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다른 언어
우리가 대화 속에서 자주 길을 잃는 것은, 밤하늘의 별을 보고 날씨를 예측하려는 사람(로고스)과 별을 보고 시를 쓰려는 사람(미토스), 그리고 별에게 기도를 올리는 사람(퀄리아)이 서로 같은 언어를 쓴다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따져야 할 자리에 믿음을 놓거나, 위로가 필요한 마음에 차가운 논리를 들이밀 때 마음은 소란스러워집니다. 그 소란함은 우리가 ‘서로 다른 도구’를 들고 ‘같은 대상’을 재려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Ruler)’를 가지고 ‘사랑의 무게’를 재려 하거나, ‘체온계’를 들고 ‘내비게이션의 방향’을 맞추려 할 때, 세상은 삐걱거리고 시끄러운 소음을 냅니다. 그러면 '서로 다른 도구'를 무앗인지 알아보도록 합니다.
편의상 세 가지 서로 다른 도구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로고스(Logos), 미토스(Mythos), 그리고 퀄리아(Qualia)로 구분해 보겠습니다. 이 세 가지 결을 구분하여 바라볼 때, 우리는 비로소 불필요한 소음을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는 ‘로고스(Logos)’의 세계, 곧 이성과 법칙의 영역입니다.
우리가 길을 찾을 때 사용하는 내비게이션(GPS)을 떠올려 보십시오. GPS가 우리를 목적지로 이끄는 것은 우리가 기계에 기도를 드려서가 아니라, 그 안에 변하지 않는 물리학의 법칙이 흐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계가 엉뚱한 길을 가리킨다면, 우리는 그것을 신의 뜻이라 여기지 않고 오류를 수정합니다. 이처럼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며, 틀리면 언제든 고칠 수 있는 차가운 사실의 세계. 이곳에는 개인의 취향이 머물 자리가 없습니다. 오직 검증된 진실만이 길을 안내할 뿐입니다.
이곳은 우리의 믿음과는 무관하게 작동하는 법칙과 검증의 차가운 질서가 지배합니다.
두 번째는 ‘미토스(Mythos)’의 정원, 곧 치유와 서사의 영역입니다.
이곳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사실인지가 아니라, 우리 삶을 얼마나 따뜻하게 어루만지는가 하는 ‘효용’입니다. 요즘 많은 이들이 즐기는 MBTI가 좋은 예가 되겠지요. 인간의 복잡한 마음을 몇 개의 단어로 자르는 것이 엄밀한 과학은 아닐지 모릅니다.
하지만 "게으른 게 아니라 성향이 그래서 그렇구나"라며 관용스러워지고, 타인의 낯선 모습을 이해하는 도구가 된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마치 영화가 허구인 줄 알면서도 그 안에서 위로를 얻듯, 미토스는 팍팍한 현실을 부드럽게 감싸주는 마음의 윤활유가 되어줍니다. 비록 과학적 사실은 아닐지라도, 누군가에게 나아갈 용기를 준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또 다른 의미로 유용할 수도 있습니다. 이곳은 인간의 불안을 잠재우는 효용의 공간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퀄리아(Qualia)’의 심연, 곧 닿을 수 없는 체험의 영역입니다.
이곳은 타인이 결코 침범할 수 없고, 온전히 체험한 당사자에게만 존재하는 진실입니다. ‘사랑’에 빠진 사람의 마음이 그러합니다. 누군가 이성적으로는 전혀 맞지 않는 대상을 사랑할 때, 주변에서 아무리 논리적인 이유를 들어 말려도 그 마음은 식지 않습니다.
그가 느끼는 심장의 떨림과 환희는 호르몬의 작용이나 운명론 같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오직 그만이 아는 생생한 우주입니다. "신을 만났다"는 고백 또한 이와 같습니다. 그것은 그 사람에게는 절대적인 진실이지만, 밖으로 꺼내어 증명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러니 이곳은 논쟁의 장소가 아닙니다. 홀로 맛보는 체험의 세계입니다. 그저 침묵해 주는 것이야말로 성숙한 배려일 것입니다.
사실을 확인해야 할 때 내비게이션(로고스)을 켜고, 위로가 필요할 때 이야기(미토스)를 나누며, 타인의 깊은 사랑과 체험(퀄리아) 앞에서는 침묵해 줍니다.
이 세 가지 도구를 통해 대화의 폭을 가늠할 때 대화의 소음은 줄어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