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핸드폰은 어머니가 잠깐 아파트 입구에 쓰레기 정리하러 내려가시거나, 동생과 병원 가실 때 집에 혼자 계시게 되는 아버지를 위한 연락 용도이다.
보통 때 우리는 청력이 조금 나은 어머니폰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물론 아버지폰으로 안부전화를 따로 드리기도 한다. 혹여 소외감이 크실까 봐.
상대 목소리를 확인하지 않고 두근거리는 가슴인 채 떠보았다.
"네, 아버지! 큰딸이에요."
일단 큰 소리로. 아버지가 한 번에 들으실 수 있게.
"큰딸인가? 잘 지내지? 여전히 바쁘고?"
아, 전화통화를 위해 보청기를 끼우셨나 보다. 목소리가 크시다.
"네. 잘 지내시지요?"
"그럼 그럼"
"식사하시는데 불편하실 텐데..."
내 목소리는 우리 집 천장에 가 닿을 만큼 크게 내야 한다.
아버지 큰사위인 내 옆지기가 모시고 서울에서 애써서 진행했던 임플란트를 거동이 편하지 않으신 구순의 아버지 뜻으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멈춘 상태다. 사실 본을 떠서 씌우기까지의 과정이 지난하니 그러실 만도 하다.
그래도 4주 후 점검 하고본을 떠서 씌우면 될 시점에 자식집에서 편하지 않으셨나 보다. 당신 주거지로 서둘러 내려가신 아버지는 긴 코로나 시기를 겪으시며 막판에 폐렴합병증으로 중환자실에 계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이별을 준비하라는 의사의 연락을 받고 급히 아버지의 평생 일기부터 소각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떠나신 후 요양원으로 가시게 될까 두려우셨다고 했다. 유순한 편인 둘째 딸 가족과의 합가를 제안하고 안방 외 방 셋을 제공하기 위해 당신의 역사가 담긴 책과 가구 등을트럭 2개 용량쯤버리셨다고 전해 들었다.그때는 나도 큰 딸의 병원동행과 미루고 미뤘던 논문에 24시간 코를 박고 살던 때이다.
"살아 돌아오니 내 필기구나 수첩 같은 소지품들이 모두 사라져서 나도 당황했었네. 엄마가 보기보다 독하데"
나중에 뵈었을 때 아버지는 당시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위기를 넘기고 퇴원하셔서 운 좋게 당신 집 안방에서 지내시게 되었으니 감사하다.
역시 거동이 편치 않지만, 조금 상태가 나은 노년 아내의 시중을 받으신다. 또, 그동안 앞집, 옆집을 유지하며 교직에서 나란히 은퇴하신 부모님께 가장 힘든 시기에 세 아이 육아도움을 적시에 받았던 둘째 딸 가족을 들여서 함께 사신다. 다섯 자식 중 부모님과 가장 소통이 편한 사이이다.방 4개 아파트에서 3대가 함께 거주를 시작했다.
어쨌든 치아치료 중 오래 방치된 채 멈춰서 아버지 잇몸의 변화가 있었다. '다시 임플란트를 하기 위해서는 조금 복잡하다'는 치과의사의 설명에 그냥 포기하셨다.
"내가 얼마나 더 살자고 그리 법석을 떨겠소?"
소화능력이 젊은 시절부터 좋은 편은 아니신 데다 치료차 발치상태에서 방치된 빈 곳은 잇몸을 사용하실 텐데... 나와 달리 누룽지 취향도 아니신데... '
마음뿐이다.
"힘드시지요?
죄송해요. 자주 뵙지도 못하고..."
"우리야 방에 가만있으니 추위나 더위도 모르고 지내네."
"네에. 다행이네요. 많이 더운 여름을 잘 견디어내신 셈이니..."
평소 아버지와의 전화내용은 이토록 단조롭다.
오늘은 나쁜 소식일까 봐 겁이 덜컥 난다.
"혹시 <때로는 개가 사람보다 낫다>는 책 읽어봤는가?"
'아,다행이다. 근데?? '
"아니요...? 가끔 강서방이 외출 후 현관문을 열면서 '수리'가 최고다.'그래요.
아무래도 개가 충성스럽죠. 뻣뻣한 저보다야 낫죠.'
"그렇제?"
"네, 현관 입구에서 '수리'는 종일 강서방을 기다리거든요.강서방이 현관문을 여는 순간부터 '수리'는 뛰고, 돌고, 꼬리를 흔들며 요란하게 반겨요."
*세대주의 귀가를 기다리는 수리는 작은 소리에도 현관입구로 달려간다.
"그럼 그럼. 어느 교수가 <때로는 개가 사람보다 낫다>라는 책을 썼더라고. 큰딸이 '개를 데리고 사람마음치료'를 연구한다니나도 관심 갖고 읽어보려고..."
"제가 주문해 드릴까요?"
"아니이, 혹시 큰 딸이 바빠서 못 읽었으면 소개해줄라고 전화했네. 둘째한테 말하면 사주네. 오늘 ** 신문에 났더라고."
공직 은퇴 시까지 개를 오래 키우시며 개 빗질과 새벽 산책을 담당하셨던 아버지이시다.잠수도 잘하시는 수영과 테니스로 건강유지를 하셨지만 이젠뇌출혈로 반신마비니거동이 불편하시다. 누운 상태로 책 읽기 외에는 만사를 귀찮아하시게 되었다.
"때로는 개가 사람보다 낫다"라는 책 제목이라니 예전 같으면 보수이신 아버지가 혀를 차실 제목인데... 늙은 큰딸이 하는 일에 관심이 생기시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