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송년회는 난데없는 계엄령 발표로 집행부에서 긴급미팅 후 결국 취소되었습니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1월 2번째 주에 송년회 겸 신년회를 개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로 인해 예약자와 예약장소, 연회참가팀을 포함한 단체와 개인 등 여러 곳이 적지 않은 액수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습니다.
그래도 계엄령 발표 즉시 모여든 국민들과 국회의 빠른 대처가 국민에게 위로가 되었습니다. 특히 계엄을 겪은 적이 없는 수많은 젊은이들과 장기간 외출에 몸이 불편하기 시작할 나이 드신 분들의 솔선수범에 감탄하고 미안하고 감사하는 중입니다. 역사는 승자 편이라지만 이 혼란은 어떻게 기록될까요? 저희 모임은 200명이 넘는 구성원이니 정치적 성향이 다양합니다.
2024년 12월 29일 무안비행장에서 제주항공 여객기의 활주로 이탈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승객과 승무원 181명 중 179명이 사망했습니다. 용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구름 같던 새떼, 조종사의 판단, 콘크리트벽 등을 원인으로 꼽는 의견들이 난무합니다. 정부는 2025년 1월 4일까지 국가애도기간으로 지정하였습니다.
생각머리가 멈춘 상황에서 2025년 대학총장님 초청의 1월 3일 신년 하례회도 조용히 취소되었습니다. 대신 뉴스에 눈과 귀가 쏠렸습니다. 탑승객 명단이 여러 곳에서 전달되어 사뭇 긴장된 상태로 희생자들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반복되는 슬픈 화면으로 연이은 충격이 머리와 마음에 깊이 새겨져 다음 일에 대한 생각머리가 흐려집니다. 딸과 사위 방문을 위한 반찬준비로 올해 처음 갈비 재우기 등을 생략했습니다. 그냥 서성이다가 작은 딸의 당부대로 떡국만 준비해서 섣달그믐과 신년 초하루의 교대를 맞이했습니다. 사실 무안비행장 사고가 발생한 비슷한 시각에 인천공항에 작은 딸 가족과 사돈내외분이 태국에서 입국했습니다. 바쁘게 살아오신 두 분이 퇴직 후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4세 손주와 함께한 칠순기념여행이었습니다.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저만치 집을 두고 활주로 랜딩 순간 생사가 갈린 탑승객들 사고 소식으로 막막한 슬픔이 번지면서 글 한 줄을 정상적으로 교정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출판 예정 원고 교정을 멈추고 브런치 스토리에 '명복을 빕니다'를 올렸습니다.
제가 속한 모임에서는 2025년 1월 2일 오후 긴급회의가 소집되었습니다. 시청 합동 분향소와 무안공항 장례식장 조문이 의제였습니다. 밤늦게 집에 도착했으나 불면이 계속됩니다. 그리고 신년하례회 일정이었으나 취소된 2025년 1월 3일 금요일에 무안공항 장례식장 조문을 위해 고마운 가족들의 도움을 받으며 새벽 5시 10분에 집을 나섰습니다.
행여 일행들이 기다리지 않게 하려 서둘러 지하철을 탄게 너무 일찍 픽업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잠시 여유를 갖고 새벽의 바쁜 발걸음들을 보며 생각을 정리했습니다.
80이 넘으신 어르신을 포함하여 모두 6인이 아침 7시에 양재역을 출발하였습니다. 왕복 차량 이동이 무리가 되어 어르신 일행을 위해 상행선 KTX를 검색했으나 모두 매진으로 좌석을 찾는 일이 불가합니다. 다행히 6인 승객으로 고속도로 버스노선으로 운행할 수 있어 교통정체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무안 부근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었습니다. 무안공항으로 가는 길은 곡창지대가 펼쳐지는 남쪽행이라 바깥풍경이 예쁩니다. 가을걷이가 끝난 들판도 긴 휴식 중입니다. 하늘도 마치 아무 일도 없던 양 너무 평화롭습니다.
무안공항 가는 길의 들판과 하늘
무안공항으로 갔습니다. 공항입구부터 질서 정연하게 이곳저곳을 안내하고 필요한 물품 등을 제공하는 수많은 자원봉사팀들을 보며 감사를 느꼈습니다. 순간 예상치 못하게 제 심장이 제멋대로 출렁거리며 눈물샘이 작동합니다. 입을 앙다물고 힘을 주어도 소용없어서 손수건으로 눈 주변을 훔치며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일행을 공항입구에 내려주고 주차하느라 시간이 걸린 사무총장 덕분에 마음 진정할 시간이 생겼습니다. 함께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가 모자를 벗고 벽에 붙은 수많은 사진 앞에 흰 국화를 놓고 묵념을 했습니다. 조절 불가인 눈물이 또 줄줄 흐릅니다. 모두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자녀들, 형제자매들, 친구들, 동기들과 즐거웠을 탑승객들, 너무 젊은 이들과 아이들 사진을 보며 한숨이 저절로 나옵니다. 사실은 차마 사진을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바로 앞에 긴 생머리의 젊은이와 아이 사진이 있어서 순간 눈을 감았습니다. 눈을 다시 떠도 이미 눈물이 채워진 눈은 지독한 원시 시력처럼 눈앞이 흐려서 사진을 볼 수 없습니다.
밖으로 나와 찬바람을 쐬니 날뛰던 심장이 다소 진정됩니다. 오늘 제 심장은 조절불가입니다. 처음 겪는 일입니다. 호주에서 80세 어르신의 심장발작으로 인해 맞은편에서 80km 속도로 제 차로 돌진하여 발생한 교통사고로 차가 폐차되고, 부모님의 생사가 흔들렸을 때 목에 보조대를 한 채 뒷수습을 하면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그때는 40대의 사고수습 책임자로 더 강해야 했습니다. 어쩌면 오늘 슬픔을 조절하는 신체기관의 조절 불가는 나이 탓일 겁니다. 잠깐 어지럽던 차에 가까운 곳의 자원봉사팀이 박카스와 커피를 권하여 저는 박카스를 선택했습니다. 퇴직 후 박카스를 음료로 고른 일은 처음입니다.
1월 3일 금요일인 오늘은 평일이라 자원봉사팀이 방문객보다 훨씬 많아 보입니다. 속옷부터 세수수건, 세면도구세트, 식사, 간식, 음료 등 마치 K마트 매대가 총동원된 듯합니다. 약국도 있습니다. 심리상담소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공항 화장실엔 치약이 놓여있습니다. 희생자 가족들과 관계자들에게 도움이 뒬 수 있게 수많은 노력들이 담겨있었습니다.
'사진촬영금지' 표지가 1층부터 3층까지 여기저기 붙어있습니다. 일반인들은 사진을 찍지 않지만, 뉴스를 제작해야 하는 방송국들은 계속해서 카메라를 세우고 현장을 촬영하고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분들이 외롭지 않게 마음 쓰는 공항장례식장의 모습들이 따스했습니다. 희생자 유가족의 충격과 슬픔을 위로하기에는 어림도 없지만 전국에서 모여 질서 정연하게 진행되는 자원봉사팀의 따스함 덕분에 전국에서 달려온 방문객들의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졌습니다. 여기저기 마련된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방문객들은 음료수를 마시며 마음을 다독이는 모습들입니다.
저희는 다시 3층으로 이동했습니다. 저희 일행 중 항공계 전직 임원분이 수습 현장 관계자분들을 잠깐 만나는 동안 저는 주변을 돌아보았습니다. 서울에서 내려왔다고 먹거리를 챙겨주셔서 비스킷을 품에 받으며 민망했습니다. 선배님이 비닐봉지를 구해와서 담았습니다만 문을 나서는 제 품에는 6인분 음료와 비스킷이 안겨서 마치 장례식장에 들러 먹거리를 얻은 기분이었습니다.
'식사를 하고 올라가시라'는 안내 자원 봉사원에게 감사를 표하고 나왔습니다. 저희는 폐가 되지 않게 당연히 미리 근방에서 식사 후 참배했습니다. 정말 많은 자원봉사자들과 해당 공무원들 그리고 높이 쌓인 물품들을 보며 '원칙을 지키지 않음으로 인해 발생되는 비용'이 얼마나 큰 지 상상도 어려웠습니다.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주인을 잃은 반려견 푸딩이의 5일 서울시청 합동 분향소 방문 모습 (출처: 한국일보 2025-01-06/ 서울신문 2025-01-05)
돌아오는 길은 조금씩 막혔습니다. 오후 4시 즈음부터 눈발이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안전하게 천천히 오기로 결정했지요. 왕복 운전을 맡아 어제부터 과로 중인 사무총장의 졸음방지를 위해 품에 담고 온 비스킷 세트(비스켓과 토마토소스)로 군것질 서비스를 할 수 있었습니다. 슬픔이 가득한데 간식을 먹을 수 있음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서울 우리집 냉장고에서 털어간 제주감귤을 나누고, 졸지 않게 선배님들은 왕년 직장에서 배운 짧은 유머를 띄워 팀원들의 긴장을 풀어주었습니다.
어둠과 함께 낮아지는 바깥 기온과 흩날리는 눈발로 앞 유리창에 성애가 낍니다. 당연히 도로도 살얼음이 얼어 미끄럽습니다. 대부분의 차들이 평소보다 더 안전운행 중인데, 일부 차량들은 살짝 얼어 미끄러운 도로를 여전히 잘 달려갑니다. 운전 솜씨들이 참 좋습니다. 저는 '제한속도 철저 지킴이'라 언제나 소심한 운전자입니다.
숨 막히게 어려운 시간이지만 돌아보면 대한민국은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는 국민의 저력이 있습니다. 희망을 애써 다독입니다. 1988년~, 1997년~, 2005년~ 이렇게 일정기간 제가 해외에서 겪은 한국 위상의 변화는 눈물 날 정도였습니다.
2024년 내내 우리들의 일상인 노래와 춤, 의상, 먹거리들, 전자제품, 화장품, 자동차의 매력이 "히트다 히트"라고 해외에서 낭보로 날아와서 으쓱했습니다. 스웨덴에서 실시간 방송된 노밸문학상 시상행사를 서울에서 시청하며 특히 '한국인'임이 행복한 해였습니다. 행복했던 2024년의 마지막을 충격과 슬픔으로 마무리하게 되어 유감입니다.
다시 희생자들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깊은 위로를 전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노력을 제공한 공무원분들과 자원봉사자들 그리고 관계자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여전히 슬프고 먹먹하지만 오늘 목격한 자원봉사시스템과 참가자들의 정성에 마음 한쪽은 두근두근 감격 중입니다.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 30분입니다. 잘 다녀올 수 있게 인도해 주신 신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이제 서서히 제자리에서 각자 맡은 일을 하며 동력을 키워야겠지요. 저도 이젠 원고를 꺼내 읽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