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모토 무사시> 저자 요시카와 에이지와 만난 것은 공업 고등학생 2학년 때였다. 나는 오후 5시에 수업이 끝나면 갈 곳도, 돈도 없기에 시립도서관들을 부랑자처럼 전전했었다. 내가 사는 O시에는 시립 도서관이 총 4곳이었다. 그중 제일 열심히 간 도서관이 있다. 그 도서관의 이름은 O시 시립 햇빛도서관이었다.
이곳은 책이 많아서 간 도서관이 아니다. 거기서 근무하는 사서 누나가 다리를 저는 장애인인데도 불구하고 봄의 찬란한 햇빛처럼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그 누나는 약간 갈색의 안경을 쓰고, 머리는 포니테일로 항상 단정하게 묶고 있었다. 눈매가 크고 시원하며, 웃을 때 보조개가 생겨서 미소가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공고 교복을 입고 오는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지도 않고 매우 친절하게 대해 주셨다.
시립도서관들을 돌아다니며 느낀 건데 공고생 교복을 입고 입장하면 직원들이 ‘너희들은 여길 왜’란 표정으로 바라본다. 자신들의 상식에서 공고생은 도서관이 아니라 개조한 오토바이를 타며 시내를 활보해야 하는데, 도서관을 활보하니 얼마나 심장이 두근거릴까.
그들은 그래서 공고 교복을 입고 도서관을 오는 우리에 대한 시선은 고정되어 있다. 첫째, 도서관에 와서 물건을 훔쳐 갈려고 하지는 않을까? 둘째, 그냥 와서 사람들의 공부나 방해하지나 않을까? 하는 시선들이다.
다른 도서관에서는 그런 시선을 항상 받았고, 책을 들고 열람실에서 읽기가 눈치 보여 직원 눈에 안 보이는 책장 구석에 서서 읽고 있으면 직원이 거기까지 따라와 지켜보는 경우도 있었다. 게다가 이런 책이 있냐고 물어보면 시큰둥하게 대답하며 찾아주지도 않고 불친절하게 대응해 주었다.
그런데 직원들의 그런 행동은 대놓고 사람에게 뭐라 하는 것이 아니기에, 고등학생인 내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따질 수도 없었다. 결국 도서관 밖에는 어디 갈 곳 없는 나는 직원들의 태도 덕분에 괜히 잘못도 안 했는데 쭈뼛대며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진짜 뭘 훔치려 온 아이 같은 버릇이 생겨 버렸다.
이 도서관에 처음 왔을 때도 당연히 눈치가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이 앉아 있는 곳에서는 책을 보지 못하고 도서관 책장들이 줄지어 서 있는 가장 왼쪽 구석 창문이 있는 책장 쪽 뒤편에 숨어 사람들 눈에 띄지 않도록 숨을 죽이며 서서 책을 읽었다.
한 일주일을 열심히 도서관에 갔는데 그때마다 입구를 지키는 사무실에서 날 빤히 쳐다보는 도서관 사서 누나의 시선을 느끼며 여기서도 괜히 트집 잡혀 쫓겨나면 더 이상 갈 도서관도 없기에 바닥을 보면서 인사하고 들어가 항상 독서하는 책장 구석으로 가서 독서했다. 근데 확실히 의심스러운 행동이었다.
그날도 인도 수행자처럼 서서 독서를 한 시간 정도 할 무렵 다리는 아픈데 책상과 의자가 있는 곳에 앉기 눈치가 보여 선 그 자리에 쭈그려 앉고 독서를 했었다. 너무 열중했던 그 책은 '은하영웅전설'이었다. 게다가 양웬리가 죽을 상황에 처해 있었기에 몰입도는 최고였다.
"얘 넌 왜 거기서 쭈그려서 책 읽고 있니?"
어여쁜 사서 누나가 정면에 서서 이상한 표정으로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 뭐라고 하지란 난감한 생각에 하여튼 여기서도 쫓겨나면 안 된다는 필사적인 일념에 주저리 주저리 말했다.
"저는요. 책 훔칠 생각도 없구요. 보세요. 가방도 없잖아요. 그냥 어디 놀러 갈 때도 없고 해서 와서 조용히 책만 읽는 겁니다. 여기 오시는 분들 방해하고 싶은 생각 일도 없어요. 전 사람들 가방에도 전혀 관심 없구요. 제가 가난해도 남의 것 손댈 정도로 양심도 없이 사는 아이 아닙니다. 아 물론 공고생이 공부를 못하는 건 맞습니다. 공고생이 공부는 못 해도 책은 읽을 줄 알아요."
방언 터지듯이 술술 나오는 언변에 나도 놀랐다. 마치 사형장에서 마지막 유언을 해야 하는 사형수와 같았다. 사서 누나는 내 얘기를 다 듣고 갑자기 입을 가리고 하하 거리며 웃었다. 누나는 말했다.
“얘, 넌 왜 이리 진지하니.”
누나는 자신의 이름은 지숙이라고 하며, 자기가 보니 내가 너무 서서 책을 읽고 있어, 자리도 많으니 앉아서 읽으라고 얘기하려고 온 거라 했다.
“자리에 앉으라고요! 제가 앉아도 되나요?”
난 너무 놀랐다. 도서관에서는 그 누구도 나에게 친절을 베풀지 않았다. 근데 자리에 앉으라니! 지숙 누나는 ‘그래’라고 하며 학생들이 공부하는 열람실로 안내해 주었다. 조용한 방 안에서 인문계 학생들과 책을 읽으며 오래만에 마음에 평온이 찾아왔다.
책을 읽고 집에 가며 90도 지숙 누나에게 인사드렸다. 누나는 내일도 오라며 여기서 근무하며 고등학생 중에 너처럼 열심히 읽는 친구는 없었다며 꼭 오라고 했다.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른다.
마치 인종차별을 당한 흑인이 백인만 들어갈 수 있는 식당에 가서 앉아 밥을 먹게 되면 느끼는 감정이 이런 감정이었을까? 내가 이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지에 대한 불안감과 인간 대접을 받은 것에 대한 안도감 두 가지의 미묘한 감정이 마음속에서 뒤섞여 뭐라 설명할 수 없었다.
계속 도서관을 가며 지숙 누나와 친해지자 누나는 어릴 때는 그냥 가벼운 오락성 있는 책보다는 이런 책을 읽어 보는 것도 좋다며 도서관 구석에서 꺼내준 두툼한 책이 바로 저 '요시카와 에이지'의 미야모토 무사시였다. 두툼한 한권짜리 책이었는데, 표지에는 칼을 휘두르는 일본 낭인의 그림이 그려 있었다.
나는 일본 무협 소설은 적성이 아니라 말했다. 누나는 또 키득거리며 미야모토 무사시는 그런 소설이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미야모토 무사시란 책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 주었다.
이 책의 저자 요시카와 에이지는 일본 제일의 검객 ‘미야모토 무사시’를 통해, 한 인간이 자신의 길에서 어떻게 자신을 완성해 가는가를 보여주고자 했다. 소설에서 ‘검’은 하나의 상징일 뿐, 어떤 분야든 똑같다. 어떤 길이든 지극한 정성으로 파고들어 그 본질을 깨우치면, 이는 단순한 기술 연마를 넘어 인격을 수양하고 삶의 진리를 깨닫는 위대한 과정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이 이 소설이다.
누나는 그러면서 소설의 한 문장을 소개해 주었다.
후지산처럼 어디서 봐도 항상 똑같은 모습인 부동의 자신이 되자. 누군가의 눈에 어떻게 보여질까 하는 초조한 자신이 아닌 후지산처럼 어디서 봐도 항상 똑같은 부동의 자신이 되자.
요시카와 에이지는 이 책의 서문에서 나약한 현대인이 많은 요즘 그와 반대인 인간 미야모토 무사시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 그것을 알려 주고 싶어서 소설을 썼다고 한다.
도서관의 나뭇잎들이 노란색으로 변하는 가을 초 무렵, 누나와 도서관 1층에 위치한 커피숍에서 대화를 한 적이 있다. 누나 역시 장애인으로 살아오며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했댜고 했다. 항상 움츠려 들고 기죽어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점점 마음 한구석에서는 사람의 시선에 잡혀 사는 자신을 부숴버리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다고 한다.
사람의 시선에 신경쓰는 건 인간인 이상 당연하다. 그치만 그 시선에 함몰되어 자신을 보는 시선을 잃어버리게 과연 옳은 일인가? 인생의 길은 번뇌의 길이다. 무사시는 검을 통해 인생의 길을 찾았다. 사람의 시선을 두려운 게 아니라 그 시선에 주눅드는 자신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예쁜 얼굴을 붉히며 이야기하는 누나를 보며 속으로 '이 누나 은근히 과격하네'란 생각했다.
사사키 코지로의 등장
그날도 어김없이 신나게 도서관으로 달려갔다. 누나랑 오늘은 무슨 말을 할까 하고 말이다. 항상 누나가 앉아 있는 도서관 입구 사무실에 인사할려고 보자, 누나는 없고 더 이쁜 누나가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고양이 눈처럼 날카로운 눈매에, 갸름한 얼굴, 찰랑거리는 생머리인 누나였다. 더 이쁜 누나가 있으니 이상하게 반가워 인사를 했다. 그런데 그 누나는 날 그냥 투명인간 대하듯 아무런 반응를 하지 않은 채, 컴퓨터 모니터만 보고 있었다.
바쁘셔서 그러려니 하고, 맨날 앉는 자리에 앉아 독서를 시작했다. 앉아서 좋은 문장은 노트에 옮겨 적으며 문장을 감미하던 중 미야모토 무사시에서 예전에 적은 구절을 발견했다.
본래 나는 미숙한 인간이었다. 걸핏하면 사람을 그리워하는 갓난아이처럼, 혼자 있으면 외로워하고 불이 켜져 있는 따스한 집을 부러워했다. 얼마나 못난 마음이냐.
미야모토 무사시는 집을 떠나 수련하며 살던 중, 새해가 다가오자 근처 마을에 자신의 이모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잠시 들려 인사라도 하고 오자고 이모 집을 방문했다. 행색이 거지꼴인 그를 이모는 보자마자 차갑게 대하며, 줄거라곤 차가운 떡밖에 없다며 건네주었다. 그리고 헛간 같은 소우리 같은 곳을 보여주며 자고 가려며 저기서 잠이나 자고 가라고 하며 면박을 주었다.
무사시는 받은 떡을 내팽겨치고 이모집을 바로 나왔다. 겨울 추운 밤 그는 다리 근처에서 시냇물로 내려가 찬물을 온 몸으로 뒤집어 쓰며 저 말을 했던 것이다. 뼈속까지 시린 찬물이 몸을 칠 때마다 사람의 따뜻한 정을 그리워한 자신을 못난 놈이라 자책한 것이다.
그날의 독서를 마치고, 도서관을 나오며 새로온 누나에게 인사 했지만 역시나 인사는 받지 않고 차가운 눈초리로 흘끗 잠깐 쳐다보기만 하였다.
다음 날, 그 다음 날에도 지숙 누나는 보이지 않고 차가운 누나(이하 얼음 누나로 호칭)만 계속 앉아 있었다. 그러니 슬슬 지숙 누나가 걱정되었다. 그치만 지숙 누나에 대해 얼음 누나에게 물어볼 생각도 못 했다. 주변만 가도 숨이 얼어붙는 차가움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견(見)하지 말고 관(觀)하라. 사물의 표피가 아니라 본질을 꿰뚫어 보라."
무사시는 말했다. 본질을 보라고, 사람의 성격은 사소한 행동에서 나타나는 법이다. 난 아무런 악의없이 인사했을 뿐인데 거기에 대해 아무런 반응도 없고 차갑게 냉대한다. 그럼 이 사람은 겉모습은 화사하고 이쁘나 사람을 겉모습으로 구별하는 차별의 시선을 가진 자다.
사람이 힘든 건 부유한 집에 살다 망한 경우다. 부유할 때 누렸던 것들이 가난해지면 없어지니 말이다. 하지만 지숙 누나 덕분에 인간의 따뜻함을 느꼈다가 다시 얼음 누나에게 인간의 냉대함을 느끼니 참으로 힘들었다. 그래도 지숙 누나의 소식을 듣을 때까지 도서관 오는 걸 포기하지 않을 각오를 했다.
이건 이제 승부였다. 시립도서관은 그 누구건 자유롭게 오는 곳이다. 난 예전엔 사람의 차별에 울부짖었지만 그런 건 이제 아무렇지 않다. 얼음 누나에게 굴복하지 않겠다. 더욱 더 친절하게 인사하겠다. 상대방의 반응에 좌지우지 하지 않겠다.
"승리에 우연이란 없다. 일천일(一千日)의 연습을 단(鍛)이라 하고, 일만일(一萬日)의 연습을 련(鍊)이라 한다. 이 '단련(鍛鍊)'이 있고서야 비로소 승리를 기대할 수 있다.“
단련이다. 일천일 인사하고 일만일을 인사하겠다. 마음을 먹으니 행동하는데 두려움이 없어졌다. 항상 사람은 마음을 강하게 먹어야 승리할 수 있다.
지숙 누나가 안온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중간고사가 시작되었다. 조용하던 도서관에 인문계 학생들이 많아졌다. 물론 실업계 학생 나 혼자이고 말이다. 인문계 아이들에 섞여 나 역시 중간고사 였지만 신경도 쓰지 않고 독서만 하고 있었다.
한참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에 빠져 있었다. 누군가 내 어깨를 툭툭 쳤다. 놀라서 고개를 들어 보니 얼음 누나였다. 그 누나는 잠시 따라 나오라는 손짓하였다. 미소를 머금은 채 말이다. 드디어 나의 단련이 효과를 보는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역시 무사시! 그의 가르침은 틀리지 않았어!
얼음 누나는 밖에 나와 나에게 말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은 도서관에 안 오는 게 좋겠어. 학생들이 지금 중간고사라 많이 오는 시기거든. 자리도 부족하고 말이야. 그리고 너가 뭘 하는지 모르지만 학생들이 좀 신경쓰인데, 그러니 내일부터 일주일만 도서관에 잠깐 나오지마. 알았지?“
무사시의 가르침은 개뿔! 역시 방심하니 일격이 훅 들어오는구나.
"지금 싸우고 있는 적이 마지막 적이다. 싸움은 한 번뿐이라고 생각하라.“
심호흡을 했다. ‘헛소리하지 말라고’ 사자후를 일갈해 주고자 했다. 단어 하나, 하나에 힘을 줘서 말하리라. 단전에 힘을 주고 말했다.
”네네, 일주일이면 되죠.“
응? 입에서 딴말이 나왔다. 고개를 푹 숙인채 납득의 말을 해 버렸다. 그리고 읽던 책은 빌려 가도 되냐고 물어보고 조용히 책상을 정리했다. 옆구리엔 ‘죄와 벌’을 끼고 도서관 밖을 나오자 화창한 오후의 햇빛이 보였다. 내 처지와 상관없이 세상은 아름다웠다.
왜 납득의 말을 했는가. 반박 못 했는가. 알 수가 없었다. 난 용기가 없었다. 말을 못 했다. 한심스럽다 생각이 들어, 도서관 건물 밖 계단에 앉아 혼자 한숨을 쉬고 있었다.
”여, 오타쿠!“
지숙 누나였다. 약간 얼굴이 창백해진 누나가 왼쪽 다리를 절며 다가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누나는 언제부터인가 나에게 오타쿠라고 했다. 독서에 광적인 집착을 보인다나? 비루한 처지에 지숙 누나를 보자, 무사시가 외로움과 싸우라고 했던 말은 다 까먹고, 눈물이 흐를 거 같았다.
지숙 누나에게 왜 나왔는지를 자초지종을 말했다. 내 말을 점점 들을수록 지숙 누나의 창백한 얼굴을 빨개지기 시작했다. 지숙 누나는 나보고 따라오라더니, 도서관으로 날 데리고 들어갔다.
간류섬의 혈투
지숙 누나는 대뜸 도서관 입구 옆에 위치한 사무실을 벌컥 열고, 얼음 누나를 찾았다. 얼음 누나를 보자마자 지숙 누나는 말했다.
”주무관님, 이 학생 왜 일주일 동안 오지 말라고 했죠?“
지숙 누나의 격앙된 목소리의 사자후가 사무실에 울려 퍼졌다. 사무를 보던 직원들은 모니터 위로 고개를 들고 놀라서 모두 지숙 누나를 쳐다봤다. 문 옆 구석에 있는 사회복무요원 20대 남성은 모자까지 떨어트리며 놀랐다.
얼음 누나는 커피 타다가 지숙 누나의 등장과 그녀의 목소리에 많이 놀란 듯 했다. 그러나 이내 평정심을 되찾고 말했다.
”주무관님도 아시잖아요. 시험 기간이면 항상 학생들 자리 부족한 거요. 근데 저 학생은 제가 보니 공부도 하지 않고 책만 읽던데,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양보를 부탁한 것도 잘못인가요?“
깔끔한 논리다. 그래, 쓸데없는 사람은 자리를 비워줘야지. 사무실 직원들도 얼음 누나의 말에 약간 동조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미야모토 무사시는 사사키 코지로와 대혈투에서 치밀한 심리전과 전략을 펼쳤고, 대표적으로 코지로의 장검을 상대하기 위해 상식을 파괴하는 무기인 나무 노(櫓)를 깎아 상대했다.
지숙 누나는 혀를 끌끌 차며, 날 앞으로 내세우며 이렇게 외쳤다.
”우리 도서관이 학생에게 상처 주는 공간인가요? 이 학생이 소란 행위를 했나요? 여기 인문계 아이들이 많이 오면 뭐 도서관 이미지가 좋아지나요? 공고생이 오면 도서관이 이상해지냐구요? 아, 물론 O공고 학생들이 도서관 뒤편 골목에서 담배피고, 오토바이 굉음 내면서 소란스럽게 시내를 타고 다니는 그런 행동들은 해요. 근데 이 학생이 그랬나요? 왜 소수의 공고생이 하는 일탈 행동을 전체 공고생의 행동으로 편견으로 묶어 이 학생처럼 뜻이 있는 학생을, 한 사람의 학생을 제대로 보지 않고 함부로 대하고 말하죠! 이 친구는 그냥 책을 읽고 싶어서 왔다구요! 우리가 그렇게 매일 매일 힘들게 분류하고 진열하는 소중한 책을 읽으러 왔다구요!“
그래, 내가 미야모토 무사시의 상식을 파괴하는 무기인 나무 노(櫓)였구나. 날 들고 지숙 누나는 얼음 누나의 뚝배기를 후려치고 있구나. 근데 지숙 누나 나 지금 너무 부끄러워. 나 아까부터 두 손 공손히 모으고 서있어. 마치 내가 얌전한 존재임을 온 몸으로 증명해야 하듯이 말이야. 집에 가고 싶어. 지숙 누나.
얼음 누나는 분하듯 입술을 깨물고 얼굴을 일그러져 있었으나 단 한 마디의 반박도 하지 못했다. 그냥 뚝배기가 깨지고 있었다.
지숙 누나는 씩씩거리며, 내가 일어선 자리로 데려가 앉으라고 한 후 책을 읽으라고 했다.
‘누나, 이런 상황에서 글씨가 읽힐 거 같지 않아요’
라고 하고 싶었으나, 대심판관처럼 자리에 앉아 책을 읽으라는 지숙 누나의 패기에 경직되어 책을 읽었다. 다만, 흰 건 종이요. 검은 건 글씨라고 느낄 뿐 내용이 전혀 들어오지 않았다. 도서관 사무실의 혈투 이후 난 그 누구의 제재를 받지 않고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었다.
지숙 누나는 내가 고3이 되던해, 미야모토 무사시 같은 헤어 스타일의 만화 작가님과 결혼한 이후 남편을 따라 다른 시로 이사가셨다.
지숙 누나는 도서관 근무 마지막 날 나에게 말했다.
강물 속의 물고기가 되면 강이 보이지 않는 법, 책에 너무 얽매여서 책벌레가 되어버리면 살아 있는 글도 보지 못하게 되고, 세상일에도 오히려 어두운 사람이 된다.
책을 읽되, 책에 읽히지 마라. 그것이 지숙 누나의 마지막 가르침이었다. 가끔 도서관들을 지나치는 일이 있는데 그럴 때 마다 지숙 누나의 격앙된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참고 문헌
1. 요시카와 에이지, 『미야모토 무사시 세트 – 전10권』, 문예춘추사, 2015, 원제 : 宮本武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