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나'를 찾아서(1)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피에로

by 든든

눈물이 많은 어린 시절 부모님은 나를 수도꼭지라고 불렀다.

사소한 것에도 나는 툭하면 울었다.

나는 외강내유 스타일로, 마음이 엄청 여린 편이었다.

한 번 감정선이 올라오면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화가 나도, 분해도, 속상해도, 운동을 져도, 게임을 져도 다 울었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서툴렀던 나머지, 우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화가 날 때면 소리를 지르면서 말을 하다가 그 분함이 울음으로 변했다.

뭘 더 말할 수 없었다.


반면 나보다 1살 많은 형은 말을 참 잘했다. 그러다 보니 뭘 해도 나만 혼나는 것 같았다.

속상한 건 늘 나였기 때문에 내가 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눈물을 흘릴 때 나를 받아주는 사람은 없었다. 정확히는 내 감정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인 줄 알았다.

'나' 자신을 인정해 주기보다는 변화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냥 눈물이 많은 사람으로, 감정적인 사람으로 태어난 것뿐인데 감정을 느끼는 게 잘 못된 일이라고 느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귀여운 외모나 보호심을 자극하는 외형을 가졌다면 그나마 사람들의 포용을 받았을 것 같다.

나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또래보다 큰 덩치를 갖고 있었다.

누가 봐도 또래보다는 1-2살은 많아 보였고 많은 오해를 받았다.

1살 많은 친형이 있는데 바깥에 나가면 사람들은 나를 형으로 생각하곤 했다.

늘 듣는 말은 '형 거 다 뺏어먹었구나!'였다.


사람들은 장난이었겠지만 나는 저 말을 100번이고 넘게 들었다.

난 쓸데없이 착했던 것 같다.

저런 말을 듣고도 그냥 웃고 넘겼으니. 지금 같았으면 발작버튼 눌린 것처럼 가만히 안 있었을 거다.

덩치가 크다는 이유로 나는 장난을 칠 때도 가장 먼저 혼났다.

뭐라 해도 가장 상처가 안 날 것처럼 생겼나 보다. 만만했거나.


우는 게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것을 느낀 나는 10살에 다짐했다.

더 이상 울지 않겠다고. 내 감정을 표출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부모님에게도 더 이상 나의 이야기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울지 않는 법을 스스로 찾았다.

적어도 남들 앞에서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감정을 해소하기보다는 억누르는 방법을 선택했다.

감정을 억누르니 더 이상 사람들과의 관계가 불편하지 않았다.

참으면 편했다. 웃으면 사람들은 좋아했다. 그래서 웃었다.


내 별명은 수도꼭지에서 하회탈로 바뀌었다.

나는 하회탈 가면을 쓰고 지냈다. 가면 속의 나는 아무도 몰래 울고 있었다.

살아남기 위해 나를 없애고 있었다.


외부의 탓을 하고 싶지만

나를 가장 많이 괴롭게 하고 있는 건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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