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 하얀 전장의 기수
망명한 도시의 바다.
빅토르 위고가 바라보고 있는 바다는 다락의 창틀을 오래된 리듬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소금기 어린 공기가 서가와 종이 사이를 지나 그의 폐 깊숙이 닿았다.
등잔 곁 잉크 냄새가 가라앉으며 시간이 느려지고, 그는 그 느림 속에서 글 한 줄을 더 적어서 무너지는 세계를 지탱하고 있었다.
이 순간, 종이 위에서 사각거리는 미세한 펜 끝의 소리는 프랑스 도시 전체에 종소리처럼 울려 나갈 것이었다.
망명 전, 프랑스 파리
1848년과 1851년 사이, 그는 연단과 신문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이어 온 사형제 반대의 문장은 의회 언어로 옮겨져, 법과 양심이 가리킬 방향을 꾸준히 지시하고 있었다(〈사형수의 마지막 날〉 1829, 국회 연설·신문 기고). 쿠데타가 터지자 그는 도망치지 않고 기록을 선택했다. 권력이 움직이는 방식을 문장으로 남겨,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을 증거를 만들었다(〈나폴레옹 소인〉 1852, 〈한 범죄의 역사〉 집필 1851–1852·출간 1877).
추방의 해들, 그가 머물던 도시 저지와 견지에서는 망명이 멈춤이 아니라 실험이 되었다. 해풍은 유리에 소금 가루를 말리고, 잉크 냄새는 방 안에 천천히 번졌다. 그는 그 공기 속에서 상실을 애도하고 불의에 응답하며, 가난과 법과 구제를 한 줄로 묶어냈다(〈징벌시〉 1853, 〈숙고시집〉 1856, 〈레 미제라블〉 1862).
1829년 사면이 왔을 때 그는 자유가 돌아오면 자신도 돌아간다는 거절의 한 줄로 더 먼 내일을 선택했다.
그리고 1870년 제2제국이 붕괴되자 도시는그를 다시 받아들였다. 1885년 마침내 그의 죽음이 도시에 퍼지던 날, 개선문 아래의 수백만의 밤샘 조문과 팡테옹으로 이어지는 긴 행렬은 한 사람의 문장이 공화국의 기억이 되는 장면을 완성하였다.
그의 생애는 증명하고 있다.
복잡한 현실을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모양으로 붙잡아 두는 힘, 혼돈에 형태를 부여하는 일이 한 도시와 한 시대의 윤곽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 Ceux qui vivent, ce sont ceux qui luttent. »
살아 있는 자는 싸우는 자다.
빅토르 위고 1802–1885
그에게 싸움은 누군가를 쓰러뜨리는 기술이 아니었다. 더 가까운 적인 무기력과 체념과 습관과의 공방이었다.
살아 있음이란 맥박처럼 되풀이되는 미세한 충돌의 연속이다.
숨이 들고남에 따라 흉곽은 저항하며 상처는 염증과 재생을 교대로 겪는다.
세포의 싸움이 멈추면 생은 정지하는 것이다.
우리를 둘러싼 보이지 않는 삶과 죽음의 공방이 밤낮을 잇고 있다.
별은 중력과 압력의 긴장 속에서 빛나고 대륙은 충돌과 침식의 호흡으로 산맥을 세운다.
형태는 언제나 장력에서 태어난다.
긴장이 없다면 윤곽도 없다는 것을 그의 생애는 보여준다.
견지의 밤, 다락 전망실 유리의 하얗게 말라 있는 소금가루,
바람이 창을 울릴 때마다 종이에서 일어나는 잉크 냄새,
망명한 시기의 무기력함에 저항하며 문장을 완성해가는 종이 위의 하얀 전장.
그것이 바로 형태를 부여하는 힘인 것이다.
혼돈에서 윤곽을 끌어내고 흐름을 리듬으로 붙잡고 고통을 기호로 바꾸어 길을 만드는 힘.
그 권능이란 단순 명료한 것이다.
지금 여기 종이 위에서 세상과 대치하고 서있는 하얀 전장에서
문장 한 줄이 일렬이 되어 전진하는 것.
그 순간 규칙이 생기고 규칙이 질서를 세우며 그 질서가 내일의 지형을 그리는 것이다.
펜을 하얀 종이 위에 깃대처럼 세우면 나는 그의 하얀 전장에 소환된다.
그리고 권능의 기수가 되어 해풍이 불어오는 소금기 얼룩진 하얀 전장을 질주한다.
이 문장의 깃발로 점령한 나의 영토가 빛과 어둠의 경계가 되고 <나>라는 윤곽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