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나'를 찾아서(3)

by 든든

나에게만 특별한 경험이 있다면 고등학교를 두 번이나 떨어져 봤다는 것이다.


첫 번째로 마이스터고를 떨어지고, 다시 생각했다.


기술은 아니었지.


그러고 나서 자사고에 원서를 넣었다.


추첨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경쟁률이 1.2 : 1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는 0.2에 속했다.


마이스터고에 떨어졌을 때에는 많이 슬펐다. 쓴 경험이었다.

두 번째 떨어지니 그냐 운명이거니 했다.


내가 그렇게 고등학교를 신경 썼던 이유는 동네에 있는 남자 고등학교를 가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동네를 뜨고 싶었다.

거기에 계속 있으면 끝없는 평범함 속에서 평생토록 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결국 고등학교도 다른 동네로 갔다. 인문계 학교였다.


난 다시 꿈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러다가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난 뭘 할 때 행복했지?'


시골에 가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밭 일을 했던 때가 생각이 났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양파 농사를 하셨는데, 양파를 뽑아서 가지런히 놓기도 하고, 가위로 잘라서 망에 넣는 일도 했다. 힘들지만 재미있었다. 농사일을 도우면 잡생각도 나지 않았었다. 사람들과의 불편한 관계도 맺지 않아도 될 거라 생각했다.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고등학교 1학년 1학기를 시작했다.

큰 꿈에 부푼 열정은 금방 식었다.

사실 공부를 스스로 해본 적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공부방을 다녀서 습관적으로 공부를 했다.

누가 시키는 공부를 한 거지 나 스스로 공부를 해 본 경험이 없었기에 혼자 할 수 있는 힘이 강하지 않았다.

외부의 도움이라도 받아야 했는데, 그게 싫었다. 나는 한 마디로 노답이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건 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다.

정확히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을 만난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내 마음속에 있는 상처와 고민의 짐을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 가장 큰 슬픔이었다.


마치 실타래처럼 엉켜있어서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르는 인생이었다.

내 이야기를 다 했을 때에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있었다.

나의 말을 전부 들어주었고, 수용해 주었다.

내가 힘들 때 찾아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야기를 하면서 느낀 건 내가 회복된다는 느낌이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알고 있는 것 같다. 다만 망가졌기 때문에 어디로 갈지 몰라 방황할 뿐. 망가짐은 모든 사람에게 온다. 누군가는 더 망가지고, 덜 망가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망가진 부분이 다 펴지는 것은 망가짐의 정도가 결정하지 않는다.

나의 망가짐을 다 보여줄 수 있는 존재에게 그대로 보여줄 때 회복이 시작된다.

그때에 발견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나를 사랑하지 않고, 부정하고 있는 '나' 자신이다.

문제의 원인은 외부에서부터 올지 모른다. 그러나 해결을 하려면 그 원인을 '나'에게서 찾아야 한다.

잘잘못을 따지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사람은 절대로 나를 바꿀 수 없다. 상처를 줄 수 있겠지만 받는 것은 '나'의 영역이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충분히 하고 난 후 나의 삶은 달라졌다.

물론 당시에는 많은 것들을 다 알지 못했지만 '나'를 돌보기 시작한 첫 시작이었다.

어렸을 때 감정에 대해서 부정한 것을 시작으로 내 삶은 망가지고 있었다.

겉으로는 티가나지 않았다. 포장이 잘 되어있었으니까. 하지만 속을 보면 그렇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내 속을 보지 못하게 막았다. 난 괜찮았어야 했으니까.

누군가 나를 들여다보려고 하면 나는 가시를 세웠다. 아무도 날 이해하지 못할 거야라는 마음으로.


학창 시절 나는 학교에서 친구들이 그래도 주위에 늘 있는 편이었다. 운동을 좋아해서 그런지 주위에 남자들 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나를 더 숨길 수밖에 없었다. 직설적인 말과 공감 없는 말투, 심한 장난들에 익숙해져 갔다. 물론 그 모든 것들이 싫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영역은 따로 있었을 뿐.


당시를 생각해 보면 취향이나 취미에 대한 존중이 많이 없었던 시대였던 것 같다.

애니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표현하는 '오타쿠', '덕후'의 표현이 당시에 쓰였을 때에는 부정적 의미가 강했다. 그런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당당하게 표현하는 시대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당시에 나는 참 자존감이 낮았다。 나의 취향, 취미, 성격, 감정들이 인정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내가 인정하지 않았다.


나를 돌보기 시작했지만 학교에서 그것을 모두 드러낼 수는 없었다. 또래가 더 중요했기 때문에 독특하게 튀는 것은 여전히 두려움이었다. 그래서 '나'에 대한 인정이 조금씩 있으면서도 자연스럽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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