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우리가 정의보다 불확실한 양심으로 사는 이유
사람들은 흔히 정의와 양심을 같은 것으로 여깁니다.
옳고 그름을 구별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
정의로운 사람은 양심적인 사람이고,
양심적인 사람은 정의를 따르는 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나의 내면에서 떨리는 이 감정과,
세상에서 요구하는 그 옳음은 같은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정의와 양심은 다릅니다.
정의는 외적 질서이고, 양심은 내적 감응입니다.
정의는 외부의 기준이지만,
양심은 나의 고요한 안쪽에서 반응하는 것입니다.
문명은 정의를 세우며 나아왔습니다.
법과 제도, 윤리와 권리는 수많은 시대를 거쳐 만들어졌고,
그 모든 것은 ‘모두에게 적용되는 규칙’을 목표로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언제나 그 규칙만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마음에 걸릴 때, 눈물을 흘릴 때,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멈춰 서거나 손을 내밀 때
그것은 정의가 아니라 양심입니다.
정의는 질서의 외곽이고, 양심은 감응의 진원지입니다.
정의는 관계의 규율이고,
양심은 관계의 떨림입니다.
정의는 누가 옳고, 누가 책임져야 하며,
무엇을 나누고,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양심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아플 때, 누군가 울 때,
내 안에서 울림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울림은 나를 행동하게 합니다.
정의는 법과 질서 속에 있고,
양심은 숨결과 눈물 속에 있습니다.
현자의 말처럼,
"정의는 벽을 세우고, 양심은 손을 뻗는다."
정의는 선을 긋고 경계를 만듭니다.
그러나 양심은 그 경계를 넘는 순간에 발동합니다.
벽 앞에서 울고 있는 아이에게,
벽 안의 질서를 논하기 전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
그것이 양심입니다.
그러나 양심대로 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양심은 제도에 기대지 않기 때문에 외롭고 불확실합니다.
때로는 정의에 맞서야 하고,
때로는 나 하나만 손해를 보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은 정의를 따릅니다.
정의는 논리적이고 안전하니까요.
하지만 각자의 양심은 다르게 빛납니다.
그 빛 속에서 우리는 각자 다르게 불편하고, 흔들리고, 외롭습니다.
나는 양심이 옳다는 말을 믿지 않습니다.
하지만 양심 없이 옳은 정의는 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의 앞에서도
늘 관계 속 떨림에 응답하며 오늘을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