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들려주는 아름다운 중용

동화 같은 중용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


하늘이 명령한 것, 그게 네 마음이야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마음을 하나 가지고 태어나. 그 마음은 그냥 텅 빈 게 아니라, 기쁘고, 슬프고, 화나고, 두렵고, 사랑하고, 놀라는 감정들이 들어 있어. 이런 감정을 중용에서는 ‘하늘이 준 본성’이라고 해.


그러니까 네가 기쁘고, 슬프고, 화나고, 두렵고, 사랑하고, 놀라는 감정은 모두 자연스러운 거란다. 이 감정은 참는 것도 아니고, 없애는 것도 아니야. 그냥 있는 그대로 두는 것, 그걸 알아차리는 게 첫 번째야. 자, 감정을 알아차렸으면 이제 두 번째 단계야.


솔성지위도(率性之謂道)


“그 감정을 따라 흐르는 것, 그게 바른 길이야.”


근데 흐르기만 하면 위험하지. 그래서 우리한테는 육예(六藝)라는 여섯 가지 연습이 주어진 거야. 첫째는 예(禮)야. 이건 뭐냐면, 감정이 올라오기 전, 내 마음을 잠깐 바라보는 연습이야. 화를 내기 전에, 울음을 터뜨리기 전에, “내가 화가 났구나.” 하고 맞이하는 거야. 그래서 손님을 맞이하듯 네 마음을 맞이하니까 예라고 하는 거야.


예는 감정을 억누르라고 말하지 않아. 그냥 그 감정을 알아차리고 맞이하려는 처음의 자세야. 그 감정이 신발 신은 채로 너의 마음에 들어오지 않게 마치 문 앞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오게 하는 것처럼. 예에 대한 예절이니까 예예고 그래서 육예 중 예예는 예기가 된 거야.


둘째는 악(樂)이야. 이건 감정을 부드럽게 흘려보내는 연습이야. 악은 맞이한 감정을 밖으로 내보낼 때 예쁘게 보내는 힘이야. 그래서 울음이 시가 되고, 웃음이 춤이 되는 거야. 기쁨은 노래가 되고, 슬픔은 조용한 피아노가 되고, 분노는 북소리가 될 수 있어.그래서 육예 중 악예는 악경이 된거야.


셋째는 사(射)야. 활쏘기처럼, 내 마음을 딱 맞게 말로 전하는 연습이야. “너 때문에 싫어!”가 아니라 “나는 네 말이 속상했어.” 내 마음을 딱 중심에서 벗어나지 않게 상대에게 정확히 전달하는 것, 그게 사야. 너의 말이 마치 화살처럼 다른 사람의 마음이라는 과녁에 정확히 들어맞게 하는 것이란다. 시 처럼 다른 이의 마음이라는 과녁에 너의 마음이 전해지기를. 그래서 육예 중 사예는 시경이 된거야.


넷째는 서(書)야. 이건 내 마음을 글이나 말로 정리하는 힘이야. 내가 무슨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그걸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글로 쓰거나 그림으로 그리면 마음이 가라앉아. 잠자기 전 일기를 써보면서 생각해 보는 것도 좋아. 그게 바로 정리하는 힘, 서야. 그래서 육예 중 서예는 서경이 된거야.


다섯째는 수(數)야. 이건 내 감정의 리듬을 알아차리는 연습이야. 난 어떨 때 화가 나지? 난 어떨 때 속상해하지? 난 어떨 때 두려워하지? 내 감정이 어떨 때 어떻게 흐르는지 스스로 배우는 거야. 이건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예측가능하게 만드는 “마음의 패턴”을 읽는 힘이야. 그래서 육예 중 수예는 역경이 된거란다.


여섯째는 어(御)야. 이건 진짜 중요해. 말을 모는 마부처럼, 내 감정을 내가 조절하고 이끌어가는 힘이야. 감정을 억누르는 게 아니라, 그 감정을 좋은 방향으로 데려가는 거야. 나 혼자만 좋은 게 아니라, 나도 좋고, 친구도 좋은 길을 찾는 거, 그게 사회문화문명을 다루는 어야. 그래서 육예 중 어예는 춘추라는 경전이 되었단다.


이렇게 여섯 가지, 예, 악, 사, 서, 수, 어는 감정이 일어난 다음에 우리가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고,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갈지 하나하나 알려주는 방법이야. 그리고 이 모든 걸 배워나가는 과정, 그게 바로 마지막 문장이란다.


수도지위교(修道之謂敎)

“이 바른 길을 연습하고 익히는 것, 그게 진짜 가르침이야.”


그래서 중용은 이렇게 말해줘.


“마음을 억누르지 마.”


“마음을 부드럽게 데려가.”


“그리고 그걸 연습해.”


그게 바로 중용이고, 그걸 도와주는 게 육예야. 그러니까 육예란 하늘이 너에게 준 감정이라는 네 마음에 오는 손님을 맞이하고 보내는 여섯가지 예절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