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시태그
정의는 존재하는 실체일까요, 아니면 인간이 만든 감정적 신념일까요?
정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것은 힘의 균형, 이해의 충돌, 사회 시스템의 결과뿐입니다.
‘정의’는 사건에 대한 해석 프레임일 뿐, 우주 어딘가에 독립실체로 존재하는 개념이 아닙니다.
자연에는 정의가 없습니다.
맹수는 굶주린 약자를 잡아먹고, 병은 무고한 이를 죽입니다.
자연 생태계의 본질은 생존이지 윤리가 아닙니다.
문명이 등장하면서 인간은 ‘공정함’을 제도화하려 했고, 그것을 ‘정의’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 정의조차 시대마다, 지역마다, 권력구조마다 달라졌습니다.
정의는 존재하지 않고, 설계될 뿐이며, 기능성으로 작동할 뿐입니다.
단지 그 지점에서 문제되는 것이 ‘양심’과 ‘시스템 판단’의 충돌입니다.
양심은 개인의 감정에서 출발하며, 관계동참하는 가운데 정의라는 사회시스템의 기능적 맥락보다 우선 반응합니다.
반면 시스템은 맥락을 기준으로 기능적 판단을 내립니다.
시스템은 균형을 조정할 뿐입니다.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는 말은
“비가 오면 꽃이 핀다”는 말만큼 낭만적입니다.
하지만 가뭄에 타 죽은 들꽃은 정의를 찾지 않습니다.
500년 전의 정의는 신의 뜻이었고,
100년 전의 정의는 제국의 질서였으며,
지금의 정의는 댓글 많은 쪽의 의견일 수 있습니다.
그게 정의라면, 정의란 그때그때 변하는 해시태그일 뿐입니다.
정의는 늘 우리가 기대는 마지막 언덕입니다.
그래서 배신감도 크고, 분노도 깊습니다.
그러나 그 기대가 환상이라면, 우리는 절망 대신 구조를 설계할 지혜를 택해야 합니다.
“정의롭지 않다”고 분노하기 전에,
“어떤 시스템이 이 불균형을 만들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정의는 외치는 것이 아니라 설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감정이 아니라 지능의 몫입니다.
이제 다시 묻습니다.
우리가 말하는 정의는, 누군가의 감정인가, 아니면 모두에게 작동하는 설계인가?
우리는 단지 추상적 정의를 신앙하려는 미신 대신,
가능한 지금보다 더 나은 시스템을 만들어 갈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