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것도 아닌 것만 생각하자.

by 노석

관리사무소의 새벽은 아주 조용하다. 저 멀리 지나가는 차들의 소리, 문 밖을 나가면 눈 앞을 막고 있는 뿌연 안개, 오로지 고요함, 숨소리 하나 안 나는 그 고요함뿐이다. 그 속에 있으면 과거의 내가 보이고, 그가 나에게 말을 한다. 고요함 속에 있으면 말이다.


고요함 속에 눈을 감는다. 그러면 난 다시 그곳에 가 있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고요한 교실, 밖에서 들리는 아이들의 소리, 지나가는 차들의 소리 들만이 멀리서 들려온다. 눈을 떠서 주위를 둘러본다. 옆에 윗도리는 공고를 상징하는 회색 교복 겉옷을 입고, 검정색 교복 바지를 입은 그들이 앉아있다. 여전히 과거 속에서도 이들은


서로 소리 지르고 눈을 뒤집어 까며 침을 튀기며 말하고 있다.


“그게 핵심이 아니라고! 병신아!”


왼쪽에서


“넌 눈이 어디로 박혔냐, 이건 완전 진짜라고 이 덜떨어진 새끼야!”


오른쪽에서


서로 쌍욕을 퍼붓는 이들


우리는 수업이 끝난 공고의 빈 교실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었다. 내가 책상을 두 개를 붙인 채 가운데 앉아있었고, 왼쪽에는 전자과 칠뜩이가, 오른쪽에는 화공과의 에로 본좌가 대화하고 있다.


사건의 발단은 전자과 칠뜩이로부터 시작됐다. 갑자기 뜬금없이 자신은 이제부터 문학의 인생을 살겠다며 교실에 들어오며 선언을 하더니 이게 바로 문학이라며 책상 위에 멋있게 던진 책, ‘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공장을 다니며 기판에 납땜이나 하는 인생 벗어 나려면 문학이 아니라 자격증이라고 핀잔을 주던 화공과 에론 본좌는 그가 던진 책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 정작 자기는 집에서 야동이나 모으고 있으면서 말이다. 하지만 칠뜩이가 여기 ‘끝.내.주.는’ 부분도 있어 란 말에 혹해 이 책의 펼친 것이 전쟁의 서막이었다.


‘끝내주는’ 부분을 본 에로 본좌는 하루키에게 홀딱 반해 버렸다. 몇 번을 다시 읽고, 그 부분만 찾아 읽던 그는 이것은 문학이 아니라 야설(야한 소설의 줄임말)의 지존이며, 이것이야말로 내가 찾던 ‘신의 야설’이라며 급 흥분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자기가 보여준 문학의 정점에 있는 책이 졸지에 ‘신의 야설’로 둔갑하는 사태에 칠뜩이는 너무 놀라 흥분해 말도 더듬거리며 그에게 대들기 시작한 것이 이 모든 논쟁의 출발이었다.


“야이, 병.. 병.. 병신아! 이건 그 따위 수준 낮은 저질 문학이 아니라고! 제대로 읽어!”


침까지 흘리며 말하는 칠뜩이.


“이건 문학이 아니야! 이건 진짜야! 완전 꼴려!”


이미 눈은 빗나가 있는 에로 본좌.


두 사람은 접점을 찾지 못하고 계속 평행선을 달리고 있었다.


그러다 칠뜩이는 나를 쳐다보고 이렇게 물었다.


“루쉰P, 누가 맞냐?”


지겨운 대화에 창밖을 보고 있던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문제는 마르크스야.”


둘은 동시에 나에게


“야, 이 등신아!”


난 그 때 IMF라는 초유의 시대 흐름 속에서 이건 뭔일인가? 하고 넋 빠져 있었다. 98년 말 우리가 학교의 정책이란 것에 의해 3학년 2학기 때는 무조건 수업 일수를 채우기 위한 취업을 해야 했고, 취업을 받아 줄 회사도 없었고, 공장도 없었다. 학교에서는 나가라 하는데 받아 줄 곳은 없었다. 그렇다고 학교에 있는 것은 수업 일수 때문에 용납되지 않았다.


무조건 나가라. 일을 하라. 자리가 없는데 어디 가서든 일하라. 근데 받아 줄 회사는 없다.


그런 기묘한 세계의 한 복판에 나 그리고 우리는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시간이나 때우러 다니던 헌책방에서 가와카미 하지메의 ‘빈곤론’의 책을 접한 후 헌책방 카운터에 음침하게 앉아 있는 젊은 지식인 형에게 감화받아 나는 마르크스가 이런 문제의 해결점이자 출발점이며, 결국 무지가 우리를 이렇게 지옥 속으로 밀어 붙인다고 판단하고 있었다.


그 속에서 우연찮게 얻은 마르크스에 대한 지식의 쪼가리로 계급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모든 것은 다 자본가들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존재들에 대해 분노로 휩싸여 있었다. 뭘 해도 마르크스야! 자본가들! 그들이 누군지 모르지만 불행의 원흉은 그들이야! 마르크스가 말한 대로 말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친구들에 의해 결국 난 등신이 됐고, 책상은 엎어지고, 칠뜩이와 에로 본좌는 서로 멱살을 잡고 뒹굴고, 어디로 날라가 버렸는지 ‘상실의 시대’는 없어져 버렸다.


하루키 그는 나에게 그런 존재다. 기묘한 세계의 중심에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돌이켜 보면 그때의 에로 본좌와 칠뜩이의 치열한 논쟁, 그리고 나의 논쟁, 그것은 서로 의미 없는 논쟁이자 그 무엇도 의미를 찾기 힘든 대화였다. 그런 대화들을 하며 우리는 살고 있었다. 그 속에서 상대방의 입장 따위 들을 여유 따위도 없었다. 서로 각자의 생각만 중요할 뿐, 칠뜩이는 칠뜩이 마음대로, 에로 본좌는 본좌 마음대로, 난 내 마음대로, 그런데 지금도 사람들은 항상 그렇다. 맞냐 틀리냐, 이쪽이냐, 저쪽이냐 등등.


난 그런 속에서 항상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말이다. 하루키 잡문집에서는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여유라고 할까? 다 읽으면 솜 같은 부드러움, 어떤 것으로 찔러도 푹 들어갈 것 같은, 아주 부드러움 그런 것이 느껴진다. 이쪽이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또 저쪽이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다 읽으면 그냥 그의 이야기가 그가 섬세하게 만들어낸 세계가 펼쳐질 뿐이다. 무리하게 들어오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 넉넉함. 그것이 하루키 잡문집을 다 읽은 나의 전체적인 감상이다.


설날 ‘복주머니’를 열어보는 느낌으로 이 책을 읽어주었으면 한다는 것이 하루키의 바램이다. 이런 문장은 어떨까?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느냐 하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 것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거야 뭐 어쩔 도리가 없겠죠.


하루키는 이런 태도다.


화공과 에로 본좌, 그는 어떠한 사람인가. 이미 그는 고등학교 입학 시절부터 남다른 아우라를 풍겼다. 185미터 정도 되는 멀대 같은 큰 키, 그러나 몸에는 군살을 비롯해 살 하나 없는 몸매, 아 저 친구와 비슷하다고 생각 든 물체는 가끔씩 주유소 앞에서 마주치는 가게 앞에 전시된 사람 모양의 풍선이 있다, 밑에서 바람을 불면 왔다 갔다 하는 그런 막대기 같은 사람 풍선, 딱 그 물체가 화공과 에로 본좌였다.


그런 큰 키를 가지고 교실 뒤에 짝도 없이 앉아 수업 중에 혼자서 교과서를 보고 킬킬거리고 웃거나 하는 독특한 녀석이었다. 분명 그 책은 교과서인데, 그렇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라서 뭔가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다고나 할까?


암튼 제발 나에게 말 안 시켜줬으면 하는 친구 베스트 5위 안에서도 상위권 안에 드는 친구였다. 도대체 이 녀석과 어떻게 친해진 것일까?


한적한 미개발 P시에 사는 이 녀석은 그래도 전철이 지나다니는 내가 사는 O시의 공고에 합격해 매일 버스를 타고 통학을 했다. 우리 반에는 P시에서 학교를 오는 아이들을 가리켜 P파라고 지칭했다. 그들은 버스를 타고

같이 학교를 등교하기에 붙여진 의미 없는 호칭이었다. 그 P파에서 유독 그는 다른 버스를 타고 오거나 하며 그들과 어울리지를 않았다. 게다가 P파의 아이들을 학교에서 봐도 피해 다니기 일쑤였다.


후에 들은 얘기로는 중학교 시절부터 P파의 거북이라고 불리는 녀석에게 괴롭힘을 당했는데 하필 고등학교도 그와 같이 다니게 됐다는 소식과 그 속에 숨겨진 진실은 사실 거북이를 피하려고 이 학교를 지원했는데 거기에 거북이도 붙었다는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이 바로 화공과 에로 본좌였다.


그런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이 어디 한, 둘 이겠는가, 나 역시 공고 합격 후 부모님들은 오토바이를 몰고 교복을 입고 담배를 물고 다니는 학생들은 모두 O시의 내가 다니는 이 공고의 학생들이라고 굳건히 믿고 계셨기에 나를 위해서 중3 겨울 방학 때 집 근처 합기도 도장을 찾아가 직접 학원을 신청해 주셨다. 합기도 도장을 다닌 첫 날, 원래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부모님들은 수학이나 영어학원에 신청해줘서 공부시키는데 우리 부모님들은 왜 저러실가란 생각이 드는 건 사실이었다.


고등학교 입학 후 관장님의 친절한 가르침을 받아 정의를 위해서 무력을 사용하고자 하는 의욕에 불 타 오르고 있었다. 또한 관장님은 고도의 심리전에 능통하신 분으로 나를 위해서 싸우지 않고 적을 제압하는 법에 대해 강의도 해 주셨다.


일단 입학과 동시에 가방에는 책 말고 쌍절곤을 가지고 다니라 하셨고, 학교 쉬는 시간에 책을 꺼 내는 척하며 쌍절곤을 자연스럽게 떨어 뜨리라고 했다. 거기다가 하나 더 사람들과 얘기할 때는 자신이 운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퍼트리라고 하셨다. 하나, 하나 잊어버릴까 봐 소중하게 수첩에 적은 나는 그렇게 실천했고, 더욱 가관이었던 것은 너무 운동한다고 퍼트리고 싶은 성급한 마음에 처음 만난 친구들과 이런 식의 대화를 했다.


“반갑다. 나 누구라고 해.”


라고 새로 만난 친구가 인사를 하면


“어, 난 루쉰p라고 해, 터미널 근처 OO관에서 합기도를 하고있어.”


앞, 뒤 다 잘라먹고 단호하게 내가 운동한다는 사실만 피력했다.


암튼 관장님이 가르쳐 준 방법은 효력이 있어, 나를 둘러싼 아이들은 ‘50%는 운동하고 있으니 건들지 말자’라는 파와 50%는 ‘운동하고 있으니 한 번 건드려서 싸워 보자’라는 파로 양분돼 있었다.


화공과 에로 본좌, 나는 이렇게 서로 안타까운 사연을 간직한 채 우리는 서로의 만남을 준비하고 있었다.


어느 화창한 오후, 체육시간이었다.


화공과도 전기과도 체육수업을 위해 모여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일주일에 한 번은 수업하기 싫은 체육 선생은 비품실에서 공 몇 개를 꺼내 던져주며 공이나 차라고 우리에게 말했다. 개들이 공 보면 달려가서 물고 오듯이 별생각도 없이 공을 가지고 운동장으로 달려가는 아이들 사이에서 난 그럴 줄 알고 준비한 책 한 권을 들고 조용히 운동장 근처의 벤치에 앉아 책을 읽었다.


한, 두 페이지 읽었을까. 내가 앉은 곳 그리 얼마 떨어지지 않은 쪽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키득거리는 소리, ‘하지마, 하지마’ 하는 소리. 독서의 몰입을 방해하는 이 상스러운 것들이라는 생각에 고개들어 그곳을 보니 아이들이 무리지어 있었고 그 아이들보다 머리 하나는 큰 화공과의 에로 본좌의 머리가 그 아이들을 사이로 왔다 갔다 하는 것이 보였다.


뭔 일인가 싶어. 읽던 책을 덮고 그 광경을 구경하러 갔다. 그곳에는 아이들이 벤치를 중심으로 반원으로 서 있었고, 거북이는 테니스공을 들고 그들과 함께 서 있었다. 화공과 에로 본좌는 벤치 뒤에 서 있었고 말이다. 거북이가 에로 본좌에게 공을 던지면 그는 기묘한 웃음소리를 내며 ‘하지마, , 하지마’ 하는 소리를 내며 공을 피하고, 그 피한 공을 찾아가 주워서 거북이에게 다시 주었다. 그러면 거북이는 다시 에로 본좌에게 낄낄대며 던지는 것이었다. 옆에서는 아이들도 같이 웃고 있고 말이다.


원래 난 정의를 위해 나서는 체질이 아니다. 게다가 돌이켜 보면 그런 일들에 있어서는 멀리 돌아가거나 모른 척하기 일쑤다. 하지만 난 보고 말았다. ‘하지마’라고 말하며 기묘하게 얼굴을 일그러 트리며 웃는 에로 본좌의 입술을 말이다. 그의 표정은 웃는 듯 했지만 입술은 일그러져 있었다. 고통스럽고 치욕스러워서 말이다.

“야, 니들 그만해!”


아이들의 시선, 거북이의 시선 모두 나에게 쏟아졌다. 게다가 화공과 에로 본좌의 그 기묘한 시선.


“왜 사람을 괴롭혀, 그게 재밌냐?”


나의 거침 없는 발언, 내 마음은 ‘짱 멋있어, 마치 영화의 주인공 같아’라며 감탄하는 마음과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초긴장 상태의 마음으로 여러 갈래 찢겨져 있었다.


“뭐야, 이 새끼야, 한판 붙어 보자는 거야.”


테니스공을 손에 움켜쥔 거북이가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내가 워낙 운동한다고 떠들었으니 그 실체를 확인하고 싶은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공을 차던 아이들까지 모두 달려와 금세 나와 거북이 주위에는 아이들로 꽉 차게 됐다. 지금 생각해도 ‘그 순간에 어찌 그리 많은 인원이 모이냐’라며 속으로 혀를 찬다. 게다가 화공과는 여자 아이들도 있었고, 그 속에는 초등학교 동창도 둘이나 있었다.


이미 상황은 벌어졌고, 물러설 자리도 없음을 느낀 나는 ‘한 판 붙자’라고 소리치며 주먹을 관장님이 가르쳐 주신 데로 꽉 말아쥐었다. 근데 거북이 녀석이 벤치 위로 성큼 올라가는 것이었다. 마치 조지 오웰이 코끼리를 언제 쏠 것이냐고 기대하던 인도의 민중들처럼 아이들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나, 난 1%의 협상의 여지만 있다면 거북이와 대화하여 싸움을 종결시키고자 했다. 그것이 관장님의 마지막 비술 일촌 피하기 기술이었다..


나는 “야,”라고 말하며 거북이에게 다가가다 갑자기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앞이 갑자기 껌껌해진 후 눈을 뜨니 내가 방금 있던 운동장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사라지고 없었고, 대신 눈앞에 새우라고 불리는 친구가 앞에 서 있었다.


“루쉰p, 날 따라와!”


순진하게 웃으며 앞을 뛰어가는 새우에게


“야! 수업 끝났어? 싸움은 어떻게 된 거야!”


라고 소리치며 그를 쫓아가는데


“루쉰p! 루쉰P!”


하는 고함소리와 갑자기 볼이 너무나도 아팠다.


또 다시 눈이 떠졌다. 멱살을 잡고 볼을 세차게 때리고 있는 반장 녀석과 옆에서 양동이에 물을 받아서 나에게 뿌리고 있는 녀석들이 눈에 들어왔다.


“고만 때려, 이 자식들아..”


난 힘없이 말했다.


“야, 정신차렸어. 정신차렸어.”


옆에서 나를 지켜 본 친구들의 증언은 이러했다. 내가 뭐라고 소리치며 벤치로 다가갈 때 거북이는 벤치에서 발로 내 머리를 걷어찼고 그 한 방에 엎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일어서려고 하는 순간 거북이가 다시 머리를 발로 찼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절을 했고, 지켜 보던 아이들과 거북이 역시 P파와 더불어 수업 종이 끝나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절한 나를 양호실에 데려가면 싸웠다는 것이 들통나기에 20분 동안 누워 있던 나를 향해 에로 본좌는 수업도 들어가지 않고 양동이에 물떠와 끼얹고 반장은 정신차리라고 싸다귀를 세차게 때렸다는 것이다. 20분 동안 말이다. 쉬지도 않고…


옷은 흠뻑 젖어 있고, 볼은 탱탱 불고, 머리가 깨질 듯했다. 친구들은 이건 정말 야비한 수법이었다. 어떻게 누워 있는 사람의 머리를 찰 수 있냐며 다시 붙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 소란스러움 속에서 아이들의 부축을 받고 결국 양호실로 갔다. 관자놀이가 퉁퉁 부어 있다는 양호 선생님의 지적과 어디서 다쳤냐는 질문에 교실 들어가다 문에 머리가 끼었다라는 반장의 어이 없는 변명과 아무런 의심 없이 믿어 주는 미소가 아름다운 양호 선생님을 보며, 내가 미쳤거나, 아니면 이 사람들이 미쳤거나 둘 중 하나네란 생각하며 양호 침대에 누워서 아픈 관자놀이에 냉찜질을 했다.


관자놀이는 뜨거웠으나 머리는 차가워졌다.


사태를 파악하기 시직했다. 그때까지 노력한 고도의 심리전이 모두 무산으로 될 위기에 봉착했다. 더욱이 공고는 싸움 실력이 들통나면 모든 게 끝난다. 난 아픈 와중에도 화공과의 에로 본좌를 불렀다. 에로 본좌는 그야말로 존경에 가까운 눈빛으로 나를 만나러 왔고, 그에게 나는 귓속말로 속닥거렸다.


에로 본좌는 거북이 교실로 가서 나의 말대로 움직여 주었다. 다음 날 아침 머리에 반창고를 붙인 채 아직도 퉁퉁 부은 관자놀이를 붙잡고 가던 중 화공과, 전기과의 P파가 오는 것이 보였다. 난 어제 에로 본좌와 미리 알려준 대로 그들에게 다정하게 다가갔다.


관장님의 가르침 중 야규 무네노리의 ‘신 카케류’의 비법이란 것이 있는데, 적이 생각한 자세가 아닌 새로운 자세를 몇 번 바꾸면 적들은 당황하여 그들의 심리를 내 안에 담을 수 있다는 전법이다. 모든 이들은 내가 거북이를 피할 줄 알았으나 오히려 거북이에게 다가가자 거북이와 일진들은 심하게 동요하기 시작했다. 그 미묘한 마음의 움직임을 느끼며 나는 말했다.


“야, 얘들이 어제 내가 너랑 싸웠다는데. 하하하!”


거북이에게 건넨 이 한마디.


거북이의 표정과 P파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얼어 붙었다. 아무 대꾸도 못 하는 그들을 뒤에 남겨 놓은 채 관자놀이를 부여잡고 웃으며 가는 나의 모습, ‘신 카케류’ 야규 무네노리가 따로 없을 정도였다.


어제 에로 본좌와 나눈 얘기는 미친 척하자는 것이었다. 에로 본좌에게는 내가 아무 기억을 못 한다고 교실에 가서 얘기하라고 했고 그 주역인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 어떻게든 기억을 못 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결국 그 이후 에로 본좌는 나와 붙어 다녔고, 거북이와 P파의 괴롭힘 역시 멈추었다. 우리는 그렇게 미친 그룹을 형성한 것이었다.


이 그룹이 바로 ‘바보파’ 였다. 우리는 그렇게 기묘하게 만났다. 칠뜩이도 뒤통수에 500원 짜리 땜빵 있었는데 단순히 뒤통수에 있는 땜빵 때문에 칠뜩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얘들의 놀림의 피해 우리 그룹에 들어 온 이후 ‘거기로 갈 줄 알았어’라는 아이들의 얘기를 들으며 아이들의 놀림은 멈추었다. 난 그 싸움 이후 여전히 ‘운동을 하고 다녀’라고 말하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기묘한 공포감을 주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여러 과의 아웃사이더들의 모임이 바로 우리의 모임이었다. 저능아라고 표현하기 힘든 어떤 선을 넘은 집단의 대표격으로 우리는 그룹은 형성 됐다.


여름에는 운동장 풀밭에 앉아 내 문학 책을 들고 같이 독서를 하고 있으면 지나가는 아이들의 상쾌한 비웃음 소리와 몇 안 되지만 여신 대우를 받는 소수의 여자 학생들의 경멸스럽다는 손가락질 속에서 우리 그룹은 무럭 무럭 성장해 갔다. 참고로 공고에서는 다른 학교와 미팅도 많이 하는데 우리 그룹은 단 한 명도 초대 받지 못했다는 사실에서 그 유명세를 증명할 수 있었다.


뭐라 설명할 수 없지만 하루키 잡문집은 나에게 그들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그들에 대해 말하게 한다. 그리고 끊임없는 이야기의 형태로 쓰게 한다. 재미가 있든 없든 말이다. 독서를 자주 하지만 하루키의 잡문집 경우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이야기를 내뿜게 한다. 그게 왜 그런 것인지 모르지만 말이다. 하루키가 잡문집에서 말하는 자연스러운 이야기들이 나도 말하라고 재촉하는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내가 소설을 쓰는 한 가지 큰 목적은 이야기라는 하나의 ‘생물’을 독자와 공유하고, 그 공유성을 지렛대 삼아 마음과 마음 사이에 개별적인 터널을 뚫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누구든, 나이가 몇이든, 어디에 있든, 그런 것은 전혀 문제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쓴 그 이야기를 당신이 ‘자기 이야기’로 확실하게 끌어 안아주느냐 마느냐, 단지 그것뿐입니다.


하루키는 또 이렇게 말한다.


나는 뭔가 고통스럽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마다 늘 그 구절을 자동적으로 떠올리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만 생각하자. 바람을 생각하자’라고, 그래서 눈을 감고 마음의 문을 닫고 바람만 생각했다.


크리스마스 때 관리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데 에로 본좌가 놀러왔다. 그리고 하루키의 잡문집을 보았다.


“이번에는 어떤 부분이 끝내주냐?”


난 씩 웃으며 그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모두 끝.내.줘.”


그는 웃으며 잡문집을 들었고, 크리스마스가 끝나는 다음 날 아침까지 모두 읽고 나에게


“이 녀석은 진짜야..”라고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하루키는 진짜지. 그것이 이 잡문집 안에 모두 들어가 있다.




참고 문헌


1.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비채, 2011, 원제 : 村上春樹 雜文集 (201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