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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llara Nov 14. 2024

 때로는 개가 사람보다 낫다

구순 아버지의 전화

워드 작업 중인데 핸드폰 벨울린다. 

눈길을 주니 핸드폰 화면에 아버지의 전화번호가 뜬다.

올해 93세인 아버지는 독립적인 거동은 어려워 주로 누워계시지만 기억력은 아주 좋으시다.


"???"


아버지 핸드폰은 어머니가 잠깐 아파트 입구에 쓰레기 정리하러 내려가시거나,  동생과  병원 가실 때 집에 혼자 계시게 되는 아버지를 위한 연락 용도이다. 


보통 때 우리는  청력이 조금  나은  어머니폰으로 연락을 주고받는다.  물론 아버지폰으로 안부전화를 따로 드리기도 한다. 혹여 소외감이 크실까 봐.


상대 목소리를 확인하지 않고 두근거리는 가슴인 채 떠보았다.


"네, 아버지! 큰딸이에요."


일단 큰 소리로.  아버지가 한 번에 들으실 수 있게.


"큰딸인가? 잘 지내지? 여전히 바쁘고?"


아, 전화통화를 위해 보청기를 끼우셨나 보다. 목소리가 크시다.


"네. 잘 지내시지요?"

"그럼 그럼"

"식사하시는데 불편하실 텐데..."


내 목소리는 우리 집 천장에 가 닿을 만큼 크게 내야 한다.


아버지 큰사위인 내 옆지기모시고 서울에서 애써서 진행했던 임플란트를 거동이 편하지 않으신 구순의 아버지 뜻으로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하고 멈춘 상태다. 사실 본을 떠서 씌우기까지의 과정이 지난하니 그러실 만도 하다.


그래도 4주 후 점검 하고 본을 떠서 씌우면 될 시점에  자식집에서 편하지 않으셨나 보다.  당신 주거지로 서둘러 내려가신 아버지는 긴 코로나 시기를 겪으시며 막판에 폐렴합병증으로 중환자실에 계셨다.  


어머니는 아버지와의 이별을 준비하라는 의사의 연락을 받고  급히 아버지의 평생 일기부터 소각하셨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떠나신 후 요양원으로 가시게 될까 두려우셨다고 했다.  유순한 편인 둘째 딸 가족과의 합가를 제안하고  안방 외 방 셋을 제공하기 위해  당신의 역사가 긴 책과 가구 등을 트럭 2개 용량쯤 버리셨다고 전해 들었다. 그때는 나도 큰 딸의 병원동행과 미루고 미뤘던 논문에 24시간 코를 박고 살던 때이다.


"살아 돌아오니 내 필기구나 수첩 같은 소지품들이 모두 사라져서 나도 당황했었네.  엄마가 보기보다 독하데"


나중에 뵈었을 때 아버지는 당시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셨다. 위기를 넘기고 퇴원하셔서 운 좋게 당신 집 안방에서  지내시게 되었으니 감사하다.


역시 거동이 편치 않지만,  조금 상태가 나은 노년 아내의 시중을 받으신다.  또, 그동안 앞집, 옆집을 유지하며  교직에서 나란히 은퇴하신 부모님께  가장 힘든 시기에 세 아이 육아도움을 적시에 받았던 둘째 딸 가족을 들여서 함께 사신다.  다섯 자식 중 부모님과 가장 소통이 편한 사이이다. 방 4개  아파트에서 3대가 함께 거주를 시작했다.


어쨌든 치아치료 중 오래 방치된 채 멈춰서 아버지 잇몸의 변화가 있었다. '다시 임플란트를 하기 위해서는 조금 복잡하다'는 치과의사의 설명에 그냥 포기하셨다.


"내가 얼마나 더 살자고 그리 법석을 떨겠소?"


소화능력이 젊은 시절부터 좋은 편은 아니신 데다 치료차 발치상태에서 방치된 빈 곳은 잇몸을 사용하실 텐데...  나와 달리 누룽지 취향도 아니신데... '


마음뿐이다.


"힘드시지요?

죄송해요. 자주 뵙지도 못하고..."


"우리야 방에 가만있으니 추위나 더위도 모르고 지내네."

"네에. 다행이네요. 많이 더운 여름을 잘 견디어내신 셈이니..."


평소 아버지와의 전화내용은 이토록 단조롭다.


오늘은 나쁜 소식일까 봐 겁이 덜컥 난다.


"혹시 <때로는 개가 사람보다 낫다>는 책 읽어봤는가?"


'아, 다행이다. 근데?? '


"아니요...? 가끔 강서방이 외출 후 현관문을 열면서 '수리'가 최고다.' 그래요.

아무래도 개가 충성스럽죠. 뻣뻣한 저보다야 낫죠.'


"그렇제?"


"네, 현관 입구에서 '수리'는 종일 강서방을 기다리거든요. 강서방이 현관문을 여는 순간부터  '수리'는 뛰고, 돌고, 꼬리를 흔들며 요란하게 반겨요."


*세대주의 귀가를 기다리는 수리는 작은 소리에도 현관입구로 달려간다.

"그럼 그럼.  어느 교수가 <때로는 개가 사람보다 낫다>라는 책을 썼더라고.  큰딸이 '개를 데리고 사람마음치료' 연구한다니 나도 관심 갖고 읽어보려고..."


"제가 주문해 드릴까요?"

"아니이, 혹시 큰 딸이 바빠서 못 읽었으면 소개해줄라고 전화했네.  둘째한테 말하면 사주네. 오늘 ** 신문에 났더라고."


공직 은퇴 시까지 개를 오래 키우시며 개 빗질과 새벽 산책을 담당하셨던 아버지이시다. 잠수도 잘하시는 수영과 테니스로 건강유지를 하셨지만  이젠 뇌출혈로 반신마비니 거동이 불편하시다.  누운 상태로 책 읽기 외에는 만사를 귀찮아하시게 되었다.  


"때로는 개가 사람보다 낫다"라는 책 제목이라니 예전 같으면 보수이신 아버지가 혀를 차실 제목인데... 늙은 큰딸이 하는 일에 관심이 생기시나 보다.


'아버지, 그런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때로는 개가 사람보다 낫다고...'

까지는 말씀드리지 못했다.


우리 집에서도  '때로는 개가 사람보다 낫다.'

귀가하는 가족 구성원을 온 마음 다 바쳐 몸으로 반기는 '수리'를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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