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언의 언령 -위너와 루저

사용자 계정과 관리자 계정

컴퓨터에는 두 가지 계정이 있다.

하나는 모든 것을 실행하고 바꿀 수 있는 관리자 계정(root),
다른 하나는 제한된 권한만 가진 일반 사용자 계정(user).

삶도 이와 같다.
니체는 군중에 휩쓸려 사는 자를 루저(천민)라 불렀고,
자기 힘으로 가치를 세우고 창조하는 자를 위너(귀족)라 보았다.
둘의 차이는 곧 어떤 계정으로 로그인하느냐의 문제다.

루저 ― 제한된 계정, 불평만 남는 사용자

루저는 시스템을 바꿀 권한이 없다.
프로그램이 멈추면 관리자 탓을 하고,
에러가 나면 “왜 나는 이런 계정을 받았을까” 하며 불평한다.
하지만 스스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르상티망(Ressentiment).” – Nietzsche
“원망과 질투.”

루저의 특징은 바로 이 원망이다.
권한이 없는 계정처럼, 늘 남 탓을 하며 제한된 환경에 갇혀 산다.
당신의 삶이 남 탓으로만 채워져 있다면, 지금 당신은 일반 계정에 로그인해 있는 것이다.

위너 ― 관리자 계정, 스스로 권한을 부여하는 자

위너는 다르다.
그는 시스템의 규칙을 남이 정해주길 기다리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직접 설치하고, 직접 지우고, 직접 빌드한다.
관리자 계정처럼 전체 권한을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우버멘쉬(Übermensch).” – Nietzsche
“초인.”

위너는 초인으로 향하는 인간이다.
그는 고통과 실패마저도 자기 힘으로 재구성한다.
에러 로그를 탓하지 않고, 그것을 다음 버전으로 만드는 데이터로 활용한다.

당신은 지금 관리자 계정으로 로그인했는가?
아니면 여전히 제한된 계정에 머물고 있는가?

군중과 귀족 ― 계정의 선택

군중은 늘 같은 비밀번호를 공유하는 사용자들과 같다.
그들은 안전하지만, 자기만의 환경을 가질 수 없다.
귀족은 자기만의 계정으로 로그인한다.
그 계정은 불안정하고 위험할 수도 있지만, 오직 그만이 새로운 프로그램을 설치할 수 있다.

“Der Mensch ist etwas, das überwunden werden soll.” – Nietzsche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어떤 것이다.”

군중의 계정에서 벗어나, 귀족의 계정으로 넘어가야 한다.
그 순간부터 당신은 루저의 시스템에서 위너의 OS로 전환된다.

실행 ― 당신의 계정 전환

남을 탓하는가? → 일반 사용자.
스스로 실행하는가? → 관리자.

군중과 똑같이 움직이는가? → 제한된 계정.
자신만의 길을 여는가? → 초인의 계정.

이제 당신의 선택만 남았다.
당신은 오늘 어떤 계정으로 로그인할 것인가?

계정으로 비유해서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루저: 제한 계정 → 남 탓, 원망, 실행 불가.
위너: 관리자 계정 → 권한 부여, 창조, 실행 가능.

군중: 공유 계정 → 안전하지만 무력.
귀족: 자기 계정 → 위험하지만 창조적.

철학적 OS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하지만 로그인 계정은 당신이 선택해야 한다.
위너로 살고 싶다면, 지금 관리자 계정으로 접속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