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에 서툰 한 사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는 좀처럼 말이 없었다. 자신의 기분이나 생각을 잘 표현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표현에 서툴 뿐 표현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표현하는 것들은 단지 아주 사소한 일상의 에피소드, 뉴스를 보며 내뱉는 추임새 같은 것들이 전부였다. 그의 말을 다 끌어모아 봐도 그의 속마음을 알 길이 없었다. 도대체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사는 것일까. 그가 진정으로 안녕한지 나는 궁금했다.
-- 나는 표현을 하는 것이 서툴다. 아니, 서투르다기보다 속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맞는 표현일 것이다. 어렸을 때는 나의 모든 이야기를 재잘재잘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이런 내 모습을 보면 짹짹거리는 참새 같다고 하셨다. 알았으니 제발 숨 좀 쉬고 이야기하라며 귀를 쫑긋 세우고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그런 내가 왜 입을 다물게 되었을까. 나이를 먹고, 세상의 물이 들어가면서 때로는 침묵이 답일 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솔직한 나의 말이 공분을 샀고, 눈덩이처럼 부풀려졌고, 때로는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말이 많아질수록 문제를 만들어낼 여지도 늘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차라리 침묵하는 편이 나았다. 딱 필요한 말만 하면서 살면 그만이었다. 적어도 내 뜻은 그게 아니었다며 변명 아닌 변명을 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그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불안해 보였다. 그는 말하지는 않았지만, 표정을 숨기지는 못했다. 말하지 않았어도 그의 마음이 표정과 태도를 통해 드러났다. 굳이 말을 사용하지 않아도, 표현하는 방식은 다양하니 말이다. 불만인 듯 인상을 쓰거나,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팔짱을 끼고 물러나 앉는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는 자기 생각을 열정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 침묵했지만, 누구보다 시끄럽고, 분주했다. 그런 그가 웃기면서도 애잔해졌다. 그를 더 알고 싶었다. 나는 그를 관찰했다. 시간이 흘렀다. 그가 점점 생기를 잃어갔다. 살아있지만, 죽어있는 밀랍 인형 같아 보였다.
-- 나를 표현하지 않는 것은 편했지만, 행복한 것은 아니었다. 나를 드러내지 않으니 관계가 변하기 시작했다. 언제 연락이 끊겨도 이상하지 않은 딱 그 정도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가 속마음을 보이지 않으니 벽을 쳐놓은 것 같다고 했다. 이런 거리감이 자신을 힘들게 한다며 나를 떠났다. 하지만 또 누구는 나의 진심을 알면서도 나를 떠났다. 관계란, 그리고 그 사이의 적당한 표현이란 어려운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관계의 트러블은 마음의 병을 낳았다. 극심한 불안감. 의지할 곳 없는 외로움.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군중 속의 고독이 밀려왔다. 삼삼오오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저 많은 사람은 중에 나는 왜 혼자인 거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와버렸을까.’ 나도 내 마음을 드러낼 누군가가 필요했다. 다시. 그런 존재가 필요했다. 힘들 때 마음을 담은 위로를 받고, 기쁠 때 진정으로 축하받고 싶었다. ‘누가 내 말을 좀 들어줄래요?’
밀랍 인형 같았던 그의 눈에서 간절함이 보았다. 지친 기색이 역력한 그의 눈빛은 ‘누가 내 말을 좀 들어줄래요?’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갔다. 그의 앞에 그늘이 지자 그가 나를 쳐다봤다.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 빛이 들기 시작했다. 이 느낌은 나의 착각일까. 그러나 정확히 그의 눈이 놀라면서도 희망이 스치는 듯 반짝거렸음을 나는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그에게 말을 건넸다.
“오랫동안 당신을 봐왔어요. 당신이 궁금했어요. 당신의 이야기가 듣고 싶었어요.”
말을 하지 않으면 어떡하지. 내가 느낀 그의 눈빛이 착각이었으면 어쩌지.
내가 이렇게 고민하고 있을 때, 그는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나는 내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어요. 그런데 말을 할 수 없었어요. 그 할 수 없음이 나를 힘들게 했을 때,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그는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생기가 그의 눈빛에서 얼굴로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 결국, 지금의 나는 침묵기를 깨고 나와 이런저런 말을 많이 하고 있다. 그러나 내게는 서툰 부분이 남아있었다. 바로 화가 났을 때나 부당하다고 느끼는 일을 겪을 때. 그때는 침묵으로 내 기분을 표현하고는 했고, 그것이 최선의 표현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방법이 올바른 방법이 아님을 알고 있다. 침묵은 무언의 긍정이었으니 말이다.
오랫동안 침묵했던 나는 이제 내 생각을 사실대로 말하고, 대신 완곡하게 표현하는 방법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들은 상대방의 기분은 어떨지 몰라도(갑작스러운 변화에 당황했겠지만) 나는 이렇게 내 생각을 드러냄으로써 마음이 한결 편해짐을, 그리고 나다워짐을 느꼈다.
한때 표현이 서툴렀던 나는 이제 그 어느 때보다 열심히 표현하며 산다. 부족한 나의 표현 방법을 조금씩 고쳐나가며 글로, 때로는 말로 나를 표현하고 있다. 이렇게 표현함으로써 감정과 기억이 정화되니, 침묵과 인내보다 표현하는 것이 더 좋은 방법임을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었다. 그러니 나는 오늘도 쓴다. 마음껏 표현한다. 내 마음의 기쁨, 슬픔, 분노, 행복, 우울, 민망함, 자랑, 고민 등등.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눈치 보지 말고 표현한다. 표현하는 것이 내가 나답게 살고 행복하게 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꾸준히 쓰자.
때로는 취중 진담처럼 끄적거려도 보고, 때로는 정신 바짝 차리고 비판도 해보고, 때로는 현미경으로 보듯 깊게 관찰하는 글도 써 보자. 간질간질한 사랑 이야기, 공기처럼 가벼운 일상 이야기, 눈물 가득한 슬픈 이야기. 가리지 말고 마음껏 쓰자. 이를 통해 그 모든 감정과 기억들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글로써 세상에 말을 거는 사람이다. 글을 쓰지 않는 것은 말을 하지 않는 것이고,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대화를 막는 것이다. 그리고 대화하지 않으면 나의 영혼은 행복할 수 없다. 고립되지 않고, 소통으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이든 지껄여보자. 바로 지금처럼!
(사진 출처: 픽사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