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으로 관계맺기

사자는 사자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3. 무위(無爲)의 메커니즘: 사자는 사자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우리는 앞선 여정에서 우리 내면이 타인이 심어놓은 '내사(Introjection)'된 신념들로 인해 소화불량 상태임을 확인했습니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일까요?

"그래, 이제부터라도 나답게 살기 위해 노력해야지."

"더 열심히 내 본성을 찾아야지."

아마도 이러한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그 노력이야말로 오히려 '씽(Thing)'에 도달하지 못하게 막는 역설이 되기 때문입니다.


펄스의 "I do my thing"은 "나는 나의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한다"가 아니라, "나는 나의 일을 한다"는 현재형의 선언입니다. 이 미세한 차이 속에 변화의 질문에 대한 답이 있습니다.


이 답을 이해하기 위해 펄스 심리학의 또 다른 뿌리인 동양 철학, 특히 노자의 도가 사상으로 잠시 시선을 옮겨봅니다. 펄스가 말한 '씽(Thing)'을 수행하는 상태는 노자가 말한 무위(無爲)의 상태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우리는 흔히 무위를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으름'으로 오해합니다. 하지만 무위는 행위의 부재가 아니라, '인위(Artificiality)'의 부재입니다. 그것은 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흐르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새는 나는 법을 배우기 위해 야간 자율학습을 하지 않습니다. 날개가 있으니 날 뿐입니다. 물고기는 헤엄치기 위해 '노력'하지 않습니다. 지느러미가 있으니 헤엄칠 뿐입니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생물학적 본성을 수행하고 있을 따름입니다.


반면 인간은 끊임없이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자신을 학대하고 채찍질합니다. 이것이 바로 노력(Effort)의 본질입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정의하는 노력이란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려는 저항'입니다.

꽃이 자신이 장미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백합이 되려고 노력한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그 장미는 평생을 열등감과 피로 속에서 시들어갈 것입니다. 현대인이 겪는 만성 피로의 원인은 업무량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장미로 태어난 존재가 백합이 되려고 24시간 내내 자신과 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싸움을 펄스는 내전(Civil War, 시빌 워)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이 내전의 당사자는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두 개의 분열된 자아입니다.

하나는 상전(Top Dog, 탑 독)입니다. 그는 완벽주의자이며 독재자입니다. 그는 사회적 규범과 부모의 목소리를 대변합니다. 그는 항상 채찍을 들고 명령합니다. "너는 더 성공해야 해", "너는 더 날씬해야 해", "너는 화를 내면 안 돼." 프로이트가 말한 초자아(Superego)와 유사하지만, 펄스는 이를 훨씬 더 공격적이고 폭력적인 실체로 규정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인(Under Dog, 언더 독)입니다. 그는 저항자이며 꾀병쟁이입니다. 그는 상전의 명령에 정면으로 맞서지 못하고 수동적인 공격(Passive Aggression)을 합니다. "알았어, 할게. 내일부터...", "아, 깜빡했네." 그는 겉으로는 순종하는 척하지만, 끊임없이 실수하고, 미루고, 아프다는 핑계로 상전의 계획을 좌절시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이 상전과 하인의 싸움이 끊이지 않습니다.

상전: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운동해!" (Should)

하인: "너무 피곤해, 5분만 더 잘래." (Want)


이 싸움에는 승자가 없습니다. 상전이 이기면 우리는 강박증과 불안에 시달리고, 하인이 이기면 우리는 무기력증과 자기비하에 빠집니다. 무엇보다 이 과정에서 막대한 심리적 에너지가 소모됩니다. 외부 세계로 뻗어 나가 '나의 일(Thing)'을 창조해야 할 에너지가, 내부의 갈등을 봉합하는 데 전량 투입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경증 환자가 겉보기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도 탈진해 있는 이유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아놀드 바이저(Arnold Beisser)가 제창한 게슈탈트 치료의 핵심 이론인 변화의 역설적 이론(Paradoxical Theory of Change)을 마주하게 됩니다.

아놀드 바이저는 펄스의 제자이자 동료였으나, 촉망받던 테니스 챔피언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25세에 소아마비에 걸려 전신이 마비되는 비극을 겪었습니다. 평생 코트를 누비던 그가 침대에 묶여 꼼짝할 수 없게 되었을 때, 그는 절망하며 "다시 걷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 '노력'은 그를 더 깊은 우울로 몰아넣었습니다. 그가 진정한 평화를 찾고 심리학자로서 새로운 삶(변화)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이게도 "나는 이제 걸을 수 없다"는 비참한 현실을 완전히 인정하고 수용했을 때였습니다. 그는 이 체험을 바탕으로 1970년에 쓴 논문에서 이렇게 선언합니다.


"변화는 개인이 자신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되려고 노력할 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현재의 모습 그대로임을 온전히 받아들일 때 일어난다."


이것은 직관에 반하는 충격적인 통찰입니다. 우리는 나쁜 습관을 고치고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하지만 바이저와 펄스는 말합니다. "변화하려고 하지 마라. 그저 당신 자신이 되어라." A라는 지점(현재)에서 B라는 지점(이상)으로 이동하려면, 먼저 내가 A에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밟아야 합니다. 내가 A에 있음을 부정하고 B에 있는 척하려 한다면(노력), 나는 허공에 떠 있는 상태가 되어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게 됩니다.


내가 지금 슬프다면, 억지로 웃으려 노력하지 말고 그 슬픔 속에 온전히 머물러야 합니다. 내가 지금 게으르다면, 부지런해지려 애쓰지 말고 그 게으름을 온전히 느껴야 합니다. 역설적이게도, 내가 나의 현상태를 100% 긍정하고 수용하는 순간, 내 안의 에너지는 갈등을 멈추고 통합됩니다. 상전과 하인이 싸움을 멈추고 서로를 바라보게 됩니다. "아, 나는 지금 지쳐서 쉬고 싶었구나." 이 자각이 일어나는 순간, 유기체는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나아갈 힘을 얻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위의 치유력입니다.


영화 《블랙 스완(Black Swan)》의 주인공 니나를 떠올려 봅니다. 그녀는 완벽한 백조를 연기하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Effort)을 합니다. 상전(어머니와 단장)의 명령에 맞춰 자신을 통제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진정한 예술의 경지(Thing)에 도달하는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바로 완벽해지려는 통제를 놓고,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어두운 본능, 즉 흑조(Black Swan)를 있는 그대로 분출했을 때였습니다.


뇌과학적 관점에서도 이는 타당합니다. 억지스러운 노력은 전두엽(이성)이 변연계(감정)를 강제로 억압하는 과정입니다. 이는 막대한 포도당을 소모하며 뇌를 스트레스 상태로 몰아넣습니다. 반면 무위와 수용의 상태는 뇌의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와 실행 네트워크가 조화를 이루는 상태입니다. 이때 우리는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한의 효율을 내는 몰입(Flow) 상태에 진입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게슈탈트 기도문의 첫 문장 "나는 나의 일을 한다"는 더 열심히 살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아닙니다. 오히려 "나는 더 이상 나를 괴롭히는 억지스러운 노력을 하지 않겠다"는 항복 선언이자 휴전 선언입니다.

"나는 착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겠다. 나는 성공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지 않겠다. 대신 나는 지금 화가 나면 화를 내고, 울고 싶으면 우는 '살아 있는 나'로 존재하겠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억지로 노력하지 않습니다.

사자는 사자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자로 살 뿐입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씽(Thing)은 바로 이 '애쓰지 않음의 미학' 속에 있습니다. 내 안의 상전과 하인을 화해시키고, 낭비되던 에너지를 통합하여 삶의 창조성으로 전환하는 것. 이것이 1969년 에설런의 절벽 위에서 펄스가 우리에게 전하고자 했던 씽(Thing)의 연금술입니다.


이제 우리는 타인의 욕망(Task)을 걷어내고, 억지스러운 노력(Effort)마저 내려놓았습니다. 비로소 맨몸의 '나'가 드러났습니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이릅니다. 이 벌거벗은 자아가 세상 밖으로 나가는 순간, 더 교묘하고 강력한 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로 '기대(Expectation)'라는 이름의 부드러운 감옥입니다.


다음 여정에서는 기대가 어떻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위장하여 우리를 채무자로 만드는지, 그 폭력적인 구조를 사르트르의 시선과 푸코의 권력론으로 더욱 정밀하게 해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제1장의 여정은 여기까지입니다. 우리는 혼란의 숲 입구에서 덩굴을 걷어내고, 잊혀진 고대 유적(본성)의 입구를 발견했습니다. 이제 횃불을 들고 그 내부로 들어갈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