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정종
우리는 흔히 선함이란 선한 의도와 진심에서 비롯된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선한 의도와 진심이란 그저 주관적인 미신에 불과합니다. 세상을 지탱하는 힘은 그런 자의적이고 변덕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건조하고 메마른 사회적 합의로 규격화된 '기능의 수행'입니다.
자신의 의도나 본심과 무관하게,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 속에서 이 규격화된 기능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이야말로 자아를 이기고 예(禮)로 돌아가는 '극기복례(克己復禮)'이며, 이것이 바로 유교가 말하는 인(仁)의 진정한 모습일 것 입니다.
공자는 "자신을 이기고(극기) 예로 돌아가는 것(복례)이 곧 인(仁)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자신을 이긴다(극기)'는 것은 주관적 의도나 본심을 멈추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로 돌아간다(복례)'는 것은 주관적인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공동체의 질서가 요구하는 객관적인 규범과 형식을 묵묵히 따르는 기능적인 것을 의미합니다.
이 극기복례가 극한으로 밀어붙여질 때 도달하는 궁극의 경지가 바로 '살신성인(殺身成仁)'입니다. 내가 속한 관계망이 붕괴될 위기에 처했을 때, '나의 생존'이라는 이기적 목적 조차 포기함으로써 전체의 톱니바퀴가 계속 돌아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즉, 죽음조차도 전체의 거대한 조화(공화)를 지켜내기 위해 기꺼이 우주적 관계망을 지탱하는 단단한 뼈대(기능)로 스스로를 환원하는 '최후의 기능적 책무'로 수용하는 행위입니다.
9.11 테러 직후, 무슬림을 향한 증오범죄가 폭증했을 때 뉴욕 경찰(NYPD)을 비롯한 지역 경찰들은 이슬람 사원과 상점 주변에 무장 경찰을 배치해 철통 경호를 펼쳤습니다. 현장의 경찰들은 동료를 잃은 끔찍한 슬픔과 분노 속에서도, "공권력은 철저히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원칙(예) 아래 무슬림의 권리를 방어했습니다. 이는 감정과 임무를 철저히 분리하여 관계망의 붕괴를 막아낸 숭고한 책무(인)의 수행이었습니다.
이처럼 타인을 내 가족처럼 사랑하지 않아도, '최소한의 호환성'인 헌법적 가치를 지키는 것만으로도 공화는 성립합니다. 사적인 반감과 공적인 권리를 완벽하게 분리해 낸 이 태도야말로, 나라는 주어를 버리고 기능적 공화를 지켜내는 극기복례의 발현입니다.
철저하게 감정과 자아가 증발한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서늘한 헌신. 마음이 지옥 같아도, 억울한 오해를 받더라도, 당장 눈앞의 밀린 빨래를 치우듯 마땅히 해야 할 관계의 의무를 묵묵히 해내는 것. 이것이 진정한 인(仁)의 맨얼굴입니다.
억지로 같아지려 하지 않고 서로의 다름을 명확히 인정한 채 조화를 이루는 것(화이부동, 和而不同). 그것이 바로 '예(禮)'라는 최소한의 호환성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위대한 '우리(공화)'라는 지향점입니다.
한국의 독특한 '우리'라는 공존의 감각이야말로 조선 유교 500년의 인(仁)으로 담금질된 '기능적 공화(共和)'의 산물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