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으로 관계맺기

You are you, and I am I

제3장.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


1. 서론: 명료한 진실


게슈탈트 기도문의 허리를 담당하는 세 번째 문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입니다(You are you, and I am I)."


이 문장은 "사과는 사과다", "물은 물이다"와 같은 동어반복(tautology, 토톨로지)으로 정보값이 0에 수렴합니다. 그런데도 이 당연한 문장은 왜 이리도 단호해 보이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이 문장이야말로 혼란스러운 관계의 지옥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비상구이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논리학의 제1원리로 동일률, 즉 "A는 A이다"를 제시했습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세상의 모든 질서는 붕괴합니다. A가 A이면서 동시에 B일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고의 기초이자 존재의 기초입니다.


현대인의 관계 병리는 바로 이 논리학의 기초가 무뎌진 데서 시작됩니다. "너는 무엇이야 해"라는 형이상학적 기대라는 상호간섭 속에 살아갑니다. 부모는 자식을 통하여 충족하고, 연인은 반쪽이라 부르며 경계를 허뭅니다. "네가 아프면 나도 아파"라는 말은 사랑의 말은, 실존적 관점에서는 자아 붕괴의 경보음인지도 모르며. 병리학적으로 본다면 더 심각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프리츠 펄스는 이 정보값 0의 동어반복을 통해 혼탁한 관계를 교정합니다. "당신은 당신이고(You are You), 나는 나다(I am I)." 이 선언은 혼탁해진 관계를 명료한 0 값으로 재설정하는 관계 분리 작업입니다. 서로 섞이지 않을 때 비로소 각자 고유한 존재로서 정상적인 관계를 할 수 있다는 역설입니다.


2. 경계(Boundary)가 없으면 생명도 없다

추상성을 0 수준으로 끌어내려 생물학적 수준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생명이란 무엇일까요? 칠레의 생물학자 움베르토 마투라나는 생명의 정의를 자기 생성 시스템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생명체는 끊임없이 자신을 재생산하며, 이를 위해 외부 환경과 자신을 구분하는 막(membrane)을 유지해야 합니다.


우리 몸의 세포를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모든 살아 있는 세포는 세포막이라는 물리적 경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막은 내부(Self)와 외부(Non-self)를 엄격하게 구분합니다. 세포막은 외부의 영양분은 받아들이되, 독소나 바이러스는 차단하는 선택적 투과성을 가집니다. 만약 "우리는 하나야"라며 세포막을 열어젖히면 외부 물질이 쏟아져 들어와 세포는 터져 죽습니다. 이것을 용해(Lysis)라고 부릅니다. 세포에게 경계의 상실은 곧 죽음입니다.


현대 면역학의 핵심은 자기(Self)와 비자기(Non-self)의 식별입니다. 내 몸의 면역 세포가 나 자신을 적으로 오인해 공격하는 것을 자가면역질환이라 부릅니다. 반대로, 외부에서 침입한 바이러스를 나라고 착각해 공격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것, 이것은 에이즈(AIDS)와 같은 면역 결핍 상태입니다.


상호간섭 수준의 심리 상태는 정신적 에이즈에 가깝습니다. 타인의 욕망, 타인의 감정, 타인의 비난이 여과 없이 내면으로 침투합니다.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떡하지?" "너에게 기대했는데 실망했어."


이것은 심리적 세포막이 뚫려버린 감염 상태입니다. 펄스가 "나는 나다"라고 외친 것은, 뚫린 세포막을 복구하여 바이러스(타인의 부정적 감정)로부터 나를 보호하라는 생존 명령입니다. 건강한 자아는 타인의 고통을 인지하되, 그 고통에 감염되지 않습니다. 의사가 환자의 병을 고치기 위해 환자와 함께 병에 걸릴 필요가 없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다"라는 선언은 심리적 세포막을 복원하여, 타인의 감정적 독소로부터 자신의 고유성을 지켜내겠다는 생존 본능의 발현이자 면역학적 필연성입니다.


3. '우리'라는 마약

게슈탈트 치료에서는 너와 나의 경계가 사라진 병리적 상태를 융합(confluence)이라고 부릅니다. 융합이라는 단어는 강물이 합류하여 하나가 된다는 뜻입니다. 두 강물이 섞이면 어디가 본류이고 어디가 지류인지 알 수 없게 됩니다.


융합은 발달 과정의 초기, 즉 유아기에는 필수적입니다. 갓 태어난 아기는 어머니와 심리적으로 융합되어 있어야 생존할 수 있습니다. 어머니가 없으면 나도 죽는다는 공포, 이것이 유아적 융합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도 이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은 퇴행이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고독을 견디기 힘들어 융합이라는 마약을 찾습니다. "우리"라는 단어 뒤에 숨을 때 느끼는 안락함은 달콤합니다. 집단주의, 전체주의, 광신적 종교, 그리고 맹목적인 연애는 모두 융합의 변종들입니다. 이곳에서 "나(I)"는 사라지고 거대하고 모호한 "우리(We)"만이 남습니다.


펄스는 임상 현장에서 환자들이 끊임없이 치료자와 융합하려는 시도를 목격했습니다. 환자들은 치료자의 동의를 구하고, 치료자를 기쁘게 하려 애씁니다. 펄스는 이를 냉정하게 거절하며 "당신의 똥은 당신이 닦아라(Wipe your own ass)"라는 충격적인 말을 던지곤 했습니다. 이것은 모욕이 아닙니다. 자신의 감정과 배설물(책임)을 타인에게 떠넘기지 말고 스스로 처리하라는, 자립에 대한 강력한 촉구입니다.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다"라는 선언은 이 끈적거리는 융합의 고리를 끊는 가위입니다. 서로 엉겨 붙어 질식해 가는 두 사람을 떼어놓아, 각자의 폐로 숨을 쉬게 만드는 산소 공급입니다.


4. 감정의 경제학: 책임의 분리와 등기 이전

이 문장은 또한 감정의 소유권을 명확히 하는 등기 역할을 합니다. 인간관계의 갈등 대부분은 감정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할 때 발생합니다. "너 때문에 화가 났어." "너 때문에 행복해."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게슈탈트 심리학의 관점에서 이 문장들은 모두 거짓입니다. 화나 행복이라는 감정은 외부 자극(Trigger)에 반응하여 내 신체와 뇌에서 생성된 화학 작용입니다. 자극은 타인이 주었지만, 반응을 선택하고 생성한 주체는 나 자신입니다.


"나는 나다(I am I)"라는 말은 "내 감정의 주인은 나다"라는 뜻입니다. 내가 화가 난 것은 나의 책임입니다. 반대로, "당신은 당신이다(You are you)"라는 말은 "당신의 실망은 당신의 책임이다"라는 뜻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성적 때문에 실망해서 한숨을 쉽니다. 하지만 성적이 낮은 것은 자녀의 사실(Fact)이지만 그것은 부모님의 기대와는 무관합니다. 성적에 대해 실망한 것은 부모님의 기대에 부모님 스스로 실망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 실망감을 처리하는 몫 또한 부모님의 것일 뿐입니다. 그것이 '나는 나, 당신은 당신'의 의미가 됩니다.


이것은 각자가 감당해야 할 짐을 명확히 함으로써, 불필요한 원망과 죄책감의 고리를 끊는 원칙입니다. 내가 당신의 짐을 대신 들어줄 수는 없지만, 짐을 들고 가는 당신을 응원할 수는 있습니다. 이것이 건강한 거리 두기입니다.


5. '나와 너': 분리되어야 만날 수 있다

유대인 철학자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그의 명저 《나와 너(I and Thou)》에서 진정한 관계의 원형을 제시했습니다.


부버는 인간의 관계를 두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첫째, 나와 그것(I-It)의 관계. 내가 상대를 이용할 도구, 경험할 대상, 분석할 객체로 대하는 관계입니다. 여기에는 진정한 만남이 없습니다. 타인은 나의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둘째, 나와 너(I-Thou)의 관계. 내가 나의 전 존재를 기울여 상대를 대등한 인격체로 마주하는 관계입니다.


역설적이게도 '나와 너'의 만남이 성립하려면, 먼저 '나'가 확고하게 서 있어야 하고, '너'가 온전히 분리되어 있어야 합니다. 융합된 상태에서는 '나'도 없고 '너'도 없습니다. 오직 덩어리진 혼란만이 있을 뿐입니다.


내가 당신에게 의존한다면 나는 '나'가 아니라 '당신의 부속품'이 됩니다. 반대로 내가 당신을 통제하려 한다면 당신은 '너'가 아니라 '나의 꼭두각시'가 됩니다. 이 상태에서는 '나와 너'의 만남이 불가능합니다.


펄스의 "You are you, and I am I"는 부버의 철학을 임상적으로 실천하는 전제 조건입니다. 내가 단단한 고체(독립된 자아)가 되었을 때만, 당신이라는 또 다른 고체와 부딪쳐 맑은 소리를 낼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이고, 나는 나입니다(You are you, and I am I)."


이것은 영혼의 생존을 위한 면역 시스템이자, 성숙한 관계를 위한 관계의 제1원칙이며, 실존적 만남을 위한 초대장입니다. 너는 너로서 온전하라. 나는 나로서 온전하겠다. 이 '분리'가 있어야 비로소 '만남'이 가능해집니다.


이제 우리는 폐허의 세계에서 각자의 궤도를 도는 독립된 행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현존으로 관계 맺기라는 실존적 만남을 위하여 다음 여정으로 떠나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