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나'를 찾아서(2)

by 든든

감정을 배제한 뒤로 삶은 편해졌다. 물론 가슴이 텅 빈 것 같은 공허함이 찾아올 때가 있었지만 잠을 자면 그만이었다. 잠은 최고의 피난처이자 처방전이었다.


중학생 때 나는 창가 자리에 앉는 걸 좋아했다.

벽에 기댈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바깥을 볼 수 있었기에 나는 늘 창가를 고수했다.

감옥 같은 곳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공부를 나름(?) 잘했는데도 성적엔 관심이 없었다.

공부를 잘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는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이 있었다.


'왜 살아야 하는가?'

'왜 공부해야 하는가?'


사춘기와 함께 찾아온 공부에 대한 불만감이 폭발했다.

그다지 삶에 불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나는 모든 게 평범했다.

평범한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랐다. 특별하게 아프지도 다치지도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도 감사한 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사춘기 때도 그다지 큰 사건 사고가 생기지는 않았다.

일탈을 할 만큼의 용기도 없었다.

소심했다기보다는 한 번도 일탈을 해본 적이 없으니 익숙하지 않았다.

pc방을 처음 간 날도 얼마나 떨리던지... 잘못한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었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라던 나는 방황 아닌 방황을 시작했다.

나에게 방황이라 해봤자 공부를 안 하는 것뿐이었지만 말이다.

방황한 시간 동안 좋아하는 운동량은 더 늘었다.

내가 공부를 놓는 것을 보며 부모님은 잠이라도 잘 자고, 키라도 많이 커서 다행이라고 말씀하셨다.

답답하셨겠지만 두 분은 별말씀 안 하셨다.

참으로 건전한(?) 사춘기 시절이다.


돈을 벌어본 적도 없이 철없던 나는

'차라리 막노동을 하면 돈이라도 벌텐데' 생각을 자주 했다.

얼마나 힘든지 인지하지 못했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무슨 일을 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공부하는 시간이 아까웠다.


공부를 해서 몸 편하게 일을 해야 한다느니 몸 쓰는 일하면 버는 돈을 다 병원에서 써야 한다느니 소리를 들으면 지긋지긋했다. 적어도 나에게 행복한 것은 몸이 편한 건 아니었다.


물론 내가 간과했던 사실도 있었다.

생각보다 몸 쓰는 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는 점. 막일을 해봤지만 정말 힘들었다.

하시는 분들이 존경스럽다.

나는 생각보다 몸 쓰는 일에 흥미를 못 느낀다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보다 손기술이 부족하는 점이다.


당시에는 돈을 빨리 벌어서 집을 나가는 게 목표였다.

집에서는 아무도 나를 받아주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었다.

독립을 하기 위해서 나는 마이스터고에 지원했다.

결과는 떨어졌다.

성적은 거의 만점이었는데, 면접에서 떨어졌다.

애초에 가야 할 목적도 없는데 할 말이 없었다.

질문도 기억이 안 난다.


독립을 하려고 마이스터고를 가는 건 참 무모한 선택이었다.

공부를 왜 하는지에 대한 질문은 사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에 대한 답을 못 찾은 나머지 답답함 속에서 생겨난 질문이었다. 그런데 나를 위한 선택이 아니라 당장의 상황이 싫어서 회피하려는 선택을 하려고 한 것이었다.


나는 사실 앞서 말한 것처럼 손 기술이 좋지 않다.

기술 시간에 납땜을 하는 법을 배운 적이 있었다.

나는 정말 소질이 없었다.

늘 평균 이상을 하던 내가 선생님과 친구들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는 것이었다.

납땜을 해서 새소리? 가 나게 하는 기계를 조립하는 거였는데, 모든 과정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때 옆에 공부도 못하는 친구가 에이스인 것을 보고 알았다.

'이게 바로 재능이라는 거구나'


근데 고작 돈을 벌겠다는 이유로 의미 없는 선택을 하려 한주 내가 놀라웠다.

나중에 알게 되었다. '나를 망치고 있는 건 나는구나'


당시에 나는 주위의 상황이 싫었다.

영화나 드라마처럼 특별하게 환경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특별한 재능도 없었다.

'평범'이란 게 너무나도 싫었다. 그래서 나만의 특색을 갖고 싶었다. 그런데도 평범함을 벗을 수 없었다.


문제의 근원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 체 여전히 외부의 탓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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