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책방의 <통곡>

by 노석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의 마지막 반전이 기가 막혔다.


<통곡>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약속된 장소에서>의 내용과 너무나도 흡사하다. 이 소설의 소재는 일본을 경악시킨 희대의 범죄, 유아 네 명을 참혹하게 살해한 미야자키 쓰토무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그 안에 있는 핵심은 신흥종교에 대한 문제였다.


이 책은 1993년에 완성이 됐다. 그런데 무라카미 하루키의 <약속된 장소에서>는 1998년 4월에 연재를 시작 10월에 마무리가 됐다. 마치 서로가 짝을 맞추듯이 누쿠이 도쿠로가 쓴 대로 신흥종교의 특징에 대해 <약속된 장소에서>의 옴진리교 신자들은 그 사실성을 증명했다.


나에게 마쓰모토 세이초를 비롯한 미야베 미유키 등 사회파 추리소설 입문을 도운 스승이 한 명 있다. 그분과 만남은 2009년 여름 무렵이었다. 나는 변호사를 대상으로 하던 잡지사 기자로 1년 동안 일하던 중 잡지사가 폐간되어 백수가 되었다.


잡지사의 기자 생활은 상갓집 개처럼, 유명 업체를 방문하여 광고를 구걸하는 일이었다. 입으로 구라만 털며 일하는 것에 염증을 느껴 온몸을 움직여 일하고 싶다는 생각에 들어간 곳이 바로 서울 S구에 위치한 헌책방이었다.


책을 좋아하기에 헌책방도 괜찮다 싶었고 이곳은 규모가 커서 인터넷 헌책방 업계에서는 1, 2위 규모였기에, 10명 정도의 직원이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그분과 만나게 됐다.


내가 입사한 후 일주일 뒤, 뒤이어 입사하여 첫 출근 한 그 분을 만나게 됐다. 처음 인상은 모자를 쓰고 머리는 길게 길러 뒤로 묶은 김태원 스타일에 뚱뚱한 몸매를 커버하기 위해 입은 지나치게 큰 사이즈의 티와 바지, 그리고 몸에 등껍질처럼 쫙 붙어 있는 가방, 마치 닌자 거북이와 같다고 할까? 다만 안경 뒤에 숨겨진 선량한 눈빛을 보며 이분은 인생의 탈락자거나 은둔형 외톨이 둘 중 하나라고 짐작했다.


그분도 나도 서로 독특한 외모에 끌렸는지 금방 친해졌고, 또 섬뜩할 정도의 헌책방 노동 강도 덕분에 우리는 전우애도 금방 쌓게 됐다.




이 헌책방의 사장은 하루에 두, 세번씩 고물상에 가서 책을 가져왔다. 한 번에 갈 때마다 5백여권씩 가져오는 데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씩 가져오면 직원들이 나와 종류별로 책을 분류하고 각기 수레를 끌고 10분 거리의 창고들로 책을 나르다 보면 진이 다 빠졌다.


더욱이 이 책뿐만 아니라 전국에서 팔려고 택배로 들어오는 책의 양도 몇백권씩 되다 보니 그 책들도 다 분류하고 정리해야 했다. 주문 들어온 책도 찾아야지 분류도 해야지 정리도 해야지. 정말 분류와 정리란 무엇인가 그 극한의 끝을 봐야했다.


예를들어 우리가 주차장 창고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그곳은 어떤 건물의 주차장을 빌린 곳이었다. 그 곳에 책을 쌓고, 쌓고 또 쌓다 보니 나중에는 바닥부터 천정까지 4미터나 되는 높이 책을 모두 쌓아 올리게 되는 책무덤도 만들었다. 암튼 이런 노동 속에서 세전 120만원을 받으며 일하는 나와 이분은 책 쌓다가 피곤하면 서로 책 이야기를 하며 그 피곤함을 달래곤 했다.


이분은 나보다 1살 많으신 형이었다. 원래 경상남도 k군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었다. 그런데 20살이 됐을 때 목사였던 아버지가 신학대를 가지 않으면 대학 등록금을 내주지 않겠다는 얘기에 자신은 무신론자라며 크게 반발하고 서울로 무작정 상경해 여러 알바를 전전하며 이곳 직장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끔찍이도 기독교를 싫어하던 이 형은 자신의 꿈은 판타지 작가라며 서울로 상경해 그때까지 11년 동안 단 한 번도 쉬지 않고 무한한 창조의 글쓰기를 나날이 거듭하고 있었다. 이쪽 계통의 작가들은 판타지 소설을 올리는 유명 사이트에 자신의 글을 올리고, 그럼 그 글의 조회수를 보고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출판하면 작가로서 길을 걷게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것이 아니면 간혹가다 있는 문학상에 도전하는 것도 작가로서 입신양명하는 길 중 하나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쉼없이 일을 하고 이 형은 자취하는 곳 근처의 24시간 커피숍에 가서 가장 싼 커피를 한 잔 사서 노트북으로 하염없이 글을 써 내려갔다. 그 생활을 무려 11년간 해왔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반쯤 벗겨진 앞머리와 뚱뚱한 몸매, 그리고 30살이 넘은 나이인 이 형은 외관적으로도 작가로서 상품성이 없고, 11년간 글을 썼는데 출판사에서 선택해 주지 않았으면, 이제는 작가의 길을 접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의 삶은 너무 판타지적이며 언빌리버블 하다고 작가 포기하라고 노상 이 형을 잡아 놓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형은 씩 웃으며


"인생은 고통이라 불리는 환상과 희망이라 불리는 환상의 연속이야."


라며 뜻도 의미도 파악할 수 없는 말을 하며 혼자 껄껄대며 호탕하게 웃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설득하고 그 형은 껄껄대고 웃고 하며 하루, 하루 생활을 보내던 중 어느 날 꿈을 꾸게 됐다.


푸르른 자그마한 녹색 동산 정상에 형이 찬란한 햇빛을 받으며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내가 그 동산에 올라가서 형을 부르자 그는 뒤돌아보며 나에게


"루쉰P, 나 합격했어. 이제 나 작가의 길로 갈 수 있어. 이제 이 헌책방에서 일을 하지 않아도 돼"

"형, 정말이야. 너무 너무 축하해"


나는 형의 성공 소식에 너무 감동이 벅차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성공해서 떠나는 형에게 무언가 선물을 해 주고 싶었다. 그때 내 손에 무언가 쥐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난 그걸 형에게 건네며 말했다.


"형, 내가 해 줄 건 없고 성공한 기념으로 주는 선물이야."

"그래, 정말 고맙다."


형은 감격에 떨며 내가 주는 선물을 소중하게 받았다. 근데 내가 준 선물은 그 옛날 세상을 제패했던 전설의 게임기 패밀리였다. 형은 그 선물을 감격에 떨며 받고 떠나갔지만, 난 떠나가는 형의 뒷모습을 보며


'뭐지? 왜 이런 선물을?' 하고 생각하던 중 꿈에서 깼다.


꿈에서 깨어 출근한 날, 형에게 가자마자 패밀리 게임기를 선물로 줬다는 말만 쏙 뺀 채 형이 작가로 합격하는 꿈을 꿨다고 하자 형의 안경 뒤 조그만 실눈은 마치 누가 찢어서 키우듯이 엄청 커지며 크게 놀랐다.

나에게 말하지 않았는데 한 유명 출판사에서 판타지 작가를 뽑는 문학상을 내걸었는데 한 달 동안 준비를 해서 작품 출품을 했고 그 발표날이 바로 오늘이었다.


꿈을 얘기한 나도 크게 놀랐고, 꿈을 들은 형도 정말 놀라워했다. 이것은 ‘신의 계시’라며 무신론자 입장 따위는 벗어던지고 눈을 뒤집어 까며 형은 합장하며 기도까지 했다. 감격하는 형의 모습을 보며 나도 분위기에 취해 이제 작가가 되신 것이라며 형 이름에 작가님을 붙여 ‘00작가님, 축하드립니다~’라고 해주자 형은 정말 바닥에 거품 물고 쓰러질 정도로 흥분했다.


이때다 싶었다. 형을 슬슬 구슬려 저녁에는 고기 먹으며 배에 기름칠이나 하자는 생각이 났다.


“작가님, 고기 한 번 쏘셔야죠.”


사람은 결국 한마디에 쓰러지는 법이다. 돈 아낀다고 편의점에서 천원짜리 삼각깁밥만 먹던 형은 그날 저녁 자신의 두달치 식비를 털어 나에게 돼지갈비를 사 주었다. 우리는 고기를 먹으며 상금은 어떻게 써야 할 것인지, 그리고 언제 이 직장을 그만두고 나가야 할지, 나갈 때는 어떻게 말하고 나가야 폼이 나고 멋있을지를 한참을 토론했다.


그렇게 신나게 기분을 내고 고기 먹고 사무실에 들어와 숨을 죽이며 인터넷 발표를 기다렸다. 얼큰한 술에 취한 나는 뭘 발표를 보냐고 볼 필요도 없다며 맥주캔을 흔들며 소리쳤다. 형도 그치, 그치하며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추임새를 넣었다.


그리고 정해진 시간이 되어 발표된 문학상 합격자 명단에는 아무리 눈을 씻고 수십번을 보아도 형의 이름은 없었다. 형은 모니터를 안고 그야말로 <통곡>을 해 버렸다.


나도 너무 놀라 손에 들던 맥주캔이 엎어져 흐르고 있는 것도 잊은 채 울던 형이 정신 차리면 무슨 일을 당할지 알 수 없어 황급한 마음으로 가방을 싸서 퇴근해 버렸다. 형에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위로도 하지 않았고 말이다. 사태는 정말 급박했었다.


그 일이 있고 나서, 형은 말이 없었고, 틈만 나면 책을 읽고 노트북에 무언가를 꼼꼼히 적기 시작했다. 그런데 항상 '대마교사전' 이라든가 '판타지 무기열전' 같은 책만 읽던 형이 다른 책들을 읽는 것이 눈에 띄었다.

궁금한 것은 못 참고 지나가는 지랄 같은 성격 탓에 형에게 무슨 책을 읽냐고 넌지시 물어보자 아주 순박하고


선량한 미소로 웃으며


"너를 어떻게 죽여야 완전 범죄로 죽일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읽고 있어."


섬뜩한 대답만 하고 껄껄 웃으며 다시 책을 읽는 형을 보며 뭐랄까 뒤통수가 차가워지는 느낌에 그 형이 읽는 책들의 제목을 기억해 두었다가 나도 그 형 몰래 구입해서 읽기 시작했다.


미야베 미유키의 '모방범', '화차', '이유', 마쓰모토 세이초 '점과 선', 모리무라 세이치 '인간의 증명' 등 형이 읽으면 나는 뒤이어 읽어갔다.


사실 형이 읽은 책들은 사회파 추리 소설로서 완벽한 사람을 죽이기 위한 트릭이 존재하는 그런 류의 소설은 아니었지만 형의 진심을 아는 나로서는 읽으면서도 섬뜩하기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 였다.


하지만 시간은 모든 것을 되돌리는 힘을 가졌다고 할까? 그렇게 나를 죽이기 위해 섬뜩한 포스를 내뿜던 형도 다시 쏟아지는 노동 속에서 내가 없으면 형도 힘들고, 형이 없으면 내가 힘들어진다는 상호부조의 원리를 깨우치고 예전 관계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서로 사회파 추리 소설에 대한 지식이 쌓여기에 또 이 분야에 대한 서로의 이야기를 싹 틔우며 노동의 힘듦을 이겨냈다.


형은 나에게 사회파 추리 소설과 판타지를 결합한 대 작품을 써 보겠다는 결의를 했고, 나 역시 내가 한 짓이 있기에 무조건 찬성하며 형은 혼이 작가의 혼이기에 분명 그런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라 극찬에 극찬을 거듭했다. 그리고 형이 자기가 쓴 글을 보여줄 때마다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는 듯한 디테일한 행동을 해가며 최고야 최고야 이건 니체가 쓴 거 같아라는 혼이 나간 소리를 거듭했다.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은 그 주제가 몹시나 무겁다. 유아연쇄 살인사건, 경찰 내부의 승진에 대한 불합리성, 신흥종교에 위험성 등 탄탄한 소재를 그물망처럼 만들어 읽는 독자를 푹 빠져들게 한다. 미야베 미유키 외에 다른 사회파 추리 작가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나에게 이 책은 정말 신선했다.


어찌보면 소설의 리뷰를 써야 하는데 깊이 있게 쓰지는 못했다. 왠지 건드리면 그 안에 있는 내용들에 대해 스포일러를 할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읽어 보면 후회하지 않을 추리소설은 확실하다.


형은 나와 동시에 헌책방을 그만두고 결국 세달 뒤에 정말 문학상에 합격해 지금은 1권당 100만원의 계약으로 책을 출판하고 있다. 이제는 1권당 130만원을 받는 전업 작가로 성장 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새로운 판타지 소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며 나와 대화했던 사회파 추리 소설의 기법을 이용한 판타지 책이 유용하다며 나를 극찬해 주고 있다.


박카스와 포카리스웨트를 섞은 음료가 창조의 샘을 자극하는 음료라고 하며 사용 비법을 말하는 형을 보며 누쿠이 도쿠로의 <통곡>은 우울하게 끝나지만 이 형의 <통곡>은 웃으며 가고 있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는다.



참고 문헌

1. 누쿠이 도쿠로, 『통곡』, 비채, 2008, 원제 : 慟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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