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건강 검진을 받았다. 십 년 만에 받은 건강 검진 결과, 용종이 있고, 염증도 있고. 그러나 당장은 괜찮으니 6개월 후에 다시 추적검사를 하라는 말에 안도했지만, 그 아래엔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문장이 쓰여 있었다.
약간의 우울증 소견 있음.
우울증이라고?
괜찮았는데, 잘살고 있었는데, 내가 우울하다는 것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았는데 우울증 소견이 있다는 말을 듣고 몸에 용종이 있다는 말보다 더한 걱정이 시작됐다. 한때 온갖 악몽을 꾸며 괴로웠던 시간이 마법처럼 끝나고 기쁨과 설렘이라는 걸 느끼며 살고 있었는데 나에게 우울증이 남아있었다니. 그게 아니면 새로운 우울증이 생긴 걸까.
그러고 보니 우울증인지 확인한다며 물었던 질문은 이대로 계속 두면 안 되겠다고, 조만간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인식했던 것들이었다.
요새 잘 자니, 의욕은 있니,
식욕은 있니, 즐거운 일이 있었니,
체중이 변했니, 피로하거나 활력이 떨어지지는 않니
하는 것들.
어떻게 매일 잘 자고, 매일 기분이 좋고, 매번 의욕이 넘칠 수 있겠는가. 고민으로 잠 못 이루는 때도 있고, 일이 하기 싫을 때도 있고, 걱정할 때도 있는 거지.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선 마음이 웅크려야 하는 시간도 필요한 법이라 생각했고, 그때가 딱 그런 시기였다. 잘 먹지 못하고, 불면에 시달리고, 걱정과 짜증이 늘어가는 때.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고, 연신 들려오는 안 좋은 소식에 화를 내고 있었고, 마치 떼인 돈을 받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사람처럼 고민이 쌓이고 쌓여 잠도 못 이루던 때. 그러나 그걸 알면서도 지금은 그럴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라며 이 시기를 잘 넘기면 괜찮아질 거라고 나를 다독였다.
다행히 지금은 그 시기를 무사히 넘기고, 안도와 고요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때와 달리 잠도 잘 자고, 잘 먹고, ‘잘’은 아니어도 글을 쓰며 다음 라운드도 준비하고.
그러고 나니 드는 의문. 만약 지금의 내가 그 문항들을 다시 체크하게 된다면 결과는 어찌 될까. 어쩌면 해당되지 않은 문항들이 늘어나서 약간의 우울증 증상이 있다는 문장은 사라질지도 모르지.
우울증이라는 게 스트레스를 받거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땐 해당되는 것이 서너 개쯤은 생기기 마련이고,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관대하게 혹은 인색하게 대답할 수도 있는 것이니, 부디 감정적으로 괴롭고 예전 같지 않다면 전문가의 상담을 꼭 받아보라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매번 그렇게 갈 수 없다면, 내 감정이 어떤지 알 수 있는 무언가를 해보면 어떨까.
그때의 나는 실수를 했다. 마음이 웅크려지는 때에도, 스트레스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했고, 오롯이 내 의지만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씩 해결하던 때에도 내 감정과 마음을 돌보며 위로했어야 했고, 그런 때에 지나치게 깊은 우울의 구덩이를 파지 않도록 해야 했는데, 내 감정을 돌보는 일에 게을러서 오랫동안 여러 가지 감정들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끌어안고 있었다.
지금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약간의 우울증이 있다는 말을 들으며 새롭게 다짐하는 것.
지금이 그런 시기라는 이유로 우울한 감정들을 끌고 가지 않기.
우울해서 생기는 여러 감정(불안, 초조, 걱정, 분노 같은)들을 계속 이어가지 않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정적인 행동(점점 예민해지거나 잠을 자지 못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하는 등) 관리하기.
이런 것들을 최대한 적나라하게 파악하기 위해 감정과 그 때문에 발생하는 생각과 행동을 명확히 인지하기 위해 내 감정을 꾸준히 기록하기로 했다.
질문 하나, 지금 내 감정은 어떤가.
질문 둘, 감정을 느끼는 원인은 무엇인가.
질문 셋, 감정으로 인해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
질문 넷, 그 생각으로 인해 나는 어떻게 행동했는가.
질문 다섯, 감정의 원인과 생각, 행동 사이에 비약이나 왜곡, 과장은 없는가.
질문 여섯, 더 좋은 개선점이 있다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게 좋을까.
질문 일곱, 같은 상황이 발생한다면 나에게 미리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이렇게 내 감정이 만들어내는 연쇄고리를 분해해보고 내 감정상태를 들여다 보는 거다. 나의 지금 감정을 알지 못하면 언제든 짙은 감정의 향기에 취해 해롱해롱할지 모르니까.
잠들기 전 하루에 딱 10분. 이 정도의 시간이라도 내어봐야지.
나의 감정 일기. 그것이 감정 해방일지가 되길 바라며. 감정 일기 스타트!
(이미지 제공: Pexels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