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너무나도 잘 지내고 있습니다. 잘 지내고 계신지요?
이번 여름은 저에게 무척이나 버거운 달 이었던 것 같습니다. 더위도 비도 무엇 하나 저를 쉽게 냅두지를 않았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폭우로 친구의 집도 잠겨 버렸구요.
그 친구의 가족들이 몇십년 동안 살았던 빌라 반지하가 진흙 속에 쳐박혀 있을 때 전 아무것도 못하고 서 있기만 했습니다. 친구와 대화 했던 방에도, 그와 라면을 끓여 먹던 거실에도 진흙, 그리고 물이 어디서 왔는지 가득차 있더군요. 나름대로 도와 준다고 했지만 친구 마음의 상처까지는 도와주지를 못 했습니다.
친구는 저에게 그러더군요.
'이번 기회에 싹 다 바꾸는 거지 뭐! 내 방 벽지는 마음에 안 들었거든'
'난 마음에 들었어 그 벽지가 지금은 진흙이 삼켜 버렸지만 난 마음에 들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땡볕에 흙 묻은 가구들, 책들을 털고 있는 친구에게 말하지 못 했습니다. 같이 웃으며 너도 같이 쓸려가 버렸어야 하는데 라며 나름 무서운 농담도 했습니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루쉰'이라는 저서에서 그의 철학 중 핵심은 '생명은 살아가야 한다'라는 점이라고 했습니다. 맞습니다. 살아야 합니다. 어쨌든 무슨 이유가 됐든지 말이지요.
친구의 집 정리를 마무리하고 며칠 뒤 저에게 루쉰 선생의 '거짓자유서'가 배달 됐습니다. 전 책을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이지요. 책은 루쉰을 좋아하는 저를 위해 친구가 보내 준 것입니다. 고맙다고 말이지요. 자기가 돈이 없어 비싼 책은 사주지 못하니 이거라도 일단은 만족하라고 말이지요.
어느 날 한 학생이 루쉰 선생에게 책을 구입하러 왔다. 학생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루쉰 선생의 손바닥에 놓았다. 그 돈에는 아직 그의 온기가 남아있었다. 루쉰 선생은 생각했다. 자신의 책에 영향을 받은 청년이 앞으로 어떤 인생을 걸을 것인가.
루쉰 선생은 '그 체온이 내 마음에 낙인을 찍었다.'라고 썼습니다.
친구가 사준 책 역시 제 마음에 낙인을 찍었습니다. 돈이 얼마건 말입니다.
왜? 괴로운 일은 돈 없는 사람에게만 쏟아질까요? 항상 곱씹으며 생각하지만 참으로 답이 없습니다.
전 '거짓 자유서'를 펼쳤습니다. 자유라면 자유지 왜 거짓을 붙였을까요? 루쉰 선생은 참으로 풍자를 좋아합니다.
이 책이 쓰여진 시기는 1933년입니다. 루쉰 선생의 날카로운 잡문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글이 짧다고 해서 결코 쉬운 내용이 아닙니다. 책도 얇고 가지고 다니기 편하니 한 번 읽어나 봐야겠다고 고르시면 큰일납니다.
제가 루쉰 선생의 잡문을 볼 때 즐겨 참고하는 책이 있습니다. <루쉰 잡문 예술의 세계>란 책입니다. 그 책에는 루쉰 선생의 잡문에 대해 이런 글을 써 놓았습니다.
루쉰의 잡문은 시사적인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어 당시의 시대배경을 알지 못하면 독해가 쉽지 않은 만큼 안내서가 필요하다.
'거짓 자유서'는 딱 저 평에 맞는 책입니다. 이 책이 쓰인 때는 1927년 상해로 루쉰 선생이 피신을 온 이후 딱 6년이 지난 시기입니다. 국민당 정권은 공산당을 전멸시키기 위해 '청당운동(당을 깨끗이 만든다 고로 공산주의자 및 반대자를 색출해 죽인다)'을 벌인지 6년이 된 해 였습니다. 더욱이 국민당은 장제스를 중심으로 독재정권을 창출해 남경에 정부를 두고 자신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테러를 통해 마구잡이로 죽이던 시대였습니다.
언론은 이런 국민당의 앞잡이가 돼 민중을 위한 글이 아닌 국민당의 입이 돼 민중을 기만하고 속이고 있었죠. 게다가 출판 검열도 엄격하게 강화돼 출판되는 책들은 과감하게 정지시키거나 만약에 나오는 책은 아주 치밀한 검열을 실시했습니다. 치밀한 검열이라는 것은 출판되기 전에 국민당 소속의 검열관들이 책 내용을 보고 삭제해야 될 문장을 교묘하게 지우고 출판을 해 버리는 것입니다.예를 들어 '국민당의 장제스는 아주 못된 놈이다.'란 문장이 있다면 검열을 거치면 '국민당은 이다'라고 출판이 되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속에서 루쉰 선생은 1932년부터 1936년까지 무려 80여개의 필명을 사용하며 게릴라 전법을 쓰며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하하 루쉰 선생은 참으로 자유롭지 않으셨죠? 아, 참 근데 제가 그 얘기를 빼 먹은 것 같습니다. 제가 왜 이리 루쉰 선생을 좋아하는지 그 이유 말입니다. 이거 또 얘기가 길어집니다. 매번 죄송한 마음만 간직한 채 마음대로 글을 또 길게 쓸 작정입니다.
제가 그 얘기는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20대 중반 시절이었습니다. 전 사법 시험을 공부한 적이 있습니다. 아! 너무 놀라지 마십시오. 글을 이제 쭉 읽어 보시면 아시겠지만 사법 시험을 패스할 만한 실력도 없었고, 그리고 공부는 했지만 1차는 커녕 그 어떤 결과도 얻지 못 했습니다. 정말 문장 그대로 '사법 시험을 공부한' 적이 있는 것입니다.
고졸인 인생의 앞길을 생각할 때 무엇인가 로또와 같은 돌파구가 필요했습니다. 한 번에 신세를 역전할 수 있는 그런 출세의 길 말입니다. 그런 저에게 사법시험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이 시험만 합격하며 그동안의 찌질한 인생은 안녕, 그야 말로 럭키 비키한 인생의 길로 들어간다고 생각했습니다.
법을 통한 정의 구현, 그런 달달한 이상은 제 뇌에는 없었습니다. 오로지 개인의 출세, 신세 역전, 그것만이 머리 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습니다. 더 무서운 것도 고백해야 겠습니다. '거짓 자유서'를 선물했던 친구는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해 직장 다닌지 4년 정도가 되었습니다.
친구는 오토바이 공장에서 클랙슨을 점검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친구 직장에 가끔 놀러 가면 친구는 베트남 노동자들과 음침한 공장의 구석에서 클랙슨을 손으로 누르고 있는 모습을 항상 보곤 했습니다.
저는 음침한 곳에서 '빵' '빵'하고 울리는 소리를 들으며 때 묻은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친구를 보며 속으로 내심 '난 사법 시험을 공부하고 있어, 이 시험만 합격하며 저런 삶을 살지 않아'란 생각을 하는 그런 놈이었습니다.
참 무섭지 않습니까? 후에 '아Q정전'이란 루쉰 선생의 소설을 읽고 나서 제 정신병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전 아Q와 같은 정신승리법을 구사하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아Q는 자신의 성도 모르고, 힘도 없습니다. 단지 자존심만 강합니다. 그래서 자주 싸움을 합니다. 그리고 집니다. 그러나 자신을 때린 상대가 자리를 뜨면 '아들한테 당한거나 마찬가지다'라며 자신을 위로하며 비참한 우월감에 빠집니다. 그리곤 항상 승리하는 기분을 느낍니다.
일본 문학가가 분석했듯이 이것은 승리도 그 무엇도 아닙니다. '어쩔 수 없다'고 단념하고 패배에 눈을 감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 놈보다는 낫다'고 큰 소리치며 자신을 속이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한문으로 빼곡히 적힌 민법 책을 옆에 끼고 거리를 걸어 다니며 지나가는 대학생들을 곁눈질하며
'난 이런 공부를 하고 있으니 이제 합격하면 네 놈들처럼 좋은 대학이나 다녀서 고만고만한 직장에 다니는 것보다는 나아'라며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습니다.
솔직히 제가 어땠는지 아십니까? 한문으로 적힌 민법 책을 책상에 피고 아무리 봐도 하루에 한페이도 읽지 못하고 한문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어제 읽은 한문도 기억을 못 해 다시 찾아서 보는 그런 '정신승리법'의 대가였습니다. 이런 제가 자신의 환경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1밀리미터라도 발버둥치며 앞으로 나아가며 성실하게 살고 있는 친구를 보며 너보다는 낫다며 우쭐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자기 기만적인 삶, 전 끈적끈적한 진흙탕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민법 책으로 자위하며 시간을 보내던 겨울, 먹고 살아야 하기에 신도시에 위치한 편의점 오전 알바자리를 얻었습니다.
전 여전히 민법 책을 옆에 낀 채 알바하러 왔다갔다 했습니다. 하루하루 가슴 속에는 계속 어떤 구멍이 커져갔습니다. 미칠 것 같은 답답함이라고 할까요?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오는 고통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상의 하늘은 저 멀리 높은데 현실이라는 땅바닥에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 하는 고통이랄까요? 하늘과 땅 사이의 미칠듯한 넓은 간격, 그 간격에서 오는 미칠듯한 고통은 시간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었습니다.
편의점 알바도 그러다 보니 대충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건도 진열도 그렇게 주의를 들어도 던힐 담배 자리에 레종을 꼽아 놓고, 새우깡 자리에 오징어 땅콩을 넣어 놓는 등, 온건한 정신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뭔가에 홀린 듯이 일을 했습니다.
편의점은 본사 직영으로 점장님과 같이 근무했습니다. 점장님은 30대 초반의 남성으로 호리호리한 몸매에 은테 안경을 쓰고 면접 볼 때도 일을 할 때도 별반 말이 없고 조용한 분이었습니다. 다만 제가 실수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씨익 웃으며 자신이 대신 해주는 분이었습니다.
점장님은 뭐가 그렇게 좋으신지 나를 보면 항상 씨익 웃곤 하셨습니다. 사실 남자는 제 취향이 아니기에 점장님 미소를 보며 솔직히 무서웠습니다. 일을 시작한지 한달 쯤 지났을까 점장님은 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루쉰P, 민법 책 들고 다니면 무겁지 않아요?"
'네, 무겁습니다. 내가 이걸 왜 들고 다니는지 모르겠습니다.‘
고 말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편의점에서 알바하는데 사시공부한다고 하면 뭔가 더 나아 보일 것이란 말도 안되는 자기 기만적 사고에 빠져 남도 속이고 나도 속이는 고등정신병에 빠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 꿈을 들고 다니는데 무거울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전 무겁다는 대답 대신 정말 이겨도 병신 져도 병신 같은 멘트를 해 버렸습니다. 점장님은 아무 말 없이 씨익 웃고는 그 이후로 질문을 하지 않았습니다.
눈이 몹시나 내리던 어느 겨울 밤, 야간 알바가 몸이 아파 빵꾸를 내서 대리로 일하게 됐습니다. 야간 알바가 안와서 점장님도 퇴근하지 못하고 오후에 퇴근한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눈도 많이 와서 차도 가기가 힘드니 오늘은 저랑 그냥 편의점에 있어야겠다고 점장님은 말하고 저랑 둘이 카운터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습니다. 편의점 통창문으로 보이는 정면에는 어두운 밤, 눈이 쏟아지고, 차들은 눈을 조심해서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손님도 없고 조용한 음악만 나오는 곳에서 저는 저만 보면 웃는 점장님이 왠지 두려워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나에게 고백한다면 알바라고 만만히 보지 말라며 싸다귀를 날릴 준비도 하고 있었습니다. 전 참고로 남자입니다.
점장님은 가만히 있으니 배고프다며 편의점에서 판매하는 호빵은 오래 돌리면 눅눅해지니 우리가 먹자고 했습니다. 조금 눅눅해진 호빵을 먹으며 우리는 고객들의 호빵에 대한 선호는 야채냐, 아니면 단팥이냐란 유치한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했습니다.
손님은 오지 않고, 눈은 내리고, 호빵은 점점 먹어 없어지고 그 속에서 점장님과 저의 대화도 하염 없이 쌓여 갔습니다. 뭐랄까, 점장님은 자기 자랑도 없고 권위주의도 없없습니다. 다만, 저에게 고백할까봐 계속 어떤 여성 취향을 선호하냐고 물어봤습니다. 다행히 가슴 큰 여성을 선호한다는 말에 내심 안도했습니다.
점장님이 여성을 좋아한다고 하자 안심이 된 저는 쌓인 호빵의 껍데기만큼 고민을 하나씩 얘기하게 됐습니다. 민법 책을 들고 다니는 기만적인 삶에 대해, 내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다고 하면 말이죠.
제 얘기를 듣던 묵묵히 듣던 점장님은 제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루쉰 선생의 이 문장을 저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중국 잔치에는 취하라는 요리가 있지요. 새우가 팔팔 뛰고 싱싱할수록 먹는 사람은 유쾌해지며 흡족해 합니다. 저는 이 요리를 거들고 있는 셈입니다. 착실하고, 그리고 불행한 청년의 두뇌를 명석하게 하고 그 감각을 예민하게 함으로써 만일 재난을 당했을 때의 고통을 배가 시키며, 동시에 청년을 미워하는 패거리를 위하여 배가된 고통을 바라보며 오싹오싹한 쾌감을 느낄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 유항씨에 답하여
점장님은 차라리 현실을 모르면 그만이지만 책을 읽고 무엇인가를 알 수 있게 되면 취하 요리의 새우처럼 감각이 예민해져 고통이 배가되어 지친 현실에 괴로울 것이라 얘기해 줬습니다.
그렇습니다. 전 아무 것도 모르고, 죽을 것도 모르는 새우가 됐어야 했는데 멍청이 같이 책을 읽을 줄 알아 버린 겁니다. 그래서 바뀌지 않는 현실의 고통을 조금이나 느끼는 그런 새우가 되어 버렸습니다.
나의 답답한 미래에 대해 거기서 탈출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그것들이 나를 맛있게 잡아 삼키려는 이 사회에 오싹오싹한 쾌감을 안겨주는 그런 머리까지 튀겨먹는 맛난 대하같은 새우가 된 것입니다.
허나 점장님은 거꾸로 생각하면 그런 고통을 알기에 살아갈 수 있다고 하며 저에게 또 이런 글을 알려주었습니다. 유명한 글이라 하였습니다.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게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고향
솔직히 점장님 얘기를 들으며 ’이거 뭐 어쩌란 말이냐‘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고통을 아는 취하 요리의 새우와 같다고 하더니 다음에는 희망은 땅 위의 길과 같다고 말씀하시니 말입니다.
점장님은 소설가가 꿈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지방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 후 알바하며 글을 썼지만 신문사가 주최한 문학상 언저리도 못가다 생계를 위해 편의점 점장으로 입사했다고 합니다. 점장님은 제일 좋아한 문학가가 루쉰 선생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일한 지 2년 되었는데 여기서 1년만 더 돈을 벌어 루쉰 선생이 유학 생활을 했던 일본에 가서 제2의 인생을 개척해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매일 공부하는 일본어 노트를 보여주며 자신은 이렇게 도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이상을 현실화시키기 위해 자네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상을 현실화시키는 힘, 그 힘을 기르고 있는가?
점장님은 질문과 더불어 이렇게 루쉰 선생의 글을 말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무사태평하기를 기다리며 전진을 기다려서 그것이 실현된다면 물론 대단히 좋은 일이다. 그러나 염려되는 것은 늙어죽을 때까지 기다려도 그것이 오지 않으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는 것이다.
- 이것과 저것
그날의 대화를 통해 저도 루쉰 선생에게 관심을 가지게 됐고, 루쉰 선생의 서적을 어떻게 읽는지를 점장님과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루쉰 선생의 글 중
어리석고 약한 국민은 체격이 아무리 건장하고 튼튼하다 하더라도 또 아무리 장수한다고 할지라도 결국엔 하잘 것 없는 본보기의 재료나 관객밖에 될 수 없지 않는가,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이 아무리 많다해도, 그런 일은 불행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첫 번째로 해야 할 일은 그들의 정신을 뜯어고치는 일이다. 그리고 정신을 뜯어 고치는 데 유용한 것은, 당시 나의 생각으로는 당연히 문예였다. 그래서 문예 운동을 제창하고자 마음먹었다.
- 외침 서문 중에서
전 이 글을 읽고 정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다케우치 요시미는 이 글은 루쉰의 본심이 아닐 것이다라고 했지만 나는 이것이 진심이라고 믿습니다.
사상은 사물을 보는 방법을 바꾸고, 행동을 이끄는 힘이 있습니다. 점장님과 루쉰 선생의 사상이란 대체 무엇일까 얘기해 본 적이 있습니다.
점장님은 말했습니다.
나는 자신을 해부함에 있어서 결코 남을 해부하는 것보다 사정을 두지 않습니다. 뱃속에 악의가 꽉 들어찬 몇몇 이른바 비평가들은 안간힘을 다하여 나의 병집을 곧바로 찾으려고 애썼으나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내 스스로 좀 말했지만 물론 이것은 일부분에 지나지 않으며 많은 것은 아직 감춰 두었습니다.
유항 선생에게 주는 회답
점장님은 루쉰 선생은 ‘전투적 낙관주의자’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낙관주의는 그냥 좋게 될 것일다라는 행동이 없는 공허한 말을 내뱉는 자이다. 전투적 낙관주의는 그렇게 좋게 되기 위해 현실의 비참함과 어려움과 격투하고 투쟁하고 힘들어도 걸어나가는 자이다. 이런 자는 변명도 하지 않는다, 자신을 비하도 하지 않는다. 묵묵히 살아가기 위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어나가는 자이다.
알바를 그만둘 때 점장님은 곧 자신도 일본으로 떠난다며 자신을 후지노 선생으로 기억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후지노 선생은 루쉰 선생이 일본 유학생 시절, 의사가 되기 위해 가르침을 받았던 선생님이셨는데 다른 나라 학생이라 전혀 차별하지 않고 루쉰 선생을 위해 손수 그의 노트를 가져가 고쳐도 주시는 등, 마음을 많이 써 주신 분입니다. 뒤에 루쉰 선생은 후지노 선생을 위한 잡문을 썼는데 그 구절은 읽는 사람의 마음을 감동의 파도를 일으킵니다.
언제나 밤에 피로가 몰려와 조금 쉬자는 생각이 들 때, 얼굴을 들고 불빛에 비친, 약간 그을리고 야윈 선생님의 얼굴을 보면 금방이라도 강한 어조로 말을 걸 듯해, 나는 돌연 양심에 눈뜨고 용기가 넘치는 것을 느낀다. 그러면 살며시 담배에 불을 붙여 '정인군자(루쉰 선생의 논적들)' 무리가 증오 대상으로 삼는 문장을 계속 쓴다.
근데 점장님은 나에게 저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남자 얼굴을 밤중에 홀연히 떠올리며 글을 쓰든 뭘하는 건 그건 제 취향이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자신을 후지노 선생으로 기억해 달라는 점장님께 다시 한번 여성을 좋아하는지 확실하게 확인받고 그렇다는 걸 알자 그러겠다고 답변했습니다.
아직도 제 대답에 혼자 뿌뜻해 하는 미소를 짓던 점장님 표정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여기까지가 제가 루쉰 선생을 알게 된 계기입니다. 또 글이 길어졌습니다. 면목이 없을 뿐입니다.
참고 문헌
1. 루쉰, 『루쉰 전집 7 : 거짓자유서. 풍월이야기. 꽃테문학』, 그린비,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