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경비실의 보이지 않는 인간

by 노석

나는 보이지 않는 인간이다. 내가 보이지 않는 것은, 간단히 말해, 사람들이 나를 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화창한 어느 날 봄, 병이 들어 잠시 병원에 입원하신 60대 경비 반장님을 대신해 아파트 입구에 위치한 경비실 3초소에 근무하게 됐다.


경비실 업무는 지극히 단순하다. 10평 남짓한 경비실에 앉아(화장실도 포함돼 있음) 지나가는 아파트 주민들에게 내가 보이든 보이지 않던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하고, 집에 없는 주민들을 대신해 택배 받고 주민이 찾으러 오면 친절하게 건네 드린다. 물론 신뢰감을 듬뿍 주는 살인미소도 더불어 보내고 말이다.

경비실 주요 업무를 수행하며 동시에 CCTV를 시청한다. (주차장, 엘레베이터 6대 총 13대, 참고로 경비실에는 TV나 컴퓨터와 같은 사치품은 설치돼 있지 않다. 고독을 같이 즐겨주는 라디오 한 대뿐) 그렇게 24시간을 앉아서 먹고 졸고 인사하고 CCTV를 본다. 3일 정도 경비실에서 근무하다가 관리사무소로 불려갔다.


관리사무소 소장님이 얘기하셨다.


"아파트 주민들한테 민원이 들어 왔는데 인사를 무표정하게 한다더라, 좀 웃으면서 인사해라."


아파트 관리사무소에서 제일 무서운 것은 주민들의 민원이다.


"부끄러움 타면서 아마추어처럼 인사하지 말고, 프로답게 인사해. 프로는 부끄러움 따위는 타지 않아"


소장님 시발, 괜히 소장이 아니었어. 아! 이 얼마나 격렬한 감동을 주는 말인가.


'평생 인생이 아마추어였다. 그래! 나는 프로다. 프로의 모습을 보여주겠어!'라는 격한 각오가 밀려왔다. 보여주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근무에 임했다.


하는 일이야 다시 똑같은 일의 무한 반복 재생이지만 그냥 멍하니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토익책도 펴놓고 사람들이 경비실 앞에 사라지면 한 단어라도 외우기 위해 중얼거리며 공부했다. 토익 공부는 왜하냐면 향후 언제가 될지 모르나 노무사 시험을 보기 위한 노력이었다.


‘난 프로다. 그래서 친절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친절이란 단어가 관리사무소에서 한 인간의 형상으로 걸어 다니며 살아 숨쉬는걸 보여 주겠다’ 란 마음으로 인사할 때는 입꼬리에 경련이 일 정도로 미소를 짓고, 말할 때는 콧소리에 비음까지 넣어주는 디테일을 추가했다.


"안뇽하세용~" "택배 여깄습니당~"


그렇게 24시간을 인사하며 웃고, 택배 주면서 웃고, 영단어 외우다 인사하고 웃고 CCTV를 진짜 집중하며 시청했다.


경비 반장님 복귀 이틀 전 관리 사무실로 다시 불려 갔다.


"저기 말이야, 아파트 주민들한테 민원이 또 들어왔어."


난 그때 직감적으로 느꼈다. 이것은 분명 달라진 내 모습에 대한 주민들의 호응이다. 칭찬 아니면 약하게 수고했다는 격려 정도겠지, 소장님이 ‘고생했어’라고 하면 난 수줍게 웃으며 '아닙니다. 저의 행동이 주민 여러분의 마음에 1%라도 맘에 들었다면 참으로 다행입니다'라고 말하며 첫째도 둘째도 아주 겸손하게 들뜨지 말자고 각오했다.


소장님은 침착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기분 나쁘게 듣지는 말고, 주민들이 너가 좀 정신이 모자라거나 이상한 사람 아니냐고 그러더라고, 인사도 못 알아듣게 하고, 섬뜩하게 미소도 짓고, 게다가 눈이 충혈돼서 밤에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다는 건 본 사람들도 있어."


거기에 대해 그런 것이 아니라고 한참 설명했으나 소장님의 지시로 경비실 근무는 종료하고 아파트 지하에 위치한 변압실에 혼자 앉아서 근무하게 됐다.




랠프 앨리슨은 보이지 않는 인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보이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나를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내게 다가올 때 내 주변의 것이나 혹은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 꾸며진 것만을 본다. 그야말로 그들은 모든 것을 빠짐없이 다 보면서도 정작 나의 진정한 모습은 보지 않는다.

- 보이지 않는 인간 1권 11페이지


그 누구도 만날 수 없는 지하 변압실에 앉아 저 구절을 몇 번이고 곱씹으면서 생각했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내가 도대체 부족한 부분이 무엇이었을까?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외모였을까? 아니면 어버거리는 말투 때문이었을까?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나 같은 30대 초반 남성이 근무하는 일은 드물다. 대부분 50대 중반, 아니면 60대 넘은 아저씨들이다. 경비실은 60대 남성이 일하고 싶은 취직자리 상위 랭킹을 차지한다. 그래서 평균 60대 중반 70대 이후인 분들이 근무하신다. 이런 곳에 30살 초반인 사람이 일하고 있으면 사람들은 좀 의아해한다.


그리고 60대 넘은 경비실 아저씨들에 대해 주민들은 경계심이 별로 없다. 하지만 나 같은 젊은 사람은 주민들은 경계한다. 그도 그럴만한 것이 관리사무소 근무 시간에는 아파트 주민들 중 남편들은 모두 일을 나가 있고, 아주머니들 밖에 없는데 젊은 남성이 자기 집 전등을 고치러 오거나 민원을 처리해 주러 가면 조금 불안해 하는 거 같다. 게다가 의도치 않게 상대방에게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외모를 가지고 있으면 주민의 불안은 더 커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내가 가면 날 보고 주민들은 60대 아저씨들을 다시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이게 바로 나이의 장점이란 말인가!


소설은 1952년 미국에서 출판되었고 작가가 흑인이다. 작가가 《보이지 않는 인간》을 집필한 시기(1945년~1952년)의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승리 후 경제적 풍요를 누리는 동시에, 극심한 인종 차별과 냉전이라는 이념적 갈등이 공존하던 모순의 시대였다.


당시가 얼마나 극심한 인종 차별이 있었는지를 알려주는 유명한 법이 짐 크로우 (Jim Crow)란 법이다. 이 법은 미국 남부 주들이 시행한 강력한 인종분리법이었다. 이는 "분리하되 평등하게"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흑인을 모든 공공장소(학교, 버스, 식당, 화장실 등)에서 백인과 격리하고 열등한 시설을 강요하는 진상 제도였다.


한마디로 차별이 일상화인 시대였다. 참으로 국가와 인종을 떠나 사람은 누구나 '차별'이란 고등정신병을 모두 공유하고 있다.


소설에는 ‘차별’을 비유적으로 쓴 명문장이 있다.


"이 흑인 청년을 계속 달리게 하시오"


이 말은 흑인에게 진정한 평등이나 기회를 주지 않고, 영원히 무언가를 좇도록 만듦으로써 기존의 백인 중심 권력 구조에 순응하게 만드는 억압의 시스템을 상징한다.


이 문구가 등장하는 배경은 다음과 같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백인들의 오락거리로 잔인한 '배틀 로열' 싸움에 참여한 뒤, 그 보상으로 흑인 대학 장학금이 든 서류 가방을 받게 된다. 그날 밤 주인공은 꿈을 꾼다. 꿈속에서 할아버지가 서류 가방을 열어보라고 하고, 그 안에는 "수신인에게"라고 적힌 편지가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의 마지막에 "이 흑인을 계속 달리게 하시오"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 문구는 주인공이 받은 '교육'과 '장학금'이 실제로는 흑인의 해방이나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암시한다. 이는 백인 사회가 흑인에게 '성공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어, 그 환상을 좇아 끊임없이 달리게(노력하게) 만들지만, 결코 목적지에 도달하지는 못하게 하려는 교묘한 통제 수단임을 폭로하는 것이다.


결국 이 말은 '흑인이 정해진 틀 안에서 계속 달리도록(순응하고 노력하도록) 유도하되, 절대로 그 틀을 벗어나거나 진정한 권력을 얻지는 못하게 하라'는 백인 사회의 위선적인 억압 방식을 의미한다.




‘이 사람을 계속 달리게 하시오’


봄에도 서늘한 아파트 지하 변압실에 앉아 난 무얼 위해 달리고 있는 것일까? 달리다가 구덩이 같은 변압실에 처박히게 된 인생이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래, 시작은 중학교 3학년 때부터였어. 그 해 겨울방학에 나는 인문계냐 실업계냐를 담임 선생에게 강요 받았지. 당시 O시는 고등학교가 자율배정이 아니라, 지원해서 시험을 보고 고등학교를 가야만 했지. 학교에서는 성적 상위층은 인문계를 지원해서 O시의 상위 고등학교 진학을 몇 명을 하느냐가 자랑거리였지.

나처럼 하위 성적을 가진 자는 학교 진학률을 높이기 위해 내신으로만 가는 실업계를 지원하도록 했었지. 중학교 3학년이던 나는 실업계가 뭐고 인문계가 뭔지도 몰랐지.


담임은 말했지.


‘너 O시에 있는 고등학교 가고 싶지?’


이 말은 엄청난 유혹이었다. O시 고등학교를 가지 못하면, 버스를 타고 P시나 더 외곽인 도시로 고등학교를 가야 했다. 성적이 바닥이어도 걸어서 갈 수 있는 고등학교라면 너무 감지덕지한 일이었다. 그래서 담임의 말에 흔쾌히 동의하고 쓰라는대로 썼다. 그리고 실업계를 가서 적응 못하고 결국 삼수를 해서 대학에 가게 되었다. 그래서 그때부터 난 달렸던 거야. 계속 사회의 시스템안으로 들어가고 싶어서, 그런데 달리다 달리다가 아파트 변압실로 떨어져 버린거지.




자꾸만 배신당하고 이용당하는 주인공을 보며 안타깝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하지만 그는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알아가고 발견하게 된다.


나는 나의 병을 지니고 있다. 비록 오랜 세월 동안 그것을 바깥세상으로 꺼내 놓으려고 시도했지만 그것에 관해 적다 보니 적어도 반은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됐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기 자신을 탓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 보이지 않는 인간 2권 364페이지


공고를 나온 것, 변변찮은 직장을 구하고 그런 속에서만 맴돌고 있는 것, 학력과 학벌로 판정되는 사회에 대한 불만 등. 이 책의 주인공처럼 내 병의 원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적다 보면 그 모든 것의 책임은 반은 내 안에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실 공업고등학교 3년 동안 정말 재밌게 놀았다. 노력의 ‘노’는커녕, 아무 생각도 없이 놀았다.


그러곤 직장이 남들에게 떳떳하지 못하다고 느끼는 자괴감과 사람들한테 좋은 직장 다녀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다라며 열등감에 괴로워하고 있다. ‘왜 내가 당신들에게 보이지 않는냐’며 징징대고 있다.


내가 더 필사적으로 구덩이에 들어오기 전에 노력했어야 했는데, 전부 다 환경이 날 만들었다며, 가난한 집에 태어났다고 저주하고, 선생이 잘 못 만났다고 성질내며 아파트 지하 변압실에서 혼자 궁상을 떨고 있다.


결국 난 내 자신에게도 보이지 않는 인간인 셈이다. 나부터가 내 자신을 보이지 않는 인간 취급하고 있다.


삶이란 살기 위한 것이지 통제받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다움이란 패배에 직면해서도 계속 투쟁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다.

- 보이지 않는 인간 2권 366페이지


굴복하면 안된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던 그것이 뭐가 어떤가! 패배에 직면해도 계속 투쟁해야 한다. 계속 달리게 하면 방향을 내가 바꿔서 달려야 한다.


변압실에서 이 책의 마지막을 많은 감동을 했다. 물론 나 같은 보이지 않는 인간을 만들어낸 사회의 교육 시스템은 문제가 있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런 시스템에 먹혀 버리면 ‘나’라는 존재는 진짜로 보이지 않게 된다.



결국 내가 이런 쓸데없는 소리를 주저리 주저리 써 놓은 것은


내가 낮은 주파수로 여러분을 대변하는지 누가 알겠는가?


라는 랠프 앨리슨의 격려에 크게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

1. 랠프 엘리슨, 『보이지 않는 인간 – 상, 하』, 민음사, 2008, 원제 : Invisible Man (1952년)

작가의 이전글아무 것도 아닌 것만 생각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