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점점 위세를 떨치는 계절의 새벽엔 여전히 밤이 이어지고 있다. 새벽 6시. 아직 해가 떠오르지 않아 한밤 같은 창밖의 풍경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여전히 맞은편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불빛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 그들은 줄지어서 자신만의 목적지를 향해 신속하게 빠져나간다.
길게 늘어서 물 흐르듯 내달리는 불빛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벅찼다. 부지런히 삶을 시작하는 자들에 대한 존경, 삶에 대한 열망과 기쁨, 하루를 시작하는 경쾌함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나는 이른 시간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응원을 보냈다. 그들의 분주함이 고단하지 않기를, 더 즐겁고 행복하기를, 무사하고 다 이뤄내기를 바랐다. 그러면 내 응원에 화답이라도 하듯, 자동차의 불빛이 치어리더의 손에서 흔들리는 수술처럼 반짝이며 내게 말을 건넸다.
“힘내자. 살아보자. 추운 겨울, 우리 얼어붙지 말자.”
하나 그렇지 않은 날도 있다. 줄이어 달리는 자동차의 불빛이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눈물처럼 뚝뚝 흘러내리는 것 같을 때. 개미들이 앞을 밝히는 불빛은 처량하기 그지없었고, 저들은 무슨 사연이 있기에 많은 사람이 여전히 잠들어 있는 새벽 일찍 나와 저렇게 내달리는 건지 궁금했다. 고단한 인생, 여유 없이 보내는 하루. 인생의 무게를 짊어져야 하는 운명이 참 가혹하기만 하다.
한때는 나도 저들처럼 새벽의 도로를 달린 적이 있었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나는 텅 빈 고속도로를 홀로 달렸고, 저들을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앞차의 꽁무니를 쫓아가고 있었다. 뭐가 더 감당하기 쉬운 고됨일까. 아무도 없는 도로를 홀로 달릴 때 찾아오는 외로움과 나와 같은 처지인 일개미들의 일상과 함께한다는 위안 중에.
사실 무엇이 더 슬프든 상관없다. 홀로 달리던 도로에서 느낀 외로움은 이제 기억 속의 감정일 뿐이고, 어떤 날엔 치어리더의 수술처럼 찬란히 반짝이던 불빛이 어떤 날엔 뚝뚝 흘러내리는 눈물처럼 보일 뿐이다. 단지 지금이 그럴 뿐이다.
다시 새벽 5시에 일어났다. 마음의 안정을 준다는 행복 주파수를 들으며 여전히 맞은편 도로를 크리스마스 트리의 전구처럼 반짝이는 차들의 불빛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그 불빛이 삶의 희망에서 삶의 고단함으로 보일 때, 새로운 하루의 시작에서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고 도는 인생처럼 느껴질 때 그제야 내 마음을 들여다본다.
사람들은 확증편향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내가 생각하는 대로, 그 생각을 뒷받침할 만한 증거들을 수집해서, 심지어 생각에 반하는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도적으로 무시해가며, 자신의 생각을 점점 확고하게, 그리고 크게 만들어 간다는 확증편향. 수많은 정보 중에 입맛에 맞는 정보들을 취사선택하며 생각하고 싶은 생각의 크기를 점점 키우다 보면, 어느덧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몸집을 키우길 선택받은 생각이 당연하고 확실한 생각이 되어 내 마음에 자리 잡는다.
확증편향의 결과, 나는 일상의 고단함을 정설로 세우고 이 추워지는 계절을 보내고 있다. 이런 날엔 일개미들이 만들어내는 불빛이, 수고로운 하루가 우울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 우울함을 언제까지고 이어갈 수는 없다. 그래서 노래를 재생시키고. 익숙한 반주에 익숙한 멜로디에 익숙한 목소리가 얹어진 노래가 흘러나온다.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 가면 그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가수 조용필 씨의 노래 ‘바람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되고, 나는 노래 가사처럼 바람의 노래를 듣지 못하고, 꽃이 지는 이유를 끝내 알지도 못한 채 살아가야만 했던 수많은 지난 밤들을 돌아본다.
직장인의 삶이든, 가정주부의 삶이든, 학생의 삶이든, 취업준비생의 삶이든, 프리랜서 작가의 삶이든, 우리는 저마다의 지향점을 따라 쫓아가고, 분주하기 짝이 없는 일상을 보내지 않았던가.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바라며 앞만 보고 내달리는 것일까. 소중한 지금 이 순간, 다시는 오지 않을 이 순간을 담보로 무엇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것일까.
때론 이 삶이 기쁨인지 슬픔인지, 축복인지 저주인지, 과정인지 끝인지도 모른 채 허둥지둥 달려왔던 그 시간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그 의미를 제대로 아는 날이란 과연 오기나 할까.
언젠가, 힘든 시간을 잘 버티다가 좋은 날 만나자는 말을 듣고 눈시울을 붉혔다. 이 말은 얼마나 애매모호 하던가. 그래서 더욱 서글퍼졌다. 좋은 날이 올까. 좋은 날이 오면 그가 올까. 좋은 날이 오더라도 내가 그에게 갈 수 있을까. 우리의 좋은 날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하는.
답을 알 수 없는 수많은 질문을 던져놓았지만 그럼에도 바랐다. 뚜렷하고 선명하게 삶의 수면 위로 떠오르길. 다만 나는, 눈이 내리고 입김이 점점 진해지는 이 계절에 얼어붙지 않길 바라고, 삶의 신호가 끊기지 않길 바란다. 우리의 안녕을 바란다.
줄이어 달리는 자동차의 이어지는 불빛 하나하나에 안녕을 이어 붙이며 그토록 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란,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부디, 안녕하세요!
나의 안녕을, 너의 안녕을, 우리의 안녕을 물으며,
안녕할 모든 것들의 안녕을 묻고 싶은 새벽이었다.
(이미지 제공: Jean Luc (Jarrick) from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