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벌겠다는 획기적인 일을 하려는 칠득이는 괴테의 말과 정반대였다 첫째, 머리가 나쁘고, 둘째 막대한 빚만 있었다. 그래도 칠득이는 자신의 재산인 변변찮은 육체로 알바를 두, 세 개 씩 병행하며 고투해 나갔다.
우리가 칠득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건 가끔 밥 한끼 사주는 정도의 응원이었다. 돈을 무척 아끼는 칠득이 입장에서는 그 공짜식사를 너무 좋아했다. 한번은 집에 놀러 갔더니 자기 방 달력에 우리가 식사하기로 한 날짜에 빨간 펜으로 동그라미까지 그려 놨더라.
그 동그라미는 우리에게 어떤 낙인처럼 다가왔다. 저 날짜를 어기면 지옥도 아주 괴로운 지옥으로 빠질 거 같은 공포감도 느꼈다. 그래서 우리는 지구가 멸망하지 않는 한 한 달 한 번 식사 날짜는 제대로 지켰다.
그런데 오늘은 아직 칠득이와 식사 날짜는 2주나 남은 상황이었다. 그가 자신의 저녁 메뉴 상의를 원할 때는 그냥 단톡으로 서로 얘기했다. 직접 대화하자고 한 적은 없었다.
어느 정도 술에 취해 침을 조금씩 흘리기 시작한 칠득이가 말했다.
"나...나 말이야 사랑에 빠졌어. 미안해. 너희들과 약속을 지키지 못했어."
분노가 치밀었다. 시발 칠득아! 무슨 소리야. 우린 너랑 그런 약속 한 적이 없어. 너가 그냥 선언한 거야. 우린 그냥 들었을 뿐이고 말이야. 이렇게 반론을 제기할려고 할 때 그는 뒤이어 말했다.
"나 노래방에서 일하잖아. 거기서 만난 분을 사랑하게 됐어.“
"야, 거기 너 혼자 일하잖아?"
성격 급한 낙하가 치고 나가듯 질문했다.
칠득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뒤이어 설명했다. 여기서 손님들이 여자를 불러달라고 하면 오는 분이 계신데 한 26살 정도 되신다더라. 연상이지만 어깨까지 오는 긴 생머리에, 눈은 항상 짙은 파란색 화장을 했으나, 웃을 땐 보조개가 파이는 미소가 아름다운 미모의 여성이란다. 그녀는 항상 오면 담배가 없다고 빌리는데 칠득이는 담배도 안 피면서 그녀를 위해 던힐도 한갑씩 준비했다가 준다고 했다. 얼씨구.
연애를 못해본 우리는 '할루네이션 사랑'의 달인이었다. 마치 AI가 없는 사실관계를 있는 것처럼 말하듯 상대방은 사랑이 아닌데 사소한 사실을 왜곡시켜 자기를 사랑한다고 사실관계를 조작하는 것이다.
사랑에 배 고플수록 할루네이션 상태는 더 활성화된다. 그런데 칠득이는 사랑의 배고픈 정도가 아니라 아사(餓死) 직전이었다. 그의 할루네이션은 활성화가 아닌 폭주 상태였다.
우리가 서로 쌍욕 퍼붓는 사이였지만 폭주 상태인 칠득이의 사랑을 비난하는 건 선을 세게 넘는 거라 판단했다. 흥분상태인 사람이 말할 때는 일단 들어야 한다. 그는 침을 흘리며 그녀가 자기를 어떻게 대해주는지 절절하게 말했다.
노래방 노동자라면 돈을 필요로 한다. 돈이 남자를 평가하는 잣대다. 그런데 매일 검은색의 츄리닝을 입는 칠득이는 겉모습도 돈이 없어 보이고 속모습도 돈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에게 친절해?
아아! 이런 오해가 있을 수도 있지. 그녀는 칠득이를 노래방 사장의 아들이라 착각할 수도 있으니 말이야.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니 그것도 아니다. 노래방 사장 아들이 노래방에 알바를 해? 경영수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그럼 대체 그녀는 왜 칠득이에게 친절한 것 일까? 물에 잉크 한 방울 떨어뜨리면 잉크가 물에 확 퍼지듯 나의 질문 한 방울은 의심이 되어 칠득이의 이야기에 확 퍼져 버렸다.
칠득이는 흐르는 침을 옷 소매로 쓱 닦으며 그녀와 영혼의 동반자가 되기 시작한 계기를 말했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추가 콜이 없는 그녀와 카운터에 앉아 대화를 했었다. 서로 별 영양가 없는 소통 속에서 칠득이는 이야기의 소재가 떨어지자 자신의 가정사를 말했다. 그러자 그녀도 자신의 가정사를 털어놨다고 한다.
그녀는 어머니와 둘이 살았는데 어머니가 알콜 중독자라 집에 있을 수 없어 고2 때 가출해 현재 혼자 살고 있다고 담배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칠득이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단다.
노래방 손님들의 그 시끄러운 악 쓰는 노래소리에 그의 울음을 묻혔지만, 서럽게 우는 그의 손을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잡아 주었다. 그 이후 그들은 매우 친밀해졌다고 한다.
오케이. 스토리합격. 납득이 가는 시나리오다. 같은 고통을 지닌 자들이 거울 속 자신을 보듯 서로에게 이끌렸을 가능성 크다고 본다. 나도 모르게 공감의 제스쳐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낙하는 공감하지 않았다. 그는 이상하리만큼 노래방 노동자 같은 분들 그러니까 여성이 자신의 성을 밑천 삼아 일하는 것에 대해 극도로 경멸했다. 육체파 노동자에 대한 밑도 끝는 없는 증오랄까?
항상 과감하고 기세가 있는 낙하는 흥분하여 얼굴이 붉어진 채로 말을 내뱉었다.
”너가 아무리 그렇게 말해도, 그녀는 자기 웃음을 팔고, 응...그 저...그 뭐냐...웃음도 팔기 하지만 그런 것도 판다고! 그런 사람이 너는 좋다는거야?“
낙하는 항상 마무리가 시원찮다. 하지만 이해는 했다. 웃음 말고 몸도 판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칠득이가 사랑한다고 말하는 판국에 그렇게 표현하는 건 안된다는 걸 알고 있었겠지.
하지만 내가 놀랜건 낙하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하는 칠득이였다.
”너는 웃음도 팔고 몸도 판다고 얘기하고 싶지? 그래 좋아. 맞는 말이야. 더럽다고 느낄 수도 있지. 그치만 너나 나나 우리가 몸만 안 팔았지 어디든 가서 일하면 웃잖아. 무시를 당해도 웃고, 고객이 반말해도 웃고, 불만을 토로해도 웃고 말이야. 더러워? 노래방에서 일하는 사람이 더럽다고? 그럼 우리는 정신적인 매춘을 하면서 안 더럽고? 너가 더럽다는 그 기준이 뭔데.“
정말 소름끼쳤다. 칠득이는 마치 100분 토론에 나온 유명한 논객처럼, 원래 더듬거리던 습관도 어디론가 사라지고 완전 다른 사람처럼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비난하며 말을 했다.
아 시발! 이게 사랑의 힘인가!
참고문헌
1. 요한 페터 에커만, 《괴테와의 대화 1》, 민음사, 20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