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마지막 주말 귀하게 화창한 날에 수도권 지자체의 동물교감치유문화제에 리딩독부스 3개를운영하는 학회 담당자로 참여했다. 지나시는 분들이 '리딩독 Reading Dog'이라는 알림 현수막을 보고 문의하였다. 개가책을 읽냐고...
어느 어르신 부부는
"개모차가 판치더니 이제 개한테 책까지 읽어줘?
하고 혀를 차셨다.
'오, 저런 저런!!'
그렇게 해석될 수 있음을 간과한 내 탓이다.
동물교감치유문화제 중 리딩독 프로그램 참가자는 미리 예약을 받았다. 참여견의 휴식시간이 일정 시간마다 배정될 수 있게. 예상치 못했던 예약팀의 노쇼(No show)가 식당이나 KTX 예약 건처럼 으레 이어졌다.
노쇼 확인과 대기자 시간배정을 위해 이미 전달받은 연락처로 전날 오후부터 일일이 전화로 확인했다. 다음날 시작시간 30분에 재확인까지. 낯선 환경에서 빠른 적응이 필요한 읽기 도우미견들의 안전한 휴식을 위해 쉬는 시간을 충분히넣어 시간표를 짜기 위해서였다.
오전에는 뻘쭘했지만 오후에는 언론사 취재팀과 시민들이 관심을 표하며 리딩독 시연 프로그램에 참여한 덕분에 오전 몫까지 한꺼번에 분주해졌다. 함께 진행했던 연구자들이 제자들과 레트리버를 데리고 나서서 호객(?)을 해준 덕분이기도 하다. 일단 행사는 잘 마무리된 듯하다.
☆*동물교감치유 전공자와 연구자를 위한 국내 최초 리딩독 관련 저서. 동문사(2023)
리딩독(Reading Dog: Children Reading to Dogs) 프로그램은 학교에서 또래와 잘 어울리지 못하거나 위축 또는 불안을 느끼는 아동, 학습부진이나 학교 부적응 아동 그리고 난독증이 있는 아동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1999년 미국 Utah주의 Intermpountain Therapy Animals(ITA)에 의해 세계최초로 개발되었다.
ITA의 '즐거운 책 읽기' 문해프로그램 R.E.A.D.(Reading Education Assistance Dogs) 개발을 시작으로 오늘날 영국, 호주, EU국가들, UAE,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전 세계의 동물교감치유기관들이 아동부터 치매어르신등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ITA R.E.A.D.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아 개설하고 평가인증된 기관의 자격증이 부여된 동물교감치유팀과 '반려동물(읽기 도우미견)에게 소리 내어 책 읽어주기' 프로그램을 성황리에 운영 중이다.
특히 부모 도움이 부족한 저소득가정 아동들과 이민가정 아동들이 공용어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더듬거리는 읽기에 대해 또래의 눈치를 보지 않아서 좋다. 특히 편견도, 지적도, 비난도 없는 충성스러운 개에게 소리 내어 책 읽어주기는 아동들의 행복한 학교생활 계기를 찾아준다.
(출처: ITA R.E.A.D. in U.S.A.)
(출처: SitStayRead in U.S.A.)
반려동물 특히 반려견은 정서 안정부터 자신감 향상, 외로움 감소, 사회성 향상, 자존감 향상, 신체 건강뿐만 아니라 읽기 능력 향상을 통한 독서습관 기르기에까지 역할이 적지 않다.
유네스코에서 2021년에 발간한 387쪽에 달하는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의 성인 비문해비율이 19%에 달한다, 2023년 국감에서는 국내에서 일상생활에 필요한 읽기, 쓰기, 셈하기가 불가능한 인구가 4.5%로 200만 명에 달한다고 보고되었다. 움츠려든 비문해인구가 된 어르신들이나 학교밖 청소년들을 위한 읽기를 비롯한 문해교육뿐만 아니라 학원수강에 필요한 심화교재에 몰두하느라 넓은 범위의 독서를 미루는 현실에서 학생들의 독해능력 또한 문제가 되고 있다.
다양한 책 읽기는 끝없이 쏟아지는 새로운 정보 습득을 위해서도 평생 필요하다. 띠라서 짬짬이 시간을 내어 독서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초등학교 저학년 시기에는 읽기의 즐거움을 경험하며 즐거운 독서를 생활화할 수 있도록 학교생활에서 지원해주어야 한다.
'독서습관 들이기를 위한 읽기 프로그램'인 리딩독 프로그램에서는 읽기 도우미견이 평소 책 읽기를 즐기지 않았거나 다소 부담을 느끼는 내담자를 위해 핸들러와 함께 참여한다. 도우미견은 보드라운 촉감의 모발과 총명한 눈빛 만으로도 내담자가 책을 읽어주고 싶게 만드는 중재자가 된다.
(출처: Story Dogs in Australia)
연구과제로 진행했던 리딩독 또는 동물교감치유 프로그램에 참가한 아이들은 개와의 눈 맞춤과 보드라운 털의 감촉 여운으로 우리가 떠나는 운동장까지 달려와서 배웅을 하기도 한다. 특수학교 아동들은 리딩독 수업이 있는 날에 프로그램 시작 전에 이미 예약된 병원일정을 바꾸어서라도 개와의 만남에 참여하려는 정성을 보여서 보호자를 난감하게 했었다.
그건 틀림없이 내담아동이 읽기 도우미견의 반짝이는 눈빛과의 교감 경험을 기억한 덕분이다. 프로그램이 끝난 후 건물밖으로 나오면 참여 도우미견들은 숨을 고르고 잠시 운동장 한가운데 잔디밭에서 달리기로 몸을 푼다. 그리고 고개를 반듯하게 들고 행진하듯 '트롯트롯' 걸어와 차에 오른다.
(출처: Pet Partners Read with Me & We are All Ears in U.S.A.)
동물을 매개로 한 교육이나 치유프로그램은 사람도 개도 '함께 행복한 시간 만들기'가 수업 목표다. 그림책을 소리 내어 읽으며 책 읽기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 향상은 숨겨진 1차 목표이다. 길게는 독서습관을 들여 아동의 정서안정과 불안치유, 그리고 이어지는 자존감 향상과 사회성 발달이 프로그램의 긴 호흡 목표이다. 책을 좋아하는 습관이 아동에게 스며들 수 있도록 반려견팀이 노력하고, 이를 토대로 보다 정교한 읽기, 듣기, 쓰기, 말하기의 문해교육은 학교 교육시스템의 전문가 몫이다.
도우미견과 핸들러가 다른 이들과 달리 평가나 비난의 입은 꼭 닫고 오직 귀만 열고 들어주며 따스한 눈빛으로 자기편을 들어주는데 아동들이 책을 왜 외면하겠는가? 개에게 교사 역할을 하며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는 재미에서 자신감까지 쌓아가는 일일진대.
따스하게 배려하는 성인 핸들러와 보드랍고 따스한 체온의 유순한 개로 구성된 읽기 도우미견팀이 옆에 앉아 위축되고 불안한 아동의 '편 들어주기'에 나선 일만큼 아동이 어깨를 으쓱하게 하는 일이 또 있을까? 아직 초기단계인 동물교감치유와 리딩독 프로그램의 국내 안착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