴물을 만났으니 그것은 바로 맥북이었다.


2년 전 블로그를 시작하며 집에 있는 데스크톱으로 포스팅을 하다가 남편에게 말했다.

"나 아무래도 이거 전문적으로 해야 할 것 같은데?"

"응, 그런데?"

"아니, 전문적으로 글을 쓰려면 뭐가 필요하겠어?"

"시간?"

"에헤이, 이 답답한 사람아. 전문적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봐!! 딱 뭐겠니! 노트북이지!"

"그냥 말을 하면 될 것이지, 뭘 그리 테스트를 하냐."

이러고 며칠이 지났는데 쿠*에서 생필품을 주문하려던 찰나 눈에 띄는 배너가 나를 사로잡았으니, 그것은 바로 맥북 M2에어가 출시되었다는 광고였다.

역시 이것은 신의 계시라며 당장 그 링크를 남편에게 보냈고, 그렇게 우리의 인연은 시작되었다.


아무리 빨리 습득하는 스타일이라고 해도 아날로그 아줌마인 나는 국내 전자회사의 노트북을 샀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맥북은 처음부터 공부할 것이 많았다. 아이폰 유저로 오랜 시간을 지냈기에 맥북이라고 뭐 별거냐 했다가 IOS와 윈도의 차이부터 알아야 할 개념들도 많았다.

아니, 노트북을 받자마자 글을 쓰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검색창에 맥북초보를 쳤더니 아주 친절한 글들과 영상이 수두룩했다.

받자마자 필수로 세팅해야 하는 설정들과 다운로드해야 하는 앱과 프로그램들. 뭐 영상 보며 하라는 대로 하니 어렵지 않았다. 그렇게 매일 포스팅을 하는 데에는 별반 어려움을 못 느낀 채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워드(한글파일)와 페이지(맥북의 워드프로세서 프로그램)의 차이도 모르는 사람인데, 협업제안이 원고 컨펌을 받는 조건이었다. 내가 쓴 원고를 업체에 워드파일로 전송해야 하는 것이다.

맥북에는 한글프로그램이 안 되고, 나처럼 생초보는 알려줘도 못 알아듣는다. 아무리 습득이 빨라도 기본지식조차 없는 상태에선 그냥 까막귀이다. 글은 다 써두고 업체에 워드형식으로 전달을 못해 쩔쩔매면서 검색을 하루 종일 한 것 같다.

참 애플은 뭣이 불편하게 만들어놓은 것도 많다 ㅎㅎ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상황이 생길 때마다 터득한 이 맥북이라는 놈의 성능은 또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와.. 이래서 애플애플 하나보다.' '와,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하나 보다.' '와, 정말 디지털 세상은 놀랍구나' 등등 마치 야만인 보호구역의 존이 문영 세계에서 처음 본 것들에 대해 눈이 휘둥그레지듯이.


지금 나는? 맥북 전문가급으로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

포스팅은 문제도 아니고, 파일을 공유하기도 하고, 디자인을 하기도 하고, 영상 편집도 한다.

그리고 나를 혼란에 빠뜨렸던 Page에 원고도 쓰면서 페이지도 나누고 섹션도 나누고, 페이지에 번호도 매기고, 표도 만들 줄 안다.

벌써 이놈과 3년 째 하루도 안 빠지고 만나고 있으니 어쩌면 내 일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맥북과 함께 하는지도 모르겠다.

3년이 되었으나 앞면 뒷면 케이스를 밴 적이 없고 키보드 커버를 한 번도 벗긴 적이 없어 여전히 반짝반짝 영롱하다.

여행 갈 때도 들고나가고, 친정 갈 때에도 속옷보다 먼저 챙기는 맥북.

처음 만날 때를 생각하니 야만인 같았던 내 모습에 부끄러워지지만, 이제는 너무도 손에 익어서 내 피부와 같으니 참 문명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다.


내 재산목록 1호를 단언컨대 맥북으로 정했으니, 이 아이는 나의 삶을 바꿔주었기 때문이다.

나에게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게 만들어주었고, 나를 꿈꾸게 해 주었고, 나를 전업주부에서 프리랜서로 꺼내주었다.

요즘 지피티가 그렇게 다정하드만, 맥북도 켤 때마다 나에게 다정하게 말을 거는 것 같다.

안녕? 오늘도 너의 하루를 시작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