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된다는 것
2026년 1월 17일 두 개의 우주가 나에게 찾아왔다.
'너는 나의 우주야'라는 말이 뭔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심지어 두 개라니, 가슴 벅차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그 벅참을 오랫동안 누리지는 못했다.
우주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게임에도 '이용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기다리게 하는 점검 사항이 있듯
두 우주에도 점검사항이 있다고 하더니 우리 부부와 분리시켜두었다.
온몸을 비닐로 감싸고 나서야 만날 수 있었는데, 너무 작게 태어나서 면역력이 약하다는 게 이유였다.
기쁨과 슬픔이 교차한다는 게 이런 것일까. 하루동안 얼마나 많은 감정이 오고 가던지.
내가 감정을 인식할 때쯤 되면 새로운 감정이 휘몰아쳤다. 잠잠해지려는 호수에 누가 이렇게 돌을 던지는지.
돌을 던질 수 있는 사람은 가족뿐이다.
중환자실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충격이었는데, 심지어는 자리가 없어서 전원을 가야 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한 명씩 흩어져야 한다는 말을 듣고 벌써 이산가족인가 생각을 했고, 다행히 같이 이동한다는 말에 겨우 안심을 했다. 썩 좋은 일도 아니지만 큰 고통 후에 작은 고통은 감사라는 것을 느꼈다.
병원 의사들은 로봇이 되려고 하는 것 같았다. 환자와 보호자에게 최대한 감정을 숨기고 사실만을 전달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호자로서 느끼는 불안감을 의사 앞에서는 숨길 수가 없었다. 환자 앞에선 보호자는 마치 신에게 간구하는 것처럼 의사에게 모든 것을 쏟아놓는다. 나의 걱정, 바람 등 의사에게 간구한다. 그러나 의사는 요동하지 않는다. 신이 아닐뿐더러 모든 사람을 그렇게 대할 수 없기 때문에.
안다. 알고 있다. 그러나 보호자가 듣고 싶은 말은 단 한 마디다
"괜찮을 겁니다"
괜찮다는 한 마디가 의사에게는 제일 어려운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별일 없을 겁니다' '다 잘 될 겁니다' 이런 말들을 할 수 없는 직업의 무게는 얼마나 무거울까.
환자가 호소할 때면 흔들리는 눈동자를 본다. 보호자가 매달리면 좋게 말해주고 싶은 그들의 고민이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알 수 없습니다' '지켜봐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을지 모르니,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사람들. 신이 아닌 인간이기에 교만하면 안 된다.
보호자는 그래도 듣고 싶다. '괜찮을 겁니다' '다 잘 될 겁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필요 없다. 의사에게서 그런 말을 듣고 싶다.
그 한 마디면 더 이상 물어볼 게 없다. 모든 상황을 정리해 준다.
나도 그 한 마디가 듣고 싶어 30분 동안이나 의사를 못 놓아주었다.
부모가 된다는 것. 태어나자마자 부모인 사람은 없다. 그저 자리가 사람을 만들 뿐이다.
아이들은 부모를 키워내는 양성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