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돌본다고?

현자의 돌

요즘 우리는 너무 자주 듣습니다.
“당신의 감정을 돌보세요.”
“당신의 감정을 치유하세요.”
"당신의 감정은 소중합니다."


우리는 관대하게 선한 말처럼 흘려듣습니다.
감정을 돌본다는 말, 과연 지성적이고 문명적인 조언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감정은 돌보는 대상이 아니라, 관리하고 정리하고 배치할 생리 시스템의 변수입니다.
감정은 본질이 아니라 반응이며, 생리적 흥분이지 실체가 아닙니다.
감정에 휘둘리는 순간, 판단은 흔들리고 삶은 파괴됩니다. 감정은 진화적으로 생존을 위해 만들어진 반응 체계입니다.


공포는 도망치기 위한 경고, 분노는 위협 차단을 위한 에너지 분출, 슬픔은 고립을 피하기 위한 신호.
자연 상태에선 이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자연생태계가 아니라 사무실, 회의실, 네트워크라는 문화문명사회생태계를 살아갑니다.
이제 감정은 기능이 아니라 불필요한 소음일 수 있습니다.
문명인은 감정을 다루는 존재이지, 감정에 휘둘리는 자연인이 아닙니다.

핵심은 문화문명사화생태계의 '시스템 기반 사고’와 자연생태계의 '반응 기반 사고’의 충돌입니다.
'반응 기반 사고'는 느끼는 것을 중심으로 행동합니다.
'시스템 기반 사고'는 느끼는 것과는 별도로 판단의 알고리즘을 따릅니다.
전자는 자연인이고, 후자는 문명인입니다.

감정을 돌보는 건 마치 날씨를 걱정하며 일정을 짜는 것과 같습니다.
매일 흐리다고 외출을 취소하겠습니까?
감정은 정신의 날씨일 뿐입니다.
날씨가 안 좋다고 회사를 그만두지 않듯,
감정이 흐리다고 인생을 멈출 순 없습니다.
감정은 참고사항일 뿐, 운영 기준이 되어선 안 됩니다.

우리가 지금 분노하거나 슬프거나 공허하다고 해서,
그 감정이 우리의 삶을 대표하지는 않습니다.
감정은 그저 지나가는 생리적 파동일 뿐입니다.

감정은 치유 대상이 훈련하는 대상입니다. 훈련하라는 말은 감정을 억압하고 통제하고 참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일어난 감정의 지향을 향사회적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이 자연인에서 문명인으로 전환되는 부분입니다.


문화문명사회생태계를 살아가는 우리는 감정을 품는 대신,
감정을 구조화하고 향사회적 지향이 되도록 훈련합니다.


향사회적으로 감정을 처리하면서

나로 되돌아올 수 있는 감정의 범위가 넓어져갈 때

중용에서는 중도의 크기가 자라난다고 합니다.


감정이 훈련의 대상이라는 말은

감정을 훈련시킨다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다루는 나를 훈련시킨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감정은 우리를 현자로 훈련시키기 때문에

연금술(Mental Alchemy)에서

현자의 돌이라 일컬어집니다.


좀 더 정확히는

충동성인 감정이라는 납을

황금인 지성으로 확충시키는 훈련 자체가

<현자의 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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