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글쓰기가 준 선물
다시 펜을
예고 없이 한낮의 독감처럼 찾아온 큰딸의 암 발병과 긴 투병 시간은 제게 기나긴 시간의 인내심을 요구했습니다.
가장 작은 암 제거와 함께 발생한 의료사고로 수술 후 예후는 집도의의 설명과는 반대로 향했습니다.
아무리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의료 소송이지만, 변호사에게 의뢰하고서야 꽉 막혀있던 숨이 쉬어졌습니다. 사고 발생후 3년 이내에 시작해야하는 소송 기한에서 겨우 4주를 남겨둔 시점에 어렵게 결정했습니다.
혼자서는 이미 일상이 어렵게 된 딸과 보호자인 엄마는 심리치료사의 권유로 대학원 박사과정 동반 진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단함에서 시선을 돌리기 위한 시도였고, 내려놓았던 펜을 다시 들어야 했습니다.
오랜 공백 끝에 새삼스레 시작한 글쓰기는 잡초 가득한 뜨락 같아서 부드러운 글밭 연습이 절실했습니다. 그때 카카오의 브런치 안내 문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따뜻한 글밭 브런치에서
블로그처럼 광고가 붙지도 않고, 불필요한 치근덕거림도 없는 오롯한 글의 공간 브런치에 곧 빠져들었습니다.
운 좋게 첫 원고 제출로 합격 소식을 받으며, 브런치 들판에 글을 올릴 수 있는 '합법적인(?) 작가 자격'이 제게 주어졌습니다.
너무 깊지 않은 우울이나 가벼운 불안 증세는 글쓰기를 통해 조심스레 돌아보면, 스스로 치유하는 힘이 생깁니다.
또한 다른 작가들의 글을 읽으며, 삶에서 배움이 생기고 위로를 얻고, 댓글과 응원을 통해 공감과 소통이 더해집니다.
덕분에 저도 주 1회 글쓰기를 습관처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어느새 브런치 글방에 200여 편이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작은 책 몇 권은 족히 엮어낼 수 있는 분량에 저의 지나온 시간들이 알곡처럼 담겨 있습니다.
남반구 거주 시절의 기억을
30여 년 전의 해외생활을 꺼내어 엮은 <그립고 그리운 남반구의 시간들> <소풍 가는 날의 샌드슈즈>는 새로운 문화 속에서 두 어린아이와 천방지축 실수하며 적응해 낸 가족의 성장기가 담겨있습니다.
브런치에 이 글을 올리는 동안 그 시간들에 대한 그리움이 새삼 움텄습니다. 오래 묻어두었던 타국에서의 외로움과 긴장했던 생활들을 꺼내어 보며, 그 시절의 행복을 다시 읽을 수 있었습니다. 브런치 덕분에 저는 '해리포터'처럼 시간여행을 한 셈입니다.
가족과 함께
결혼 후 강고집인 남편과 지적질로 고치려 했던 저의 노년에 찾아온 변화를 그린 <우렁각시> <역대급 오지라퍼> <프란츠와 딱따구리가 큰일 날 뻔했네>를 쓰며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서 결혼생활은 상대를 바꾸려는 수고 대신, 서로 기둥이 되어주며 '감사하고 살아가는 삶'임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구순을 앞두신 친정엄마와의 소통을 위해 주 1회 핸드폰을 켜두고 함께 연주한 <엄마와 함께 하모니카를> 글쓰기는 하모니카 합창을 오래 지속하도록 해주었습니다.
또한 가족 구성원인 반려견 '랄프'를 겨우 9살에 방광암으로 떠나보낸 뒤 정리한 <랄프야, 안녕〉은 펫로스의 슬픔을 줄여주었습니다.
의견도 내고
<광복절 아침에 태극기를>에서는 요즘 소홀해진 '국경일에 국기 달기'를 권하며, 국민의 의무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공감해 주신 작가님들의 댓글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학문의 길로
브런치글쓰기 덕분에 여러분들의 지지를 받아 모녀가 기적처럼 박사학위를 마쳤습니다. '리딩독' 대학교재를 출판했으며, 저희 연구분야는 더 나아가 '동물복지법 연구'로 확장되었습니다.
리딩독 프로그램은 다문화 또는 이주민 가정의 아이들이나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만들어진 긍정적 강화프로그램입니다. 이민자 유입으로 인구감소 문제를 해결하는 미국, 영국, EU, 호주 등에서는 학부모, 교사 그리고 아이들의 환호를 받으며 실행되고 있는 문해프로그램입니다.
오늘날 이민자 유입 인구가 늘고, 반려동물 양육 인구가 1,500만 명에 달하는 한국의 가정에 <반려견에게 책을 읽어주면>을 통해 누구나 즐겁게 실천할 수 있는 '반려견과 즐겁게 책 읽기'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싶었습니다.
또, 강의 교재를 바탕으로 풀어낸 <인간은 언제부터 동물과 친했을까>는 '반려동물, 가축의 정착과 투구게의 실험' 이야기를 통해 인간, 동물, 그리고 자연의 건강과 안녕이 결국 하나(One Health, One Wealth) 임을 소개하며 '생명의 소중함'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도 1970년대에 영국과 EU에서 시작되어 이제는 전 세계가 함께 'One Health' 실천을 위해 힘쓰고 있는 '동물의 생존을 위한 5가지 자유'를 브런치 작가님들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큰 보람이었습니다.
브런치 덕분에 제안을 받고
주 1회 글쓰기를 이어가던 중, 뜻밖에 출판사의 제안이 찾아왔습니다. 그 덕분에 아직은 국내에서 생소한 '리딩독(Reading to a Dog) 프로그램'을 유튜브에서 소개할 기회가 생겨서 난생처음 방송 출연료를 받았습니다.
또한 대학교재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 <동물복지와 국내외 법규>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 또한 브런치와의 인연이 제게 보내준 용기 덕분입니다.
여전히 마음 한편에 슬픔과 원망이 자리하여 미완성인 〈제게 그 암을 주세요!〉는 너무 멀지 않은 날에 평온한 마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마음치유의 글밭에서
돌아보면, 글쓰기는 마음 치유 과정이었습니다. 브런치는 자주 밤물결 속의 달처럼 흔들리는 저를 늘 변함없이 따뜻하게 응원합니다.
덕분에 마음속 깊이 눌러둔 우울이 서서히 치유되는 중입니다. 글을 통해 다시 살아내고,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된 이 보람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자산입니다.
작가들이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브런치라는 따스한 글밭을 일구어준 카카오의 정성에 마음 깊이 감사를 전하며, 브런치 1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윤혜경
사람·동물·자연이 함께 어울리는 세상을 꿈꾸며 글을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