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기를 좋아하는 남자의 손맛
하루 중 두 끼 식사 메뉴를 자주 도맡는 은퇴자 옆지기는 어느덧 '나 홀로 장보기'를 좋아하게 된 듯하다.
시드니에서 어린 두 딸과 토요일 쇼핑을 할 때면 회사원이자 운전 담당인 이 남자는 백화점 입구 밖의 소파까지만 왔다. 젊은 시절 그 남자는 혼자 회사일을 다하는 척 피곤에 절어 있곤 했었다. 쇼핑에 한 걸음도 더 걸을 의향이 없음을 온몸으로 내보이며 그 남자는 그곳에서 어린 두 딸과 동행인 아내가 바람처럼 장보기를 마치고 오기를 기다렸다.
옆지기와의 쇼핑은 늘 초조하고 나로 하여금 전전긍긍하게 만들어서 마음속으로는
'다시는 같이 오지 않아야지, 흥'
했었다.
삼십여 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장보기를 준비하면 금세 차 키를 들고 따라나선다. 그이가 운전을 하면 나 혼자 종종 대는 것보다 주차장 왕복 시간을 아낄 수 있다.
그 대신 딸이나 아내가 새로운 상품을 기웃대면 재촉을 하니 불편하다. 그래서 대학원 박사과정 때부터 조금씩 넘긴게 이젠 장보기는 그이의 임무가 되었다.
그이 혼자 가면 다양한 치즈와 군것질거리도 구경하는 듯하다. 오래 머물다 온다. 덕분에 쇼핑목록의 치즈가 다양해졌다.
둘레길도 부담되게 허리가 아픈 사람이지만, 많은 걸음을 걸을 수 있다는 징표니 그 남자의 장시간 장보기가 고맙다. 집에서 걷기 운동은 안 해도, 쇼핑센터는 걸어야 하니 그이에게 운동이 될 터이다.
쇼핑센터에서 몇 가지 재료 구입에 그렇게 오래 머물 곳이 있는지, 자동차에서 혼자 책을 보다 오는지는 미지수이다.
그이는 '자동차 운전석이 가장 쾌적한 의자'라고 말하곤 한다. 좋은 계절엔 그곳에 앉아 이동식 독서램프를 켜고 책 읽기를 즐긴다.
큰애가 건강이 느리게 회복되는 사이에 십 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나는 60 후반을 향하고 그이는 70 문턱을 넘었다. 이 남자는 변신을 거듭해서 늦은 밤 마트 방문도 마다하지 않는다.
몇 차례의 마트 주차장에서 발생한 사건 들을 뉴스에서 접한 뒤 두 여자의 늦은 밤 장보기는 멈췄다.
그 남자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 마트와 동네 과일가게. 예전보다는 확장규모의 지역 슈퍼마켓을 드나들며 가격과 신선도를 비교하는 경지까지 이르렀다. 심지어 노브랜드 매장도 다녀오나 보다.
그이는 그곳이 바나나 가격이 가장 저렴하다고 했다. 짐작하건대 미끼상품에 이끌려서 다른 불필요한 간식들도 따라오는 듯하다. 덕분에 나도 예상치 못한 군것질을 하게 된다.
사실 소화 기능이 떨어져서 밀가루가 원료인 칩스나 비스킷 류의 군것질을 하면 즉시 속이 더부룩해지지만, 혀와 코끝은 여전히 비스킷 끝에 커피를 살짝 적신 향기를 선호한다.
"할인품도 좋지만 신선도 확인이 훠얼씬 중요해요. 조금씩 먹는 여자들에게 1+1 야채 구입은 정말 아니에요."
두어 번 강조했지만 조그만 양상추가 2개 들어있는 걸 사 온다. 팽이버섯도 3개 묶음을. 결국 하나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잊고 방치했다가 시들어서 폐기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나는 '아이고!'이다.
충분한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서야 옆지기도 이젠 신선도를 우선하여 쇼핑을 하니 다행이다. 돌아보니 부엌 관련해선 40여 년 동안 나는 독재자였다. 주부인 나는 여전히 부엌 권리는 '내 것'으로 여기나 보다.
가족에게 자주 "뭘 먹고 싶어?" 묻고 음식을 준비하는 편이었지만, 대체로 내가 메뉴를 선정하고, 내 방식으로 음식을 만들고, 식기를 구입하고, 식탁을 세팅하고, 설거지를 하고 건조 후 정돈했다.
2015년 시작된 큰 딸의 기한 없는 병 구완으로 24시간 딸과 동행하게 된 아내 대신 그이가 부엌일을 거들기 시작했다. 시작은 거들기로. 60대 초반의 옆지기는 호기심으로 배울 나이도 아니니 몹시 고단 했을 것이다.
거기에 심리치료사의 권유대로 갈수록 나빠지는 병증에 대한 두 여자의 우울과 불안을 줄이고자 동물교감치유 전공 대학원에 두 여자가 동반 등록했다. 물론 현장답사 후 그 남자의 지지를 등에 업고.
노년에 대학원 학비와 KTX 2인 왕복 교통비 지출이 컸다. 2018년 등록 당시엔 60세 미만이니 경로 할인도 없었다. 응급병동 입원이나 외래 방문 외엔 컴퓨터 앞에 오래 앉아 가족 휴가도 없었다.
월화수목금금금이고, 퇴근도 없이 으레 자정 넘어까지 과제를 하고 예습을 했다. 학교 가기 전날은 밤샘 과제가 일상이었다. 앉은 채 과로로 '미라' 될 뻔했다. 오랜만에 배낭을 메고 고속열차를 타는, 그 공부가 재미있었다.
처음엔 응원했던 옆지기도 공부기간이 길어지니 자신의 입술을 때렸을지도 모르겠다. 오래 누워있던 큰딸의 종아리 근육 회복을 위해 아침이면 함께 돌던 30분짜리 둘레길 산책까지도 멈추게 되었다.
늘 함께하던 아내가 큰딸과 한편이 되는 동안, 혼자서는 운동을 안 하는 그이의 종아리 근육이 홀쭉해졌다. 부디 식품 마트에서의 그 남자 발걸음 수가 그의 종아리 근육을 지켜주길 기대한다.
그이는 아내와 큰딸이 학교 가는 날마다 새벽 5시 30분에 집을 나서는 두 여자를 위해 영양 도시락을 세끼 분량으로 2세트를 만들었다. 과일 후식에 작은 음료병까지...
우린 학교에서 종일 강의를 듣고 밤 7시 50분쯤 출발하는 기차를 위해 택시로 ktx역으로 갔다. 그리고 1시간 10~20여 분 후 서울역 또는 용산역이나 수서역에 도착한다. 지하철을 타고, 마을버스를 타고, 집 현관 앞에 서면 으레 신데렐라의 시간인 자정 전후였다.
자주 집 가까이 지하철역 앞 도로엔 그이의 차가 깜박 이를 켠 채 지친 두 여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노년에 재미대신 헌신을 선택한 남자이다.
퇴직 후 넉넉해진 시간을 가족의 식사메뉴 정하기에 쏟은 시간이 벌써 10년 여가 되었으니 옆지기는 이제 반 전문가이다. 그이의 어머님표 손만두와 등갈비찜은 최고이다.
매일 딸과 아내에게 무엇이 먹고 싶은 지를 묻고 시장을 다녀와서 음식을 준비하는 센스는 가히 '우렁각시' 급이다. 무엇보다도 늦은 밤에 부엌을 말끔하게 정리하고, 그릇을 모두 싱크대 서랍장에 넣어주니 부엌이 늘 정갈하다. 나와 딸은 불가능한 단순노동 서비스이다.
더구나 손맛이 뛰어나셨던 시어머님의 음식센스를 내려받은 듯 몇 가지의 재료만으로도 맛을 잘 낸다. 그이는 내가 말려둔 양파껍질과 파, 멸치, 다시마, 파뿌리, 마늘을 넣어 야채육수를 낸다. 국물맛을 잘 내었다. 유튜브 레시피 덕분이다. 맛이 비린 생선이나 닭
ㅣ등 재료는 소주나 뜨물에 담가 딸의 매스꺼움을 줄여주었다.
어느 날 싱크대 상부장에서 조미료 봉투를 발견한 내 눈이 동그래졌나 보다. 남편의 특별한 김치찌개는 "오, 그곳에 비법이" 있었다.
이 남자 왈
"내가 아무래도 당신보다는 맛을 못 만들어서 찌게에만 아주 조금 넣었어, 그러면 식당 맛이 나더라고."
"아니 아니, 나도 가끔은 맛이 밍밍할 때 조미료가 있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당신은 참 센스쟁이네."
와, 어디서 이런 적응력이 나오는지 스스로도 놀랬다. 내 마음속에선
"난 평생 한 번도 조미료 안쳤는데... 맛없었어?"
였는데, 내 입술은 남편을 ''센스쟁이''라고 추켜세우고 있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내 입술은 요즘 통제를 벗어났다. 특히 남편과의 대화에서 마음과 달리 격려하거나 칭찬으로 힘나게 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건 신의 개입이 틀림없다. 이제 돌아보니 과거에 성장기의 어린 두 딸과 남편에게는 1980년대 교실 환경미화 심사 중인 교사처럼 굴었었다. 세월에 성격 모서리가 닳아져서 지금은 절제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디란 두 눈은 여전히 정확히 보고 있으니 지적질 횟수만 줄었을 게다. 아, 표현방법이 조금 둥글어졌을 수도 있겠다. 그러니 속마음과 달리 나오는 요즘의 보드라운 표현은 아슬아슬하고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내가 점점 돋보기에 의존하는 시력에 슬퍼하고, 능력에 좌절하여 하소연하면, 옆지기는
"당신만큼 해내는 사람이 또 있을까?"
"당신이니까 이만큼 하는 거지."
라고 소리 내어 격려해 준다.
어림도 없다. '당신이니까'가 아니라 나는 매일 동료들과 지인들,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익히는 중이다. 얼마 전에는 지인과 도서관 파트너로부터 망고 **과 **캔버스 프로그램을 소개받았다. PPT 만들기에 유용하다.
내 입술 끝이 그이에게 이렇게 부드럽게 변하다니... 버럭 범수였던 남편도. 나이가 드니 서로의 소중함을 실감하는 까닭일 게다. 아마도 옆지기의 마음속에선 나처럼 다른 생각의 문장이 준비되어 있을 텐데,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변신해서 나오는 요정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만난 5살 손주도 '장난감 치워야겠는데?" 하면 그 조그만 손으로 내 입을 더 이상 잔소리 못하게 막는다. 그리고 눈을 반짝거리며 이모를 향해 말한다.
"이모가~ (치워주세요.)"
아주 오랜만에 짬을 내어 보러 갔으니 칭찬만 준비했었다. 작은 딸이 '정리정돈은 아이가 하도록 요즘 훈련 중'이라며 일관성 있게 지켜달라고 해서 흉내 내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어린아이가 아닌, 나이 60, 70에도 '격려'와 '칭찬'은 두 발이 저절로 우쭐 우쭐 스텝을 밟게 한다.
그걸 아는데도 아내와 남편이 함께 부엌에 서면 소소한 불협화음은 자연음이다. 해서 될수록 부엌은 1인 체재로 가는 편이다.
나와 딸은 '그릇은 자연 건조를 하고, 야채는 초벌 씻은 후, 식초와 소금에 담갔다 잘 헹구자'이다. 음식도 옥수수수염차도 결명자차도 '조금씩 자주 신선하게'를 좋아한다. 옆지기는 시어머니의 음식 솜씨를 자주 재현해서 나를 놀라게 하면서도, 야채 씻기는 좀 슬렁슬렁하는 듯하다.
큰 애 신장 문제 때문에도 야채는 특히 잘 씻어줘야 하는데 조금 좋아지니 각오가 헐거워졌다. 이 남자가 씻은 깻잎이 식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다.
'가지런히 줄 세워 씻었다고' 그이가 자리를 비울 때 나는 한 장씩 따로 씻어서 충분히 헹궈놓는다. 그것도 못하는 날엔 할 수 없다. 믿고 잘 먹는다.
그이는 옥수수차도 이틀 동안 마실 양을 한 번에 준비해서 냉장고에 보관을 한다. 나는 속으로 입이 나온다. 나는 사계절 뜨거운 차가 좋고, 그이는 냉장고의 차가운 차를 사계절 좋아한다.
그이는 내게 보온병에 담은 따뜻한 차를 가져다주지만, 한꺼번에 많이 끓여 냉장고에 넣어둘 정도의 양이면 차 향이 떨어진다. 도움받는 형편에 나는 염치없이 기대가 높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감사하다. 노년에 이런 멋진 우렁각시가 옆에 나타날 줄 상상도 못 했는데... 조금씩 부엌일을 미루는 동안 야채를 다듬어주는 보조였던 그이가 부엌을 점점 더 넓게 차지하게 되었으니.
어젯밤 원고 내용이 중복된 곳을 발견했다. 컴퓨터 덕분에 생기는 '복붙' 파트는 내용의 중복 가능성이 있으니 꼼꼼하게 잘 봐야 한다.
물론 마무리는 '쳇 GPT'에 맡기면 금방 말끔하게 정리될 일이지만, 일단 머리를 식히는 게 필요했다. 쳇 GPT가 자료를 중복해서 주는 부분도 있으니.
부엌에 가니 설거지가 끝난 반찬 그릇이 윤기를 잃은 채이다. 커다란 냄비에 베이킹 소다를 두 스푼 넣고, 물을 부어 끓인 후 설거지가 끝난 그릇들을 넣어 열탕 소독을 해주었다. 30여 년을 사용하는 식기인데도 금세 반짝거린다. 눈도 마음도 덩달아 맑아진 듯하다.
이 마법은 작은 딸에게서 배웠다. 아이 돌봄을 맡아주시는 분이 취업에 필요한 다양한 자격증을 따면서 습득한 지식이라고 했다. 식기와 수저세트를 베이킹소다를 넣어 끓는 물에 소독하고, 식탁 위 전등 주변 크리스털 구슬들을 알코올로 닦아내는 가벼운 노동을 하면 수저 세트도 구슬들도 금세 반짝거린다. 덕분에 마음도 정갈해진다.
가벼운 노동은 마음 정화 효과가 있나 보다. 오늘도 무사하니 '감사하기'이다. 부엌 싱크대 상부장에 맛의 비법이 놓여있듯 삶의 비법도 그곳에 놓여서 오늘도 내일도 무탈하길 기도한다.
도자기 그릇들은 오래 써도 참 한결같아서 좋다. (출처: 쿠팡 '웨지우드 코노코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