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조용하게 보내보자.
12월.
벌써 몇 번의 12월인지 모른다.
어떤 12월은 미치게 반가웠고, 또 어떤 12월은 찾아오는 게 두려웠고, 또 어떤 12월은 빨리 지나가길 바라면서 만났던 그 많은 12월.
최근 3년 동안 만난 나의 12월은 무척 반가웠었다.
12월이 빨리 온 것 같아서, 그리고 그만큼 빨리 지나가 새해가 올 거라는 기대감에.
그리고 여전히 이번에 만나는 12월도 나는 반갑다.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시점이라 아쉬울 것도 같은데 나는 왜 인지 기다렸다는 듯이 12월을 맞는다.
참 별일도 다 있지..
나이 한 살 한 살에 예민했던 내가 득도를 한 것도 아닌데 왜 12월이 이렇게 반갑더냐.
지난 몇 년간은 나의 삶을 돌아보기보다는 파티, 행사, 모임 이런 것들만 신경썼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12월은 아이와 함께 크리스마스에 모든 초점이 맞추어지기도 했었다.
아이의 성장에 맞춰 새로 준비해야 하는 것들과 아이의 환상을 깨지 않기 위한 노력과 자신이 충실히 잘 해온 것들 덕분에 가장 좋은 산타의 선물을 받는다는 그 성취감을 오랫동안 느끼게 해 주기 위해.
단 하루의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12월이 되자마자 그것들에 집중했곤 했었다.
그리고 나와 남편의 연말 모임을 위한 드레스코드라든지..뭐 그런 사치스러운 것들만 신경썼던 날들이었다.
나이의 앞자리 숫자가 바뀌기 직전이라 그런지 이번 12월은 나의 자세가 조금 다르다.
아이도 초등학생이 되었고, 물론 여전히 크리스마스 파티와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긴 하지만 어쩐지 내 마음은 그것들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남들보다 한 달을 빨리 한 해를 돌아본다고 했던가.
오직 12월의 행사에만 집중하던 내가 지금은 나의 일 년을 돌아보고 있다.
스스로 기특하고 대견했던 시간들이어서 그런지, 크리스마스 파티나 연말 모임보다 나의 지난 몇 달이 더 설렌다.
엄마가 되고 나서 처음으로 느끼는, 가장 잘했다고 생각되는 나만의 성취다.
많은 것이 달라졌다. 물론 이렇다 할 커다란 성과는 아니다.
하지만 집을 짓는 것에 비유를 한다면 땅을 아주 잘 다져놓은 기분이다.
나는 계속 테스트를 해보고 있다. 지켜보고 있고 이리저리 눈여겨보고 있다.
그러면서 내 생각을 다지고, 방법을 찾고, 그렇게 실행에 옮겨보고 있다.
비전을 두고 하고 있다. 그 자체가 너무 신이 난다.
그래서 12월이 이렇게 반가운지도 모르겠다.
12월이 빨리 오고 빨리 지나 새해가 되면 더욱 기대되는 내가 있기 때문이다.
기대되는 2023년이 있기 때문이다.
12월은 괜히 낭만적이라고 생각했던 젊은 날들이 생각난다.
친구들과 두 손을 모아 첫눈을 기다렸고, 왜 12월엔 시끄럽게 보내야만 했는지 지금은 이해되지 않기도 하지만 그때는 나름의 이유들이 있었다.
지금보다 더 뜨겁게 사랑하고 투쟁하며 전쟁처럼 삶을 헤쳐나가는 지난한 노력들에 대한 보상심리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이가 든다고 보상을 안 받아도 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마음의 상태가 젊은 날보다 많이 차분해졌다는 것일 뿐.
파티를 좋아하는 나도 12월은 점점 조용하게 지내고 싶어 진다.
연말이 되면 언제나 바쁜 남편의 모임을 따라다니는 것도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한다.
내 모임도 줄이는 판에 남편 모임까지 따라나설 필요가 있나.
나는 그저 오붓하게 식구들끼리 크리스마스 파티 하나만 하는 것으로 12월의 시끌벅적은 끝내려 한다.
나이가 들었네. 맞다. 나이가 들었다. 많이 들었다.
철도 들었다.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으니 참 늦게 철이 들었다.
사람이 이렇게 바뀔 수가 있나 싶게 나는 참 많이도 변했다.
물론 내 안의 기질이나 성격은 고만고만하다.
한데 마음가짐이 바뀌니 사람이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화려했던 지난날의 나도 좋지만 수수한 지금의 나도 나는 좋다.
뭔가 이것도 저것도 다 어울리는 사람이 나인 것 같아서 썩 마음에 든다.
공주병인지 자존감이 높은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나도 그냥 좋다.
12월을 대하는 나의 자세가 변한 것도 좋다.
그렇다해도 크리스마스 파티는 포기 안 할 것이다. 그거 하나는 하자.
늘 그랬던 것처럼 집에서.
이번엔 손님 초대도 하지 말고 우리끼리 하자.
나의 꼬맹이가 자기의 생일상 보다 더 좋아하는 크리스마스 상차림이다.
내가 하기 싫어도 이젠 빼도 박도 못한다.
꼬맹이는 3살부터 7살까지 4년 동안 봐 왔던 것이니 새삼 그만두자는 말도 못 한다.
물론 나도 상차리는 내내 무척 즐겁기도 하고. 유일하게 신나는 파티상이다.
예전만큼 12월엔 크리스마스가 전부인 것 같은 마음은 아니지만, 그래도슈톨렌을 주문하고 꼬맹이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꼬맹이가 좋아하는 크리스마스를 향한 의식이니까.
내 마음은 변했지만, 8살의 마음이 변하지는 않았을테니까.
이번에는 어떻게 해볼까 생각하며 지난 크리스마스 상차림을 들여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