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기자와의 대화 3

by 노석

"너희들 신성한 교무실에 뭐하는 짓들이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크게 고함을 지르며 일어나는 사람이 있었다. 칠득이는 그의 고함에 얼어붙어 멈춰버렸고, 나도 뒤이어 뒤쫓아가다 멈춰 버렸다.

소리 지른 사람은 반대머리 교감 선생이었다. 그는 60대를 넘은 나이로, 학생들에게 '닌자'라 불렸다. 그 이유는 어디선가 숨어 있다 갑자기 나타나 벌점을 날리기 때문이다. 벌점 이유도 다양했다. 교복 마이 안 와이셔츠가 바지 안에 들어가 있지 않다거나 복도에서 뛰었다고 '복장 불량' '태도 불량'이 이유였다.

세상도 무심하시지. 무자비한 닌자가 교무실에 있을 줄 이야. 우린 닌자 앞에 끌려갔다. 그는 일단 흥분하면 화를 주체못했다. 게다가 화와 함께 침도 엄청 튀겼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렸을까? 그는 조금 진정이 된듯, 하도 날리고 다녀 반쯤 찢어 진 전지를 들고 흐느끼고 있는 칠득이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봤다.

칠득이는 전지들고 뛰어 다닐 때부터 극도의 흥분 상태였고, 특히나 교감을 젤 무서워했기에 얘도 침을 질질 흘리며 어버거리고 있었다.

숨 막히는 침 배틀이었다. 뱉는 자와 흘리는 자의 승부였다. 난 이 싸움을 끝낼 자는 나라고 여겼다. 질퍽한 침들의 홍수 속에서 장화를 신고 그속을 헤쳐나가듯 말했다.

구걸 아님, 참치배 탑승 예정, 빌린 돈 상환, 채무 이행 노트 작성 등 낙하 누나 이쁜데 아프다. 진짜 아프다.

내가 말을 마치자 비가 쏟아진 후 햇빛이 비추고 평온해지듯 어째 분위기가 조용했다.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어 교감 선생의 얼굴을 보니 이마인지 벚겨진 머리인지 구분이 안 가는 곳에 주름이 지어져 찌뿌린 표정이었고, 책상을 검지로 톡톡치고 있었다.

그는 서랍을 열어 A4용지 두 장과 모나미 볼펜 두자루를 주면서 앞에 앉아 반성문을 쓰라 하였다.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 반성문이라니! 너무 화가나 소리를 지를 뻔했다. 그치만 내 옆에 칠득이가 빠르게 앉아 반성문을 쓰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자, 나도 뭔지 모를 초조함에 빠져 바로 앉아 반성문을 쓰기 시작했다.

"아, 회장님, 잘 지내시죠? 우리 이번에 동문회 좀 크게 하자고 했잖아요. 근데 뭐 대실하는 비용도 크고 식사니 준비할 거 많잖아요. 그러지 말고 우리 이번 동문회비 좋은데 좀 쓰면 어떨까?"

그는 대뜸 우릴 앞에 두고 들을라는 듯이 크게 말하며 통화하다가 자리를 일어서 나가며 계속 통화했다. 그가 나가자 우린 서로 반성문을 비교하며 사건의 타임라인은 맞는가, 어디서 감정적 호소가 들어가야 할지. 기승전결을 논의했다.

그는 통화가 끝난듯 다시 들어와 우리 앞으로 왔다. 경건한 자세로 두 주먹을 무릎 위로 올려논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낼 낙하와 교무실로 함께 와라. 총동문회에서 수술비를 지원해 줄 것이다. 또한 교무 주임한테도 말했으니 학교 전체로 성금을 걷을 것이니 이 말을 전하라 하였다. 다만, 성금 전달식을 해야 해서 낙하에게 여러 이야기 해 줄 것이니 낼 꼭 데리고 와라'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참치배 탈 정신 있으면 공부나 하라고 말하며 꿀밤을 한대씩 때렸다.

맞은 머리통이 아픈지도 모른 채두 눈이 붉어지며 뜨겁게 눈물이 댐 터지듯 나왔다. 내 옆에서 이미 칠득이는 또 침을 흘리며 허으어 허으어하면서 대성통곡하고 있었다. 우린 고맙습니다란 다섯 문장도 말하지 못했다. 둘이서 '어으어 으아'하며 터지는 눈물을 교복 마이로 훔치며 교무실을 나왔다.

낙하를 만나기 위해 병원을 가던 그 길은 어찌나 아름답던지 모른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도 그때의 햇빛의 찬란함, 바람의 따뜻함, 길가의 비둘기도 이뻐보였던 그 순간이 잊혀지지 않는다.

언젠가 목표로 데려갈 발걸음을 내딛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네. 모든 발걸음이 바로 목표가 되고 또 발걸음 그 자체로 간주되어야 하는 걸세.
- <괴테와의 대화 1> (요한 페터 에커만 지음, 장희창 옮김) 중에서

그렇다. 참으로 괴테 말이 맞다. 모든 발걸음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

숨을 헐떡이며 도착한 병원에서 낙하를 만나 학교의 지원을 말했다. 낙하는 우리 손을 잡고 벌벌 떨며 울었다. 우리도 눈물이 나올라 했으나 이미 심하게 울어 방전됐기에 울지 않는 으른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학교에서 동문회와 선생과 학생들이 예상외의 금액을 걷어 낙하 누나의 치료비를 지원해 주었다. 우린 참치배를 타지 않게 된 것이다. 그리고 치료를 받아 낙하 누나는 완쾌되었다. 정말 놀랄 일은 그 이후였다. 누나는 결혼 발표를 한 것이다. 아직 5년간 암 재발 추적을 해야 했지만, 자신이 병상에 있을 때 헌신적으로 간호한 남사친과 미래를 약속한 것이다.

이 작품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 쓰인 것처럼
느껴지는 시기가 인생에 한 번도 없다면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발표 후

- <괴테의 인생 수업> (사이토 다카시 지음, 전경아 옮김) 중에서

내가 구걸할 때 그들은 사랑을 속삭였던 것이다. 세상은 항상 이런 식이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는 알프레도의 총을 빌려 자살했는데, 난 총을 빌릴 수 있다면 그 남사친을 쐈을 거다.

암튼 누나 결혼식 날, 아직 자리지 않은 머리를 가발로 대체했지만, 풍만한 가슴을 돋보이게 하는 흰색의 가슴이 파인 드레스를 입은 누나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그 모습을 보고 결혼식장 한쪽 모퉁이 외부 테라스에서 난 울었다.

식이 시작되도 보이지 않는 날 찾으러 온 칠득이는 우는 내 등을 두드리며 '그래도 오늘 고급 뷔페래, 너 좋아하는 육회 먹어야지'라며 격려했다. 낙하 이 새끼는 우는 내 모습을 보고 자기도 누나 시집간다니 눈물 날 거 같다며 대신 울어줘서 고맙다고 내 속도 모르고 엄지척 이 지랄을 하더라.

시간이 흘러 이렇게 뚝방에 앉아 처남될 뻔한 낙하를 보며 지나간 사랑을 추억하니 또 화가 난다. 화가 나.

어찌됐든, 우리는 맥주 한 캔에 이미 취해 혀가 꼬인 채 서로 일상을 얘기하던 중, 칠득이가 머뭇머뭇대며 뭘 말하려다 말고 또 마는 걸 눈치챘다.

칠득이는 요즘 고민이 많다. 아버지의 알콜 중독이 너무 심해져,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병원에서도 손을 쓸 수 없다고 하여 집에 누워만 있으신데 정신도 온전치 않으셨다. 게다가 대변, 용변을 집에 남자 혼자인 칠득이가 다 해야했다.

참으로 신기한 건, 인내심이라곤 눈꼽도 없는 칠득이가 단 한번도 아버지 수발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다. 그에게 언젠가 한번 지나가는 말로 힘들지 않냐 했을 때 그는 버벅대지 않고, 머뭇거리지 않고 말했다. 내가 힘들면 우리 엄마는 어떻하냐고. 난 그래서 안 힘들다고 엄마가 웃는게 좋다고 아주 어린 시절 본 어머니의 웃음이 지금은 없어서 다시 찾아주고 싶다고 진지하게 말했다.

그래서 칠득이는 자기 여동생들을 위해 결혼 및 연애 금지를 20살에 선언했었다. 가정의 경제혁명을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치겠다고 말이다. 우리에게 그 선언은 충격과 공포였다. 그는 여성에게 고백 받은 적도 없는 모태솔로였기 때문이다.

암튼 사랑금지를 훈련한다고 편의점 가서 여자 알바의 안녕히가세요라는 말에 마음 흔들리지 않기 등을 혼자 실천했다.

“이 세상에서 깜짝 놀랄만한 획기적인 일을 하려면 알다시피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머리가 좋을 것과 둘째,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을 것이다”라고 괴테가 말했다.
- <괴테의 인생 수업> (사이토 다카시 지음, 전경아 옮김) 중에서

돈을 벌겠다는 획기적인 일을 하려는 칠득이는 괴테의 말에 정반대였다 첫째, 머리가 나쁘고, 둘째 막대한 빚만 있었다.



참고문헌

1. 요한 페터 에커만, 《괴테와의 대화 1》, 민음사, 2008
2. 사이토 다카시, 《괴테의 인생수업》, 알파미디어,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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